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모토 타츠키, 룩백
연말에 성수동 1인 서재 출판전야를 예약했다. 뚝섬역의 출구를 나와 좁은 골목사이를 걸어가면서 방학이 끝나고 미묘하게 어딘가 달라진 친구들이 앉아있는 교실에서 흐르는 낯선 공기가 느껴졌다. 혼자가 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했던 내가, 연말에 서울에서 혼자, 1인 서재를 예약을 하다니. 서재의 문을 열자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휩쓸렸던 대도시에서의 삶을, 혼자가 되면 발이 닿지 않는 물속으로 자주 미끄러지는 것 같아서 죽기 살기로 사람들 사이에 끼어있었던 이십 대의 삶이 밀려왔다.
이십 대의 나는 사람 사이에서만 어떤 존재가 될 수 있었다. 부모님의 딸, 남자친구의 사애인, 신문방송학과의 12학번, 미래전략실의 사무원. 사람사이에 섞이려고 남이 하는 건 다하려고 했다. 내 몸을 움직이게 하는 힘을 타인에게 넘겼다. 타인과 비교하며 내 몸은 고무줄처럼 늘어졌다 줄어듦을 반복했다. 반복의 반복, 그 끝에 탄력 없이 흐물흐물해진 고무줄처럼 무기력해진 나는 혼자서는 제대로 서지 못하고 어딘가 걸쳐져 있어야만 했다. 한 번 더 늘어트리면 툭 끊어질 것 같이 얇아진 나는, 나를 고립시켰다. 혼자도, 혼자가 아닌, 그냥 아무것도 아니고 싶었다. 지금은 생각한다. 그때 나는 고립이 아니라 고독해졌어야 했다고.
1인 서재 출판전야는 '고독의 힘'을 말하는 공간이다.
"고독은 자신은 물론 타인과 더 잘 지내기 위해 잠시 비켜서는 일이에요. 사람들 한가운데 있으면 나 자신을 잃기 쉽고, 자신을 잃은 자들 간에는 건강한 관계가 성립되기 어렵거든요. 특히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한국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죠. 저는 글을 쓸 때 고독의 힘을 체감해요. 정확히 말하면 글을 쓴 후 고독의 힘을 느껴요."
출판전야를 만든 이준우는 고립과 고독을 분명하게 구분해 낸다. 타인과 단절되기 위한 고립이 아닌, 타인과 연결되기 위한 고독의 시간을 가지면, 혼자여도 혼자가 아니어도 존재가 희미해지지 않는다. 나의 단단한 두 발과 땅이 서로 끌어당기는 중력에서 실존을 느낀다. 고립과 고독을 구분하고, 고독을 위한 공간을 만든 그의 삶이 궁금해진 나는 그에게 편지를 남겼다.
봄비가 내리는 3월, 뚝섬역을 다시 찾았다. 출구에서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니, 작은 평수이지만 견고해 보이는 카페가 보인다. 연말에 왔을 때도 느꼈지만 이 동네는 취향이 확실한 사람들이 갖는 차분함이 흐른다. 오늘 만나기로 약속한 그에게서 아이스커피를 포장해 출판전야까지 걸어가자는 연락이 왔다. 그는 회색니트와 청바지차림으로 골목 앞에 서있었다. 포장한 커피를 들고 좁은 골목을 요리조리 걸어가며 안부를 물어오는 그의 모습을 보며 동네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고독을 이야기하며 서재를 운영하는 사람이 출근하기 딱 좋은 동네라고 생각했는데, 평일에는 IT업계의 회사원으로 다른 동네로 출근한다는 그의 말에 크게 놀랐다. 서재와 IT라니?
이준우는 한 주에 두 번의 월요일을 산다. 평일에는 IT서비스기획자로, 주말에는 1인서재 출판전야의 지기로. 2018년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라는 단어의 등장과 함께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는 추세에 두 번의 월요일이라니. 많은 사람들이 한 번의 월요일도 힘들어한다. work와 life를 구분하는 것만 봐도 일을 대하는 사회의 전반적인 시선도 느껴진다. 우리는 대체로 일을 싫어한다. 동료와 주고받는 직장생활의 밈에서도, 희화로 희석되지 않은 일에 대한 병리적인 현상이 잔존한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이준우는 월요일을 하나 더 만들었다.
