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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병진 Aug 17. 2018

왜 빌라 구입 대출은 아파트 구입 대출보다 까다로운가

아파트가 빌라보다 더 비싼데 말이다. 

8.

집을 사면서 내가 대출 받아야 할 돈은 9천 5백만원이었다. 원래 집의 보증금, 내가 따로 모은 저축, 그리고 외삼촌의 지원이 있었다. 2억 1천 800만원을 메꾸려면 9천 3백만원이 필요했지만, 200여만원의 취득세도 있어야 했다. 대출을 직접 받으러 가본 건 처음이었다. 과거 3천 5백만원을 대출받을때는 어머니가 대신 뛰었다. 그때의 나는 대출을 너무 걱정했었다. 아버지의 사례를 경험한 터라 대출받는 걸 두려워했고, 동시에 대출을 받기 위해 처리해야 하는 각종 일들을 처리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당시 나는 서른살이었다. 주변 친구들은 이미 적게는 몇 천만원에서 많게는 몇억의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장만한 상태였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대출을 상담하면서 나도 몰랐던 나의 위치가 정해졌던 것 같다.  그때 상담에 응한 은행원은 “근로자·서민대출이 이율도 싸고 좋다”고 말했다. 내가 근로자이자 서민이라는 사실이 생경했다. 게다가 수입이 특정금액 이하(!)여야만 하고, 부모님을 부양하고 있어야 한다는 대출 자격요건에 내가 딱 맞는다는 사실도 기쁘게 들리지 않았다. 내 직장과 연봉, 근무연차들을 털어놓고 그것을 분석한 은행원의 답변을 들으면서 나만 자각하기 어려웠던 내 자신이 오롯이 드러났다. 그러니까 이 사회에서 저의 위치는 이곳이군요. 네, 당신은 직장을 다니며 나이든 부모님을 부양하고 있는 서른살의 대한민국 남자예요. 적어도 은행의 전산망과 내규에 따르면 근로자이자 서민인 거죠.


그때 나는‘근로자’라는 말에 당황했다. 그 말에서 비하적인 의미를 느꼈기 때문은 아니었다. 다만 나는 그 단어에 섞인 ‘돈 버는 성인’이라는 느낌에 적잖이 실망했다. 그러니까 만약 내가 이 대출을 받을 경우, 나는 진정한 ‘근로자’가 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빼도박도 못하는 성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것도 대출이자를 막는 데 급급한 30대 직장인 싱글남성이라니. 흔히 들리는 샐러리맨들의 이야기처럼 매일같이 사표를 쓰면서도 대출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음날 출근할 수밖에 없거나, 이자마저 제때 내지 못해 독촉전화에 시달리고 그러다 전화벨만 울리면 경기를 일으키는 모습이 내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나도 모르게 어느 은행 대출이 좋다, 나쁘다 등의 품평을 할 것이고, 카드를 긁을 때면 대출증서가 눈앞에 아른거릴 것이다. 그렇게 쓸데없는 생각들을 하고 나니, 대출이라는 두 글자가 두려워졌다. 이사는 무슨…. 그냥저냥 살면 되지. 단순히 돈에 발목을 잡혀 살기 싫었던 게 아니라, 그런 식으로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나의 소극적인 태도에 어머니는 답답해 했고, 그래서 어머니 혼자 내 주민등록증을 들고 동사무소와 은행을 오가며 서류를 떼고 내는 걸 반복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뛰어야 했다. 앞서 말한대로 빌라 분양업자는 대출대행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지만, 나는 그들을 여기에 끼워주고 싶지 않았다. 분양업자가 말한 대출대행업자들의 장점은 일단 편리하고, 혼자 하는 것보다 대출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거였다. 나는 편리하다는 건 인정할 수 있지만, 대출가능금액이 늘어난다는 건 이해할 수 없었다. 은행에서 정한 나의 위치는 정해져있다. 그 위치를 정하기 위해서는 나의 개인정보와 소득정보등이 함께 제출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 정보는 내가 혼자 제출하던, 다른 사람이 제출하던 달라질게 없다. 그런데 어떻게 대출가능금액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건가. 그들이 대출가능금액을 늘릴 수 있다면, 둘 중에 하나다. 내 소득정보를 조작하던지, 아니면 은행직원과 커넥션이 있던지. 또한 그들이라고 해서 공짜로 이 일을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그들 또한 이익을 취할 것인데, 그럼 그 이익은 누구의 지갑에서 나가는 걸까? 나는 그게 결국 나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집 계약을 하기 전부터 은행에 대출을 문의했다. 대출담당자는 여러 개의 부동산 관련 대출을 소개했다. 내가 생애최초주택구입자금 대출을 하겠다고 하자,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고객님, 그건 연소득 5천만원 이하인 분들만 해당되는 건데요.” 그 은행은 공덕역 부근에 위치한 곳이었다. 아마도 그곳에서 직장을 다니는 마흔살 남성들은 대부분 연소득 5천만원이 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나도 당연히 그 정도의 연소득을 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겠지. 


“저 5천만원 이하인데요?”

“아, 그러시군요.” 


