문학도서관 기획자, 이인준 : 입술을 열면 [김현]
새해에 큰 맘먹고 수영 기초반을 등록했다. 물을 바라보는 건 좋아하지만, 물속에 들어가는 건 겁이 났다. 물에 빠진 적이 있는데, 어디가 앞이고, 뒤인지 방향을 알 수 없는 물속에서 발이 닫지 않는 부유감에 온몸이 경직돼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부유감을 회사에서 느꼈다. 분명 엉덩이는 사무실 의자에 달라붙어있는데, 몸이 부유하더니 물속으로 가라앉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가야 하는 방향을 알고 있는 물고기와 해파리들은 그들에게만 보이는 길을 부드럽게 헤엄치며 나를 스쳐 지나갔고, 나는 점점 숨이 막혀왔다. 지금의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른 채 일을 시작한 나는, 얼마 버틸 수 없는 산소통을 가지고 바닷속에 뛰어든 것과 마찬가지였다.
수영 첫날 호흡법을 배웠다. 입으로 공기를 들이마시고, 물속에서 코로 숨을 잔잔하게 내쉬면 기포가 보글보글 올라온다. 물밖에서 다시 공기를 들이마시면서 내가 헤엄칠 수 있는 곳까지 시선으로 고정된 '지점'을 찍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간다. 이때 고정된 지점은 허구의 점이다.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지만 내가 어느 방향으로 얼마큼 갈 수 있는지 스스로 만들어낸, 나에게만 보이는 점이다. 마치 자오선(子午線)과 같다. 자오선은 방향을 잡기 위해 북극점과 남극점을 찍고 허구적으로 지구를 둘로 나눈 것이다. 물속에서도 허구의 점을 찍으면 방향을 잡을 수 있다. 즉 내가 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찾아서 '점'을 찍을 수 있다면, 물속에 가라앉는 게 아니라 두 다리로 헤엄칠 수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해도) 월요일이 기다려진다거나, 항상 좋지만은 않아요. 주말 전에 일이 안 끝나면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쉽지 않죠. 그래서 '내가 정해놓은 지점'으로 다시 돌아가는 게 중요해요. 순간적으로 힘들고 스트레스 때문에 (일을) 회피하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그럼에도 이 일을 해야만 하는 '다시 돌아가는 지점'이 있으면 월요일이 괜찮아져요. 그 지점을 나만의 언어로 정리를 해야 하는데, 이번 대화로 저도 좀 정리가 된 것 같아요. 일을 하는 이유를 한 문장으로 만드는 건 생존에 도움이 됩니다. 내가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야 하죠.
- 이인준(문학도서관 기획자)
인준과 나는 2024년 여름 소통협력센터 군산에서 진행한 로컬프로그램 <군산유학 2024 빈 공간>의 가구 워크숍 '기대거나 받치거나'에서 만났다.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쉬어가는 시간, 나는 어떻게 쉬어가는지 혹은 어떻게 쉬어가고 싶은지 고민하고, 나만의 휴식에 맞는 필요한 가구를 구상하여 직접 제작해 보는 프로그램이었다. 제작의 단계에 들어가기 전 '휴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제대로 쉴 줄 아는 사람은 자신이 가야 하는 '점'을 찍고, 방향을 긋고, 얼마큼 갈 수 있는지 자신의 감각과 지각을 계산한다. 당시 인준은 서울에서 일을 할 준비를 하던 중에, 휴식을 위해 군산에 왔었다. 제대로 된 휴식을 갖고 난 후, 그가 어디에 '점'을 찍을지 궁금해졌다.
계절이 겨울로 바뀌었고, 인준은 문학도서관에서 일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는 출근을 하면 가장 먼저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한다. 삐져나와 있는 책과 의자를 정리하고, 담요를 개며 공간을 정비한 후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는다. 도서관의 행사를 기획하고, 도서관의 홈페이지와 앱에서 회원의 CS(customer serviece) 문제를 해결하다가, 다시 도서관에 내려가 손님들의 이용상황을 파악하며 공간을 정리한다.