" 어떻게 회사 일과 서재 일을 병행하는지 주위에서 물을 때가 있어요. 하나의 일보다 두 개의 일을 하는 게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는 질문이죠. 이 전제가 적어도 저에게 있어서는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서재 일 혹은 제가 좋아하는 다른 일에서 얻는 즐거움으로 회사 일에서 오는 회의감을 상쇄하거든요. 만약 월요일에 절 기다리는 게 회사 일뿐이었다면 월요병이 극심했을 거예요."
군 입대 전까지 이준우는 주어진 일을 착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주어진 문제를 풀고, 주어진 진로를 선택했다. 워라밸이라는 말을 입에 달며, 주어진 일을 하면서 살아갔을 그에게 변화가 생긴 건 우연히 SF소설을 쓰면서 부터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푹 빠져서 글을 썼다. 외부에서 주어진 일이 아니라, 내 안에서 솟구쳐 나오는 일을 할 때의 기쁨을 알았다. 외부에서 주어진 일은 내가 아니어도 상관없는 무력함이 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다른 누군가에게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는 무력감이 월요일을 싫어하게 만든다.
"work와 life를 구분하는 이유는 work가 외부로부터 주어진 일이기 때문이라고 봐요. 지금의 제가 워라밸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 건 아니에요. 제 안에서 솟구쳐 나오는 일이 아닌, 외부에서 주어진 일을 바라볼 땐 여전히 그것을 삶에서 분리해서 보니까요. 결국 일이 어디에서 오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제 삶에서 분리된 일을 점점 줄이는 게 목표예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월요일이 기다려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외부에서 주어진 일은 내가 아니어도 상관없는 무력함이 있다. 일과 나의 관계를 '대체 불가능함'으로 엮으려면, 내 안에서 솟구쳐 나오는 일을 찾아야 한다. 내 안에서 솟구쳐 나오는 일이란, 오해가 없도록 설명이 필요하다. 나도 몰랐던 천부적인 재능을 찾거나, 나를 바뀌게 해 줄 특별한 경험과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내 삶 앞에 놓인 수많은 작고 큰 선택의 주체가 타인이 아닌 '나'에게 두고 있는지 묻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선택이 자유롭다고 착각한다. 나의 성공을 위해, 나의 안정을 위해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 믿으며 '더 많이, 더 빨리, 누구보다 잘' 일하려고 한다. 어느 순간 '과다한 노동과 성과는 자기 착취로까지 치닫는다.'<한병철, 피로사회, 문학과 지성사, 29쪽(2012)>. 자기 착취는 외적으로 채찍질하며 노동을 강요하는 사람이 없기에 자유로운 느낌이 있다. 하지만 일을 마치고 침대에 누웠을 때 이게 삶인가, 회의감에 사로잡히면서도 일이 많지 않으면 불안함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면 일과 나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준우에게는 30살을 기점으로 그 시간이 찾아왔다.
" 이전까지는 해야만 하는 게 일단 주어졌으니 고민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어요. 그렇게 대학도 졸업하고, 먹고 살 직업도 가지고 나니깐, 이제 해야 할 게 없는 거예요. 그때가 30살이었어요. 그전까지는 그냥 굴러가듯이 살았죠. 그럼 이제 뭘 해야 하지? 죽기 전까지 어떻게 살아야 하지? 란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요. "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면서 일에서 회의감도 느꼈다.
" IT업계는 자기 착취가 굉장히 심하다고 생각해요. 나쁘다고만 이야기할 수 없지만, 예를 들어 지금 내가 동네에 빵집을 차려요. 오늘 문을 연 빵집이 당장 해외 진출이나, 규모 확장을 하겠다면 어려움이 많죠. 하지만 IT업계는 경계 없이 규모를 확장할 수 있는 분야예요. 그래서 IT업계에 일하는 사람들은 성공에 대한 한계가 없어요. 빵집을 내서 우리 동네에서 잘 돼야지가 아니라, 처음부터 성공에 대한 스케일이 큽니다. 성공에 대한 레이싱이 엄청 강렬해요. 매일 경쟁하듯 아티클을 내놓고, 요즘 시도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든 포장해야 하고. 자기 자신을 착취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회의감이 좀 들었어요."