그 순간 5천만원 이하의 연봉을 받는다는 게 처음으로 감사하게 느껴졌다. 연봉으로 5천 1만원을 받았어도 큰일날 뻔 했다. 생애최초주택구입자금대출은 2%대 후반에서 금리가 결정되지만, 다른 상품들은 기본적으로 3%를 넘는다. 이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정말 큰 차이다. 다시 금융계산기 어플을 돌려보자. 9천5백만원을 2.85%의 이자율로 360개월 동안 원리금균등분활상환으로 갚을 경우 30년 동안 내가 내는 이자는 총 4천6백436,519원이 된다. 여기서 이자율을 3.05%로만 잡아도 이자로 내는 돈은 5천만원 가량이다. 나름 최대한 빨리 원금을 갚는다는 게 내 목표였지만, 계산기가 내놓은 숫자들은 무서웠다. 다행히 나는 아직 연봉 5천만원을 받지 않았다. 


직접 대출을 받기 위해 뛰다보니, 왜 신축빌라를 구입하는 사람들이 대출대행하는 사람들을 통해 대출을 받는지 알 것 같았다. 일단 빌라를 구입하면서 대출을 받는 일은 아파트를 구입하며 대출받는 일보다 어렵고 복잡하다. 은행 직원은 은행 홈페이지에서 대출신청을 하면 0.몇 퍼센트의 이자가 줄어든다고 말했다. 방법을 안내받은 나는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그런데 홈페이지에는 빌라 대출과 관련된 메뉴가 없었다. 아파트와 관련된 건 있었다. 자신이 구입하려는 아파트 정보를 입력하면 바로 내가 얼마나 대출받을 수 있는지가 나오는 구조다. 그런데 빌라는 그런게 없다. 나는 다음날 다시 은행을 찾아갔다. 은행 직원은 그제서야 “아, 홈페이지에 그게 없나요?”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빌라의 경우는 시세 파악을 하려면 자기들이 직접 감정사를 보내야 한다고 했다. 난 좀 짜증이 났다. 


이건 단순히 대출신청이 편리한가, 불편한가의 문제가 아니다. 은행직원 말대로 홈페이지로 대출신청을 하면 조금이라도 더 저렴한 이율을 보장받을 수 있다. 그런데 빌라구입을 위한 대출 카테고리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조금이라도 더 저렴한 이율마저 아파트 구입자들을 위한 혜택인 것이다. 실제 감정사를 보내야 한다고 해도 홈페이지에 빌라 카테고리를 만들면 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아파트 구입자들이라고 해서 홈페이지을 통해 대출과정에 필요한 모든 일을 끝낼 수 있는 건 아니다. 주민등록등본, 재직증명서,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 부동산 계약서 사본, 등기부등본 사본등은 그들도 직접 은행에 제출해야할 것이다. (이걸 스캔해서 홈페이지에 업로드하는 것보다 직접 내는 게 더 편할 거다.) 은행이 아예 빌라구입자들에게는 대출을 해주지 않는 곳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그게 아닌 이상 대출신청에 필요한 기본적인 정보를 입력하는 카테고리를 만들면 끝나는 문제다. 그런데 그걸 하고 있지 않다니… 


그래도 나는 은행직원에게 웃으며 물어봤다. “은행이 감정사를 보낼 때 들어갈 감정비용은 제가 내야 하나요?” 

은행 직원은 “은행 돈으로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은행돈을 좀 많이 써보기로 했다. 그때는 아직 집 계약을 하기 전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눈여겨보고 있던 집 2곳, 그리고 나와 어머니가 살고 있던 집의 등기부등본까지 떼어가서 3군데의 감정을 한 번에 봐달라고 했다. 내 입장에서는 각 빌라마다 내가 얼마나 대출을 받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내가 필요한 돈을 대출받지 못하면 나는 어느 집도 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은행직원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아, 은행돈 너무 많이 쓰시는 거 아니에요?” 

나도 웃으며 말했다. “빌라가 아파트처럼 시세가 한 번에 나와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렇게 말을 던진지 1주일 후 나는 내가 계약한 집의 계약서 사본과 등기부등본을 가지고 가서 또 감정을 봐달라고 했다. 다행히 은행직원은 그걸 다 받아줬다. 


이 일을 진행하면서 나는 은행직원이라고 해서 자기 은행의 모든 규정과 상품에 대해 빠삭한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은행직원들 중에도 부동산 대출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신용대출이 전문인 사람이 있다. 그 모든 걸 다 알려고 하면 또 여기저기 전화해서 물어보는 게 그들의 일이었다. 가져오라는 서류를 가져가면 며칠 후 다시 전화가 왔다, 또 다른 관련서류가 필요하다는 거였다. 한 번에 말했으면 내가 한 번에 가져갔을텐데… 나도 대출받는 일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그들도 맨땅에 헤딩하듯 대출 승인 작업을 준비했다. 나중에는 ‘생애최초주택구입자금 대출’이 안된다는 말도 했다. 아예 다른 대출상품으로 해야한다는 이야기였다. 이 복잡한 상황을 정리한 건, 은행 직원의 바로 뒤에 앉아있던 그의 상사였다. ‘차장’ 직급의 그 사람은 내가 거의 매일 같이 은행을 찾아오는 모습을 봤던 것 같다. 차장님이 다시 서류를 검토하고 생애최초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 후에도 또 많은 서류를 가져갔다. 그리고 대출계약 서류에 수많은 싸인을 한 후에야 일이 끝났다. 차장님은 “감정내용을 보니까 신축이던데 깔끔해서 살기 좋겠네요”라고 말했다. 별뜻 없이 한 말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그 말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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