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잘 것 없는 재산이지만...
10.
새로운 집에 살게 된 어머니는 쉽게 적응했다. 살아가면서 조금씩 이 집의 장점들을 발견한 것 같다. 평소에 가던 은행과 노인복지원, 슈퍼마켓들이 더 가까워졌다는 점을 좋아했다. 집에서 조금만 나가면 버스정류장과 지하철역이 있다는 게 얼마나 편리한 것인지도 알게됐다. 한 번도 그런 위치에 살아본 적이 없었으니, 이제야 경험하게 된 장점이었다. 어머니는 예전보다 더 자주 지인들을 초대했다. 혼자 집에 있는 게 적적하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어느 정도 이 작은 집에 자신감을 가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행히 집을 찾은 어머니의 지인들도 위치도 좋고, 집도 깨끗하고, 작기는 해도 혼자 살기에는 충분하다고 말해주었다. 아버지 제사와 할아버지 제사를 위해 방문한 친척들도 우리 가족이 드디어 집을 갖게 됐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나는 내 오피스텔에서 멀지 않은 그 집을 일주일에 한 두 번씩 찾는다. 어머니가 해준 밥도 먹고, 어머니가 해준 반찬을 얻어오기도 하고, 그냥 그곳까지 산책을 하기도 한다. 맞다. 산책이 늘었다. 산책이 늘어난 이유는 내가 이 동네를 바라보는 입장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구산동에 재산이 생기니 평소와는 다른 시선으로 구산동을 바라보게 됐다. 이전에는 동네에 새로운 매장이 생기면 그냥 저런 게 생겼구나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새로운 카페나 매장이 생기는 일이 집 주변의 환경을 바꿀 것이고, 그런 변화가 나의 재산가치를 변동시킬 거라고 생각한다. 구산역 주변에 새로운 나홀로 아파트 단지 하나가 생겼다. 그곳 1층에는 여러 상가가 있다. 나는 그곳에 어떤 매장이 들어올 것인지 유심히 보고 있다. 또 구산역 주변에 있던 고깃집이 허물어지는 광경도 보았다. 그럼 이제 저기에는 무엇이 들어서는 거지? 또 구산역 주변에는 어느 커피프랜차이즈의 3층짜리 건물이 들어섰다. 바로 근처에는 스타벅스도 있고, 맥도날드도 있다. 이 건물이 이 지역에 가져올 변화는 어느 정도일까?
구산역 주변만 바라보는 게 아니다. 연신내역을 통과한다는 GTX 공사여부도 새로운 관심사가 되었다. GTX가 연신내역을 통과하면서 가져올 변화, 그 변화가 연신내역 바로 옆의 구산역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중이다. 구산역과 버스로 연결되는 녹번역 주변에도 변화가 많다. 이미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생겼고, 또 새로운 아파트 단지가 건설중이다.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지만, 녹번역의 변화 또한 구산역에 미칠 영향이 있을 것이다. 산책을 하면서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다. 고작 투룸 빌라이지만, 어디까지나 내가 가진 재산이기 때문에 이 재산의 가치변동 상황은 나의 관심사일 수 밖에 없다. 여자친구의 말대로 나는 이제 ‘기득권’이 된 걸까? 그런 한편, 나는 앞으로 최대 5년 안에 대출금을 갚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매달 내가 받는 월급에서 저축할 수 있는 돈의 액수, 기존에 갖고 있던 저축들, 내가 오피스텔 임대를 위해 냈던 보증금, 등등 모든 항목들을 매달 다시 계산한다. 지금 내가 가질 수 있는 최대의 목표는 아버지의 사례를 밟지 않는 것이다. 어느날 여자친구가 “만약 2억이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었다. 나는 일단 1억으로 대출을 갚고, 나머지 1억은 너에게 주겠다고 했다. 그 정도로 여전히 나는 대출이 두렵다.
1년 사이 두 번의 이사(나의 독립과 어머니의 독립)를 하면서 나는 예전보다 더 강하게 내가 살고 싶은 집을 꿈꾸게 됐다. 집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고민과 갈등들이 그런 꿈을 꾸게 한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꿈이기 때문에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돈이 많아야 한다. 돈이 많다고 치고, 일단 나는 천장이 높은 집에 살고 싶다. 이건 아파트에 들어간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아파트라고 해도 최대 천장고는 2.4m에 불과하다. 넓은 창이 있으면 좋겠다. 그 앞에 작은 책상을 놓고 글을 쓰거나, 책을 읽고 싶다. 마당도 있으면 좋겠다. 놀러온 친구들이나, 내 아이와 함께 간단한 캐치볼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다시 지우고, 가장 근본적인 목표를 생각하기도 한다. 나는 먼훗날 내 아이가 자신의 주거문제를 해결하려고 안간힘을 쓸 때, 나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 아이가 자기만의 공간을 갖고 싶어하거나, 자기만의 집을 사려고 할 때, 내가 도움은 주지 못할 망정 내가 걸림돌이 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너의 부모는 알아서 살 수 있는 집이 있으니, 넌 너가 번 돈을 너가 원하는 집을 위해 쓰라고, 말하고 싶다. 부모의 불안정한 주거는 자식까지 불안하게 한다. 그는 자신이 꿈꾸는 집을 얻기 이전에 부모의 안정된 생활을 먼저 처리하려 애쓰게 될 것이다. 나는 정말 그러고 싶지 않다.
*이 11편의 글들을 토대로한 책이 나왔습니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선정된 덕분입니다. 책에는 더 많은 이야기를 담아야 했습니다. 이에 대한 설명은 아래 링크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