"한계 없는 성장 외에 IT업계의 특징은 매체가 빠르게 변화한다는 거예요. 제가 고등학교 때 모두 피처폰을 썼는데, 아이폰이 나오면서 순식간에 스마트폰 시대가 됐죠. 절대 안 망할 것 같은 회사도 망해버리는 빠른 전환을 보면서 내가 열심히 잘 만들어도 매체가 바뀌면 쓸모가 없어질 거라는 것에 불안감도 있었어요. 어느 날 길을 걷는 데 '40년 전통'이라고 쓰인 국밥집이 멋있어 보였어요. 자기만의 것을 잘 지켜오면서 오랜 시간 동안 이어져 오는, 변하지 않는 그 무언가를 동경하게 됐어요. "
40년 전통 국밥집을 동경한 IT업계 회사원 이준우는 '공간'에 관심을 갖게 된다. 공간이라는 매체는 아주 옛날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매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공간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그의 마음이 꿈틀거렸다.
"IT업계에서 일하면서 내 속도대로 살기는 어렵겠죠. 회사에서 주어진 월급만큼 일한 것 같은데, 다른 팀원이 더 많은 일을 하면 지금 이렇게 일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며 속도를 올렸어요. 내 속도대로 일을 하려면 홀로서기를 해야겠죠. 홀로 선다는 건 '나를 팔 수 있어야' 하잖아요. 나를 팔아보는, 나라는 사람을 어딘가에 내놓는 연습을 하는 공간이 필요했고, 글쓰기에 관심이 있으니깐 '서재'를 만들어보자! 가 된 거예요."
"보통 사람의 쓸모가 사회가 만든 직장이라는 틀 안에서 정의되다 보니까 (직장 없이) 사람의 쓸모를 직접 만들기가 어렵긴 해요. 제가 자신만의 서점을 만든 사람이 쓴 책을 읽었는데, '사회가 만들어낸 것만 직업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나하나 모으다 보니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이란 직업이 된 것 같다'라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내가 만든 직업으로 삶을 영위하는 것에 대해 저도 고민을 시작한 거죠."
성수동의 1인 서재 출판전야는 2024년 5월 문을 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나하나 모으다 보니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이란 직업이 만들어진 것처럼, 이준우는 처음으로 무엇이 삶이고 일인지 구분하는 게 무의미하다고 느끼게 해 준 글쓰기로 서재를 운영하는 사람이란 직업을 만들었다. 홀로서기를 위한 첫 시도였다. 군 입대 전 처음으로 쓴 SF소설을 시작으로 글 쓰는 재미를 알았고 독립출판도 했다.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기도 했지만 그 꿈을 지탱할 만큼 포부가 크지는 않았고, IT 서비스 기획자를 직업으로 선택했지만 이준우는 글을 계속, 계속 썼다.
"글쓰기를 계속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날... 쓰고 있던 소설의 끝을 낸 날이었어요. 쓰는 것 자체로 재밌었지만, 그날은 누구한테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엄마한테 보여드렸거든요. 사실 (아들이 쓴 글이니깐) 대충 볼 수도 있잖아요. 새벽에 잠에 깨서 화장실을 가려는데, 엄마가 부엌에서 미등을 켜놓고 제가 쓴 글을 진지하게 읽고 있는 거예요. 순간 너무 부끄러워서 화장실 가려다가 바로 제 방으로 들어갔어요. 그런데 내가 쓴 글을 누군가 진지하게 읽어주는 모습을 딱 보는 데 그게 저한테 임팩트가 컸던 것 같아요."