인준은 '책 읽는 삶을 도와주는 것'을 지금 이 일을 해야만 하는 '지점'으로 삼고, 일을 하고 있다.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지점'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는 말하는 데, '지점'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점은 무언가에 집중할 때 찍을 수 있다. 조금만 집중이 흐트러져도, 점이 아니라 흔들리며 뚝 끊겨버려 어디를 향하지 못하는 짧고 흐린 선으로 끝난다. 인간의 집중력을 즐거움에서 온다. 즐거움은 속일 수 없는 감정이다. 정말 즐거울 때만 즐거울 수 있다. 슬픈 영화는 시각, 청각, 온갖 요소로 어느 정도 관객을 울리는 데 성공하지만, 코미디 영화는 관객을 웃기는 데 성공하기 쉽지 않다. 내가 지금의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방향을 잃었다면, 내가 정말로 즐거웠던 곳에 집중해서 '점'을 찾아야 한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던 인준은 처음 '시'를 썼을 때 가장 즐거웠다고 했다.
문학에 대한 인준의 최초의 기억은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데려가주신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꺼내 읽은 김영하 작가의 단편 소설이다. 청소년 소설이 주는 것과 전혀 다른 새로운 감각에 성인들은 이런 책을 읽는구나, 충격을 받은 후로 김영하 작가 책 외에 한국 문학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 이야기를 꺼내고 싶은, 글쓰기의 욕구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기에 인준은 소설이 쓰고 싶어졌다.
" 책을 읽다 보니 소설이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분량도 많고 어휘선택도 어렵더라고요. 짧은 글만 써오다가, 어느 날 국어선생님이 문집에 필요한 시를 써오라고 했는데 좋게 봐주셨어요. 짧게 써도 완성이 된다는 것이 좋았어요. 시를 쓰면서 중. 고등학교를 보냈죠. 소설, 에세이, 희곡과 다른 시만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가 좋았어요. 소설이 좀 더 분명한 글이라면 시는 모호함이 허락되는 글이에요. 에세이도 무슨 말을 할 것인지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죠. 시는 문장이 덜 끝나도 되고, 쓰다가 말아도 되고, 내용도 모호한 쪽으로 많이 가는 것 같아요. 사실 세상이 그렇잖아요. 세상이 분명한 것 같아도, 어떨 때는 모호하고 복잡하죠. 시는 모호함과 복잡함을 긍정적으로, 기꺼이 수용하는 장르여서 매력적이에요."
" 모호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시가 어렵지만, 그래서 아름다워요. 너무 쉬운 것에 우리가 아름다움을 느끼기는 어렵잖아요. 소설도 명확하고 선명한 문장들 사이에서, 불안감을 주기도 하고 나를 흔들리게 하는 조금은 불분명한 문장에서 아름다움을 느껴요. 아름다움에는 필연적으로 어려움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시의 즐거움에 점을 찍은 인준은, 대학교 때 시와 그림책을 소개하는 팟캐스트를 진행한다. 어릴 때부터 혼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걸 좋아했던 그는 '시'덕분에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에 거리낌이 없어졌다.
" 군대를 다녀오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책을 더 좋아하게 만들 수 있는 어떤 것을 제공해 주는, 좀 더 액티브한 행동을 스스로가 좋아한다는 것을 친구와 팟캐스트를 진행하면서 알았어요. 저는 시를 좋아하고, 친구는 그림책을 좋아했거든요. '재미중독자'라는 이름의 팟캐스트를 만들어서, 정해놓은 주제에 어울리는 시와 그림책을 소개했어요. 처음으로 글쓰기 외에 '책'을 가지고 콘텐츠로 녹여내는 경험을 한 거예요. 익명의 사람들에게 제가 좋아하는 시집을 추천하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고, 즐거웠어요."
