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일기 - 10
나는 우울증 환자로소이다. 범불안장애가 심한.
나는 “기다리라”는 세간의 조언에 초조함을 숨기지 못하는 당장 서른을 앞둔 멜랑콜리의 주접이오, 지랄의 현현이지.
좌절과 실망은 20대의 전유물이라지만 요즘 난 죄책감을 느낀다오. 20대 중반에 느꼈던 부모를 행한 죄책감은 당신들의 현명한 처사로 나아졌지만 나란 타자—인간을 향한 종류는 여전하다네.
서른에 세상이 무엇을 ‘당연히’ 줘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나, 이쯤이면 애인이라도, 연애 비슷한 감정이라도 느낄 여유가 있길 바랐고, 백수 딱지가 싫어 대학원 뒤에 숨는 비겁한 인간은 면하고 싶었고, 심리상담도 받았으니 항우울제 복용량은 줄었을 줄 알았네. 수면제는 내성이 쉽게 생기지. 알토이드 까먹듯 목구멍에 털어놓고는 내 리그에서 한참 벗어난 이상형에게 괴상한 추파를 던지는—
나는 서른 해를 살고 나면 그중 30%는 행복한 기억일 줄 알았어, 3%가 아니라. 타인의 응원에 쌍욕을 박지 않는 고고한 어른 내지는 여성이 되어있을 줄 알았지, 길 잃고 방황하는 노새가 아니라.
부모가 번 돈을 그대들의 중년과 노년의 행복에 써서 행복하고, 형제들이 필자보다 똑똑하여 안심이야. 정작 잘난척쟁이 장손은 나라는커녕 동네와 학교를 벗어나지 못한 중증의 패배자가 되어 김치처럼 잘 익고 있다오.
피부를 까면 그 속엔 의무감, 권태, 욕망과 실망이 나올 것이고, 그 밑에 가루로 으스러진 희망이 있길 바라나—
판도라가 해피엔딩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