그가 글을 쓰면서, '이 글을 쓰면 조금 더 먼 미래에 출판전야가 만들어질 거야'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좋아하는 글을 계속 쓰다 보니, 어느 순간 출판전야를 만든 사람이 되었다. 이준우가 쓴 첫 글에서 출판전야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사회는 그의 쓸모를 계산하지 못한다. 사회가 정한 쓸모의 기준은 돈, 성공, 인지도에서 오니깐. 그럼에도 그는 계속 글을 썼고, 출판전야라는 공간을 만들어 냈고, 고독이 필요한 사람에게 쓸모를 내어준다. 사회가 계산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것의 쓸모는 분명히 있다. 쓸모없는 것의 쓸모를 믿지 못하면, 우리는 영원히 '내부에서 주어진 일'을 찾을 수 없다.
"너는 어떻게 좋아하는 걸 찾았냐고 묻는 직장인이 많았는데, 질문에 뭔가 운명적인 사건이 있었을 거라는 기대가 담겨있어요. 사실 그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하이큐》* 아세요? 사소하게 느껴지는 것을 계속하다 보니깐 나중에 너무 소중하게 되어버린 게 많다고, 그러니 처음부터 거창할 필요가 없다는 대사가 있어요. 저도 운명적인 것보다는 사소한 것들이 모여서 지금까지 글쓰기를 계속할 수 있었어요."
* 일본의 배구만화
이준우는 2년 동안 41곳의 공간과 64권의 책을 읽으면서 글쓰기에 몰입할 수 있는 공간은 어때야 하는지 고민했다. 글쓰기는 자신의 내면 속 무언가를 이끌어 내는 일이기 때문에, 글쓰기를 위해 '고독'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 때보다 고독이 결핍된 시대에 살고 있고, 타인의 시선과 목소리가 밀려드는 환경에서 자신과 대화하는 건 쉽지 않으며* 그는 우리에게 고독의 안녕을 물었다.
*출판전야 소개글 인용
"IT업계에서 일할 때는 책 보다 인터넷에서 아티클을 확인하는 게 빠르죠. 서재를 운영하고부터는 책상에 책을 많이 올려놔요. 올려놓는 책에도 일관성이 생겼어요. 고독과 관련된 책을 많이 올려놔요. 서재를 시작하면서 고독이라는 주제에 빠져들었거든요. 올리비에 루모가 쓴 『자발적 고독』에서 고독이란 사회에서 더 잘 살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라고 말해요. 어떤 현상에 대해 틈바구니 안에 있으면 안 보이는 것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서 숲 안에 있으면 숲이 전체적으로 어떻게 생겼는지 볼 수가 없잖아요. 숲 밖으로 나와야 내가 지내고 있는 환경이 저런 식으로 생겼구나라는 걸 알게 되죠. 그래서 고독은 개인적 차원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 혹은 어떤 리더의 위치 있는 사람, 즉 사회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해요."
삶을 살아가는 것도 글쓰기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면, 삶에도 고독이 필요하다. 그가 공간을 운영하는 이유에단순히 '글쓰기'를 위한 고독으로만 국한되어 있지 않음이 느껴진다.
"저한테 사명이 생긴 것 같아요. 돈도 안 벌리는 서재 운영을 왜 하고 있냐고 물으면 재미라고 답하기엔 부족함이 있어요. 계속할 수 있는 힘은 사명 덕분이에요. 목정원이 쓴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에서 내가 하는 일이 내 대에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몇백 년 뒤에 이루어지더라도 내가 계승할 수 있는 흐름만 만들어줘도 의미가 있다고 말해요. 우리 사회에 고독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게 작은 목소리일지라도, 계속 모여서 이어져 가지고 우리나라에서도 고독을 즐길 줄 알고, 사회적으로 중요한 가치라는 게 받아들여지는 그런 날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면 좋겠어요. 이 사명은 서재를 하면서 얻은 큰 소득이에요."
'사명'. 하여금 사(使)와 목숨 명(命)으로 이루어진 단어. 내 목숨을 바쳐서 해야만 하는 것. 목숨을 바친다니 거창해 보이지만,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목숨을 바치는 일이 아닌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목숨을 바쳐가며 삶을 사는 것일까. 아쉽게도 삶의 끝에서야 알 수 있기에 지금의 시선으로는 절대 알 수 없다. 그러니 지금 눈앞에 있는 월요일에게 시선을 둘 수밖에.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번 주의 '월요일'을 살고 있습니까.