" 팟캐스트의 주제가 테니스라면, 테니스의 재미, 테니스 선수들을 이야기, 삶에서 테니스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테니스와 관련된 시집을 소개해요. 테니스는 운동이잖아요. 운동이 즐거운 건, 테니스 공을 주고받을 때의 감각이잖아요. 그 감각에 엄청 집중하면서 친단 말이에요. 시를 읽을 때도, 시를 읽을 때 신체의 움직임은 없지만, 어떤 시대에는 그 언어가 감각처럼 느껴지고, 감각을 활성화시키는 시가 있어요. 신혜옥 시인의 시집을 소개했었거든요. 신혜옥 시인은 세밀한 감각을 언어로 잘 표현하는 시인이라는 걸 이야기하면서, 테니스의 감각을 아는 분이라면, 이 시집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고, 시를 한 편 읽어드리죠. 이 시는 어떤 사람이 더 좋아할까, 생각해서 엮어주는 작업을 한 거예요. "
팟캐스트를 진행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할 때 인준은 정말 즐거워 보였고, 그의 기획력에 감탄했다. 문득 그의 전공이 궁금해졌는데, 인준은 러시아어학과를 전공했다. 19살의 끝에 선택한 전공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전공은 앞으로 다가올 삶의 전부라고 믿었던 때도 있었고, 아예 다른 길을 선택하게 해 준 선택이기도 했다.
"러시아어학과를 전공으로 선택한 건... 어중간한 선택이었어요. 경제, 경영과 같이 실용적인 학과로 갈지, 내가 정말 좋아하는 문학을 배울 수 있는 학과로 갈지, 선택 앞에서 한 가지만 고르지 못하겠어서 언어학과를 왔어요. 언어학과는 실용적인 부분과 인문학적 부분이 있어요. 언어를 배우는 건 기술을 배우는 것과 같아서 특화된 일도 있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전문가가 될 수 있죠. 그러면서도 언어를 통해 문화, 문학을 배웁니다. 러시아어학과에 가면 둘 다 선택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언어의 장벽이 있었던 거죠. 러시아어를 잘해야 실용적인 부분을 활용해서 취업도 하고, 문학도 즐길 수 있죠. 그래서 선택 앞에 다시 섰어요. 노력을 해서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을지, 혹은 좋아하는 책에 더 집중을 할지. 결국 러시아어는 졸업 여건만 간신히 넘길 정도로만 하고, 책을 선택했죠."
"그래서 사실 대학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았어요. 대학과 무관한 곳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는데, 그중에 한 곳이 시집서점 '위트 앤 시니컬'입니다. 서점에서 김현 시인의 시낭독회를 한다는데, 궁금해서 갔어요. 김현 시인의 시집 [입술을 열면]을 이미 갖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시가 너무 어려워서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도통 모르겠는 거예요. 그런 시를 낭독회에서 읽는다고 하니깐, 어떻게 읽지 싶었죠."
"신기하게도 시인의 목소리로 직접 들으니까 시가 이해가 되는 거예요. 이 시는 한 사람이 입술을 열고 또박또박 내뱉는 어떤 말들의 모음이에요. 누군가를 부르는 말이기도 하고, 건네는 말이기도 하죠. 현장에서 시인의 목소리로 직접 들으니까 시가 다르게 읽힌다는 경험에서 낭독에 매력을 느꼈어요. 시인이 어떤 의도로, 어떤 어조를 생각해서 시를 썼는지 낭독회에서만 알 수 있죠. 문장에 기호가 없으면 보통 평서문으로 읽게 되는데, 낭독회에서 시인은 의문문으로 문장을 내뱉는 걸 듣고서 충격을 받았어요. 그런 엇갈림이 매력적이었어요. 시집을 목소리로 들었을 때 다르게 보인다는 것으로 낭독회에 관심을 갖게 됐고, 낭독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한 경험이 지금 책에 관련된 일을 하는 것에 큰 밑바탕이 됐어요. 그래서 지금 하는 일에 영향을 준 책을 생각했을 때 이 시집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겠더라고요."