인터뷰는 그에게 이전의 월요일과 지금의 월요일이 달라졌는지 묻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서재를 운영하면서 월요일이 하나 더 생겼죠. 저한테는 즐거운 월요일이에요. 토요일 아침에 8시쯤 일어나서 서재 청소를 하러 오거든요. 그게 저한테 회복이 되는 시간인 것 같아요. 공간을 가꾼다는 게 생각 없이 할 수 있으면서도 오히려 그 생각 없이 할 수 있다는 게 저한테 명상처럼 작용합니다. 그리고 저의 분신 같은 공간을 좋아해 주는 분들을 만나고, 회사 일에서 느낄 수 없는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그에게 월요일을 사랑하기 위해 읽은 책 중에 한 권만 골라달라고 부탁했다. 월요일을 사랑하는 것은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좋아하는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 질문하고 답하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서사 속에서 이루어진다. 서사는 따라 할 수 없다. 마치 타인의 삶을 따라 하며 살 수 없는 것처럼. 단지 어디서부터 질문과 답을 해야 할지 모를 때, 타인의 삶을 따라가 보는 것이다.
그는 만화가를 꿈꾸는 두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후지모토 타츠키 작가의 룩백을 꺼내주었다.
"만화책도 인생 책이 될 수 있을까요? 룩백은 처음엔 영화로 접했는데요. 영화를 보고 원작이 궁금해져서 만화책을 사서 봤어요. 만화책의 컷 연출이 그려내는 감정선이 인상적이었어요. 특히 쿄모토가 후지노에게 왜 만화를 그리는지 물은 뒤 이어지는 장면에서 감동이 물밀듯 밀려왔어요. 어떤 말도 없이 이어지는 컷들에서 예술가가 예술을 하는 이유가 드러나죠. 만화책을 볼 당시 외롭다는 생각을 많이 할 때였는데요. 룩백을 보며 나를 이해하고 응원해 주는 친구를 만났다는 생각이 들어 큰 힘을 얻었어요. 앞으로도 곁에 두고 위로가 필요할 때마다 읽지 않을까 싶어요."
외로움이 어디서 왔는지 물었다.
"내가 이 세상에 왜 존재하는지 존재이유를 모르겠고, 내게 자신이 없을 때 오는 외로움이 하나 있고, 그런 상황일 때 곁에서 '아니, 너 잘하고 있어, 내가 너의 작품을 좋아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오는 외로움이었던 것 같아요."
* 룩백의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나에게 자신이 없을 때, 지금의 내가 하지 않았던 선택들로 모아 만든 훨씬 나은 가능성의 세계에 빠져 괴로워한다.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룩백』에서 쿄모토의 죽음 앞에서 후지노도 가능성의 세계에 빠진다. “나와 만나지 않았다면 쿄모토는 죽지 않았을 텐데.” 쿄모토는 방 밖으로 나오는 것을 무서워했지만, 후지노와 만화를 그리면서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걸어갈 준비를 했다. 미술 대학에 진학했고 탄탄대로 삶이 흘러갈 것 같았지만, 교내에서 괴한이 휘두른 흉기에 쿄모토의 삶은 멈춘다. 선택은 무섭다. 선택이 내 뜻대로 흐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는 더욱.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낫다는 허무함에 휩쓸린다. 캄캄한 허무의 바닷속으로 휩쓸리다 잠겨버리기 전에, 우리는 선택을 뒤돌아봐야 한다. 만화책의 제목처럼, 룩백(look back). 정말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나았을까? 정말로? 후지노는 쿄모토가 그린 네 컷 만화 ‘등 뒤를 봐’를 보며, 쿄모토와 함께 한 시간을 돌아본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다면 절대 갖지 못했을 소중한 시간을.
두 번의 월요일을 살아가는 선택 앞에서, 그도 ‘이 선택을 하지 않았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라는 허무한 가능성의 세계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가능성의 세계에 휩쓸리지 않고 지금의 삶을 살아가는 이유를 물었다.