인준과의 대화를 위해 김현 시인의 [입술을 열면]을 사전에 읽었는데 확실히 어려웠다. 하지만 인준과 대화를 하면서 시를 하나씩 골라 낭독을 해봤는데, 눈으로 읽을 때와 다르게 자연스럽게 시가 이해되는 경험을 해서 놀라웠다. 시집에 대한 이야기는, 그가 기획하고 진행한 낭독회에 대해 더 들은 후에 마저 하기로 했다.
"대학교 때 친구들이랑 모여서 낭독회를 많이 열었어요. 대학에 비어 있는 공간이 많으니까,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모여서 낭독회를 하거나 책과 관련된 행사를 하면 너무 좋겠는 거죠. 간단한 아이디어를 시작으로 대학교 친구들과 빈 강의실에서 공강 시간에 낭독회를 열고, 지나가는 학생들이 한 번 싹을 들어올 수 있게끔 기획했어요. 학기에 두세 번 정도 열었죠."
"낭독이 뭐가 좋은지 잘 모르겠고, 낭독이라는 단어도 생소하죠. 낭독 자체에만 집중하면 오시는 분들이 낯설기도 하고, 분위기가 너무 딱딱하거나 힘들 테니, 낭독하는 공간이 편안한 공간으로 느낄 수 있도록 했어요. 마음이 풀리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에 집중을 했어요."
" 낭독회에 오신 분들이랑 대부분 나눠서 낭독을 하는 것으로 진행했어요. 낭독회에 왔으면 한 글자라도, 한 줄이라도 읽고 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낭독을 권유했어요. 듣고 가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소리 내서 읽는 것은 그냥 듣기만 하는 것과 차이가 많아요. 행사를 기획한 제가 시를 쓴 작가도 아니고, 저의 낭독을 듣는 게 특별한 건 아니잖아요. 저도 한 명의 독자이고, 같은 독자로서 같이 읽는 낭독이 각자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 궁금했어요."
"대학교를 졸업할 때 즈음 전공으로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책과 관련된 일을 하면 워라밸이 좋지 않다거나, 안 좋은 부분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었어요. 초반에는 취미로만 해야지 생각했는데, 제가 한 모든 활동이 다 책과 관련된 일밖에 없어서 결국 내 길은 이건가 보다 했어요. 책과 관련된 일을 인생에서 한 번쯤 해봐야 된다면, 젊을 때 하고 싶었어요. 가장 리스크 있는 행동은 가장 젊을 때 하는 게 좋지 않나 싶어서요. 30대에 다른 길을 가더라도, 그냥 해보고 싶었어요."
"사실 (전공 쪽으로) 취업 준비할 시간이 없었고, 모른 척했어요. 취업과 좋아하는 활동을 병행할 수 없고, 하나만 선택해서 갈고닦아야 된다는 생각으로 대학교 때 팟캐스트나 낭독회같이 책과 관련된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어요. 없으면 만들어서 까지요. 좋아하는 일을 할 거면 더 능동적으로 해보자고, 하고 또 하다 보니깐 운이 좋게 도서관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됐어요."
"책과 관련된 활동에 내 시간을 많이 써왔기 때문에 책과 관련된 일을 할 수밖에 없게 된 거죠. 사람들은 위험한 배팅이라고 이야기해요. 사실 베팅 한 것처럼 보이지만, 좋아하는 걸 했던 과정이 즐거웠으니 그것 자체로 플러스이고, 이 부분을 무시할 수 없어요. 20대 중반을 즐겁게 보냈다는 것으로 이미 충분했고, 즐거운 감각을 느꼈다면 어떤 의미가 발생하기 때문에, 쓸모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인간의 즐거움에는 실존의 힘이 있다. 즐거움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인생의 중요한 것을 선택함으로써 '나답게' 실존할 수 있다. 인준은 자신의 즐거움을 따라서 무언가 계속하다 보니깐 '운이 좋게' 도서관에서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지만, 역시 즐거움에는 '운'이라고만 할 수 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있다. 그 힘에 의해서, '나'와 '일'이 의미 있게 달라붙는다.