"내가 왜 태어났지, 왜 살아야 하지, 질문을 하면서 공허감을 많이 느끼는 편이에요. 내가 하필이면 지금의 나로, 이 시간대를 살고 있는 이유를 증명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어요. 우선 세상이 존재하는 이유부터 생각해 보면, 절대적인 선을 위해 세상이 만들어진 건 아닌 것 같아요. 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비극적인 사건들만 봐도 그렇죠. 세상은 '선'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만들어내기 위한 것 같아요. 재밌는 이야기는 희극도 있고, 비극도 있으니깐요."
"그렇다면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의 임무는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거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제가 공허감을 이기는 방식이에요. 내가 어떤 이야기로써 누군가에게 읽혔을 때 재미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어요. 물론 재미는 블록버스터뿐만 아니라, 퍼펙트데이즈처럼 어떤 사람의 단조로운 하루를 그리는 소박한 이야기에도 있어요. 이전에는 거창한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스케일 안에서 재미있는 삶을 살자는 게 목표가 된 것 같고, 서재도 그런 일환인 것 같아요."
글을 쓰는 사람답게, 자신의 삶을 이야기에 비유하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이야기 구조 중에 3막 구조가 있어요. 1막, 2막, 3막으로 나눠져 있는데 각 막마다 돌이킬 수 없는 관문이 있어요. 돌이킬 수 없는 관문을 지나가는 순간부터 2막에서 1막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예를 들면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교통사고를 봐요. 그냥 지나쳐버리면 이야기가 만들어지지 않아요. 근데 주인공이 멈춰서 살인자의 얼굴을 보면 그때부터 돌이킬 수가 없게 되죠. 서재도 제가 제 삶을 재밌는 이야기로 만들기 위해 만든 돌이킬 수 없는 관문이에요. 제 삶을 다음 막으로 스스로 넘어갈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 거예요."
"이전에는 재미를 글을 써서 경험하려고 했어요. 소설 속 주인공의 삶의 갈래가 여러 갈래로 퍼져나가는 게 저랑 비교돼서 즐거웠거든요. 그러다 문득 내 삶도 그렇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어요. 소설과 삶의 차이는 소설의 돌이킬 수 없는 관문은 주인공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발생해요. 하지만 삶은 극적으로 변할 만한 사건이 저절로 일어나지 않죠. 저절로 일어난다면 불행한 일뿐. 그러니 내 삶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뀔 수 있는 돌이킬 수 없는 관문을 계속 만들어낼 수밖에 없어요."
선택한다는 것은 삶에서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어떤 힘이 흐르는데, 그 힘에 몸을 내던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힘을 올라타는 것이다. 우리는 더 멀리 나아갈 수도 있고, 거센 힘에 떨어져 나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올라탄다. 서퍼가 거센 파도에 떨어졌다고, 바다를 떠나지 않는 것처럼. 파도 위에 올라탔을 때, 발끝에서부터 전해지는 단단한 감각을 잊지 않고 돌아보며.
"제 삶은 제가 써야 되니까. 그것이 삶에 동기부여가 됩니다."
1992년 서울 출생. 중국지역학을 전공 후 IT서비스 기획자로 근무하면서 꾸준히 글을 쓰며 독립출판도 두 차례 했다. 이야기를 쓰는 걸로 부족해 이야기 같은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에 뚝섬에 고독의 서재를 열었다.
몽상가를 위한 은신처로 성수동에 위치한 1인 서재이다. 창작자가 많아지려면 고독의 장소가 필요하다는 서재지기 나름의 진단으로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은 작가에게 서재를 내어주는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사회에 창작자가 많아지면 그만큼 길이 많아진다고 믿는다. 군자대로행이라는 말이 있지만, 모두가 군자가 되기 위해 같은 길에 올라타 결국에 미어터진 형국이 되어버린 지금, 자신만의 길을 추구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에서 살고 싶어 그걸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공간이다.
editor bak safe(박세잎)
photographer jang wahn soo(장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