하지만 '이성'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사회에서 즐거움은 쓸모로 판단되지 않는다. 즐거움은 눈에 보이지 않고,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성과 감성의 복합체다. 신(身)과 심(心)처럼, 이성과 감성도 분리될 수 없다. 하지만 사회는 계속해서 '이성'만을, '쓸모'만을 이야기한다. 누군가의 쓸모만을 위한 존재하는 인간은 점점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존재의 불확실성은 삶을 불안에 휩싸이게 하고, 무기력증, 우울증, 신경증과 같은 병리적인 현상이 나타나게 한다. 우리는 당장 숫자로 셀 수 있는 쓸모에 현혹되지 않고, 즐거움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여전히 다른 산업으로 취직을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는데, 저는 아직 책이 사양산업이라는 게 실감이 되지 않아요. 좋아하는 것을 계속해왔고, 제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계속 생각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도서관에서 일하게 됐죠. 저는 좋아하는 분야에서 일을 찾는 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좋아하는 분야에서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는 게 가장 유리한 방법이잖아요. 처음부터 쌓아나가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게 있다는 것은 내가 먼저 앞서 나가는 지점이 있는 거잖아요. "
"지금 도서관의 일이 나에게 맞는지 고민은 늘 하고 있어요. 다만 일을 하면서 큰 괴리감을 느끼지 않아요. 지금 도서관에서 공간을 운영하고, 도서관에 오는 사람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도서관의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하고 진행하는 일이, 취업하기 전에도 했던 일이에요. 행사를 준비할 때의 어려움, 행사를 잘 끝내고 난 뒤의 벅차오름의 감정들이 도서관에서 일을 하면서 동일하게 느낄 수 있고, 지금의 도서관에서 그 감정을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해요."
" 처음부터 도서관에서의 일을 (),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일하고,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손님으로 오고,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아는 어떤 유대감이 있는 곳에서 일하는 게 좋아요. 이곳은 관내의 카페 직원분도, 심지어 주차를 도와주시는 분까지 다 문학 책을 읽고 있어요. 책을 읽는 삶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말해주는 공동체에 속해서 일하는 게 정말 좋습니다."
"도서관은 밤 9시까지 열려있어요. 퇴근을 해서 책을 조금이라도 읽고 집으로 돌아가는 손님의 눈빛을 보고 있으면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이 사람이 자신의 삶의 한 파트를 책을 읽으면서 휴식을 취할 수도 있고 자기 계발을 하는 걸 수도 있고 시간을 보내는 거잖아요. 그 사람이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고 그런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되게 의미 있는 일이라고 느껴요."
빅데이터 전문가 송길영의 <호명사회>에서 인간은 산업변화의 속도는 빨라지는 반면, 생애가 길어지면서 하나의 직업으로 살아가기 더욱 힘들어질 것으로 예측한다. '우리 앞에 펼쳐진 긴 시간은 불안으로 다가옵니다. 삶의 가능성이 무한대로 허용되면 그 삶의 지향점은 길을 잃기 쉬운', 즉 불안이 불안이 낳는 시대가 왔다. 하지만 지금의 일을 해야만 하는 '지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하나의 직업에 갇혀 있지 않는다. 인준 역시 '책 읽는 삶을 도와주는 일'에 고정된 지점을 찍고, 팟캐스트에서, 낭독회에서, 도서관까지 선을 그었다. 일의 외형이 달라져도, 괴리감을 갖지 않는다. 만약 내 삶에 긴 시간과 수많은 가능성이 펼쳐져,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발이 닿지 않는 바닷속의 부유하는 불안을 느낀다면, 현재 당신을 즐겁게 하는 것에 집중하고, 그 즐거움을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점'을 찍는다. 그 '점'이 있을 때 우리는 바닷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내 두 다리로 헤엄칠 수 있다.
낭독회를 직접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책 읽는 삶을 도와주는 것]에 '점'을 찍고 방향을 잡은 인준은 문학도서관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래서 낭독회에 관심을 갖게 해 준 김현 시인의 [입술을 열면]을 빼고 지금의 일과 삶에 대해 말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와 [입술을 열면]을 펼쳐놓고 시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책 한 권이 삶을 바꾼다는 말에 저는 반신반의하는 편이에요. 책을 진짜 많이 읽은 사람은, 그렇다면 삶이 수십 번 바뀌어야 하잖아요. 좋은 책을 읽었다면. 근데 꼭 그렇지는 않잖아요. 삶은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고, 오히려 많이 읽은 사람의 삶이 안 바뀌는 경우도 있고. 삶을 바꾸는 건 책이 아니고, 책을 읽고 뭔가를 느낀 사람의 선택을 바꾸는 거잖아요. 단지 책을 읽는다고 바뀌지는 않고, 책을 읽고 어떤 생각과 용기를 갖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삶이 바뀐다. 많은 시집을 읽고 많은 아름다움을 느꼈지만, '입술을 열면'은 아름다움도 있지만, 내가 직접 낭독회를 해보는 선택을 했고, 그로 인해 삶이 바뀌었고 영향을 받았고, 근데 또 운인 것 같아요. "
그와의 대화를 위해 미리 시집을 읽어 갔는데, 전체적으로 '제대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입술을 열고 묻고 답하는 시집이었다. 제대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인간이든 원해서 태어나지 않았다. 우리 모두 삶에 우연히 던져졌고, 그 우연함 속에서 누구와도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하고 유일한 존재가 되어 삶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삶다운 삶은 무엇일까 말하는 게 주저되는데요. 삶답지 않은 삶에 대해서 또 생각을 해야 되잖아요. 삶 답지 않은 삶은 무엇일까요? 누군가가 하라는 것만 하는 삶일까요? 그렇다면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는 삶이 참다운 삶일까 그런 생각이 드니 참 어려운 것 같긴 해요. "
오히려 '삶답지 않은 삶'을 생각해 봄으로써, 개인적으로 나의 삶다운 삶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 보았다.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던 때의 나는, 먹는 것이 이상해졌다. 나를 위해 챙겨 먹는 행위에 위화감이 느껴져서, 이상한 걸 먹었다.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모를 음식들을 채워 넣었고, 제대로 된 식사를 언제 마 지막으로 했는지 기억도 안 났다. 그래서 <입술을 열면> 170페이지의 '이 가을'이란 시가 좋았다.
구운 삼치를 앞에 두고
입술의 뼈를 맞댄다.
이제 뼈를 발라 먹겠습니다.
사람은 흰밥 위에 흰 살 올려놓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거기에 늙어 죽겠어 가 있다는 듯이
늙어가는 것에 생명이 있다는 듯이
사람은 먹고
산다.
아, 제대로 산다는 것은 제대로 먹고산다는 것이지라고 삶이 명쾌해졌다. 삶을 사랑하기 위해 월요일을 사랑하기로 결심했을 때, 제대로 먹는 것에 집중했다. 쌀을 깨끗하게 씻어서 밥을 안치고, 된장을 풀고 봄에만 먹을 수 있는 냉이를 한 움큼 다듬고, 생선을 바싹 구웠다. 제대로 먹으려면, 제대로 살아야 하고, 제대로 살면, 제대로 먹어졌다. 김현 시인의 시 덕분에 '일은 그냥 먹고살려고 하는 거지'의 단조로움을, 단단함의 '먹고살려고 하는 거지'로 전복된다. 먹고살려고 일한다는 말이 좋아졌다.
"이 가을에서, 흰 밥에 흰 살을 올려먹는 행위가 세잎님의 삶을 보여줬다면, 저의 삶은 173쪽의 [생명은]으로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시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문장이 '생명에는 생명의 숨을 불어넣어 주어야 하는구나 배워서 알지 않는다'거든요. 뽀뽀라는 가벼운 행위가 우리가 인간임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삶다운 삶이란 게 복잡해 보이지만, 오히려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행위, 밥 먹는 것, 사랑을 표현하는 것, 뽀뽀하는 것, 이런 것들이 삶을 삶답게 해주는 것 같아요."
생명에는
생명의 숨을 불어넣어 주어야 하는구나
배워서 알지 않는다
숨구멍이라는 말을
콧구멍이 아니라
입술의 구멍으로 받아들이는 일
그것은 뽀뽀
(...) 입술을 찾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같다
입술을 쑥 내민다
입술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요즘 당연한 걸 자주 읽게 되는 것 같아요. 그 문장을 보고서 고마운 사람에게는 고맙다고 얘기를 해야 되고, 진심을 보여줘야 되는 사람에게는 진심을 보여줘야 하는 거고, 사랑하는 사람이면 사랑한다고 얘기를 해야 되는 거죠. 그게 너무 당연한 건데, 우리가 생각해 보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너무 많이 쌓여가고, 그게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하잖아요. 근데 여기서는 그냥 뽀뽀라는 행위 자체, 그냥 혹은 숨을 쉰다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그게 되게 중요하다고 얘기를 하잖아요. 그게 다시 내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계속 질문하게 되는 시여서 좋아요. 저는 당연한 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고, 그게 유일한 살 길인 것 같아요. 저한테는. 아니면 삶이 너무 힘들어질 것 같아요. "
"그리고 전체적으로 이 시집은 있는 그대로의 존재들에 대해서 보려고 해요. 인간과 삶에 대해 유난을 떨면서 얘기하지도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살아오는 것을 보려고 해요. 그런 부분에서 저에게 위안을 많이 주었고, 있는 그대로의 나에 대해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분들에게 이 시집을 추천해주고 싶어요. 나의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없지만,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의 기쁨, 슬픔에서 삶을 살아가는 힌트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시집은 한 사람(나 자신, 혹은 타인)의 내밀한 속마음을 듣는 일인데, 누군가의 내밀한 속마음을 듣는다고 다 읽히지는 않아요. 그 사람의 속마음을 다 읽을 수 없다는 게 당연하게 느껴져요. 그래서 시집을 읽으면 모든 걸 다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은, 누군가를 만나서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
실과 같아요. 그럼에도 이해해 보려고 계속 보는 것이 중요하겠죠."
【 Intervewee : 이인준 】
책 읽는 삶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다. 도서관에서 책을 정리하고, 작은 모임과 행사 진행하며,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이 책 읽는 삶을 지속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한다. 도서관 바깥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서울 마포구 홍대에서 음악과 이야기가 있는, 보이는 라디오 <잼중의 포스트잇>을 진행하고 있다. 지금의 우리가 할 수 있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생각한다.
【 Interviewer 박세잎 】
월요일을 사랑하지 못해서 삶이 괴로워진 과거의 나와 지금의 당신을 위해 일한다. 월요일을 사랑하는 방법을 찾던 중, 월요일을 사랑하는 사람은 '책'을 읽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책은 일과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내가 누구인지 알게 해주는 좋은 대화상대이기 때문이다. 인터뷰 시리즈 <월요일을 사랑하는 사람의 서재>는 월요일을 사랑하는 사람이 고른 책을 읽고, 그들의 삶을 따라가면서 우리의 월요일이 변할 수 있는 무언가를 전하려고 노력한다. 월요일을 사랑함으로써 삶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