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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병진 Aug 17. 2018

내 통장에 처음으로 1억 넘는 돈이 찍혔다

그리고 5분 만에 사라졌다. 

9.

이삿날은 집을 계약한 날로부터 2달 후였다. 그 사이 나는 대출을 정리했고, 어머니는 짐을 정리했다. 나는 버릴 수 있을때까지 다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집에는 10년 전에 샀던 철제 장식장이 하나 있었다. 가운데에는 TV를 놓고, 위에는 액자나 도자기 등을 놓을 수 있는 장식장이었다. 이 장식장은 당시 어머니가 살던 집의 베란다에 있었다. 내부에는 온갖 쓸데 없는 짐들이 쌓인 상태였다. 그걸 다 버렸다. 어머니는 한 때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주말농장 하나를 가꾸었다. 그곳에 배추도 심고, 파도 심고, 고추도 심었다. 그런데 2년 전부터는 주말농장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집에는 그때 썼던 농기구들이 있었다. 이건 친척에게 보냈다. 엄마가 쓰던 낡은 서랍장도 버렸다. 내가 쓰던 책장도 하나만 남겨놓고 버렸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가구 하나를 샀다. 어머니가 쓸 침대다. 어머니는 예전부터 침대를 쓰고 싶다고 했었다. 나는 그동안 어머니와 벌였던 갈등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라도 이번에는 침대를 놓아드리려고 했다. 새로운 침대는 이사 전 날 배달될 수 있도록 했다. 엄마는 새 집에서. 새로운 침대에 누워 잠을 잘 수 있을 것이다. 이사 전에도 엄마는 새로 이사할 집을 자주 찾아갔다. 새로운 가구배치를 고민했고, 때로는 지인들을 데리고 가서 구경시켰다. 어머니의 친구분들은 집이 작기는 해도 혼자 살기에는 충분하다거나, 새집이라 깔끔하다거나, 지하철역도 가깝고 바로 근처에 버스정류장도 있으니 예전 집보다 훨씬 좋다거나, 예전 집보다 더 밝다는 말로 엄마의 아쉬움을 덜어주었다. 


2017년 7월, 드디어 이사를 하는 날이 찾아왔다. 단지 짐만 옮기는 날이 아니다. 전에 살던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돌려받고, 은행은 집주인 계좌로 돈을 쏴주고, 나는 내가 갖고 있던 돈을 집주인에게 쏴야하는 날이었다. 이런 이사에는 타이밍이 맞아야 한다. 일단 원래 집주인이 보증금을 빨리 돌려주면 일이 그나마 수월하게 끝난다. 그런데 사실 이 집주인도 새로 이사를 오는 사람에게 돈을 받아야 나가는 사람에게 돈을 돌려줄 수 있다.  다행히 우리의 집주인은 돈을 준비해놓고 있었다. 하지만 타이밍은 맞지 않았다. 직접 와서 집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는 거였는데, 약속시간보다 1시간 늦게 온 것이다. 이미 이삿짐은 다 싸놓은 상황. 그래도 어머니와 나는 웃으며 집주인과 인사했다. 그동안 잘 살았다는 인사도 했다. 강과장님은 그나마 신축빌라로 이사를 하기 때문에 타이밍 맞추기가 수월한 편이라고 했다. 신축빌라에서는 이사를 나가야 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말이다.


자, 이번에는 새로운 집주인에게 돈을 쏘는 순서다. 집을 계약할 때 모였던 사람들, 분양업자와 분양사무소 실장님, 분양을 중개한 강과장님, 그리고 내가 다시 분양사무소에 앉았다. “제 통장에 처음으로 1억이 넘는 돈이 찍혔는데, 30분 만에 사라지네요.” 내가 이렇게 말하자 모든 사람이 웃었다. 나는 이날을 위해 미리 보안카드를 OTP로 바꾸면서 계좌이체 한도를 늘려놨었다. 내 통장에 처음으로 찍힌 1억이 넘는 돈이 사라졌다. 그리고 은행에서는 집주인에게 돈을 쏘았다. 그렇게 나는 집을 사게 됐다. 


그런데 갑자기 은행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이날 대출 진행 과정에서 서류 승인이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류 승인이 나지 않은 이유는 내가 대출을 너무 일찍 진행해서 최종 서류에 적힌 날짜가 대출 이행 날짜와 너무 떨어져 있다는 거였다. 내가 서명을 한 날로부터 대략 30일 안에 대출이 이행되도록 되어있는데, 내가 너무 일찍해서 30일을 넘긴 것이다. 은행직원은 직원들 대로 당황했다. 그들은 일단 내 통장을 다시 만들어서 다시 서류를 작업한 후 승인을 받아 집주인에게 돈을 쏘았다. 그리고는 나한테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주민등록등본을 들고 은행에 와주었으면한다고 부탁했다. 나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일단 처리한 서류들에 내가 동의했다는 기록을 남기기 위한 작업이었다. 나로서는 빌라의 감정가가 얼마나 나올지 몰라서, 그래서 내가 얼마나 대출을 받을지 몰라서 서두른 거였는데, 이런 상황이 된 것이다. 끝까지 쉬운 게 없구나, 라고 생각했다. 또 은행직원들은 왜 이렇게 일을 피곤하게 하나 생각했다. 그런 규정들은 자기들이 미리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나는 신경질을 낼 힘도 없었다. 그들에게는 오늘 안에 다시 은행에 가겠다고 말했다. 


어쨌든 그렇게 돈이 정리된 후, 나는 분양사무소 실장님에게 작은 상자 하나를 받았다. 미리 옵션으로 설치된 시스템 에어콘의 설명서와 리모콘이 담긴 상자였다. 내가 실장님에게 이런 저런 설명을 듣는 동안 분양업자와 강과장님이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두 사람이 나올 때, 강과장님의 한 손에는 두툼한 봉투가 들려있었다. 아, 중개수수료를 이렇게 바로 주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이삿짐 센터 직원들은 그때부터 짐을 나르기 시작했다. 나는 강과장님을 배웅했다. 그때 강과장님이 “잠시만요”란 한 마디와 함께 어딘가로 뛰어갔다. 약 5분 후 강과장님은 휴지 패키지 하나와 음료수 꾸러미를 들고 왔다. 일하는 분들이 마실 음료수였다. 강과장님의 마지막 말이 기억난다. “강사장님, 이후로도 집 관련해서 궁금한 게 있으시면 전화하세요. 부동산으로 돈을 벌려면, 일단 그만큼 부동산이랑 친해져야 해요. 많은 정보도 듣고, 그래야 돈을 벌 수 있어요.” 나는 부동산으로 돈을 불릴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네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삿짐 센터 직원들이 짐을 나르는 동안, 나는 은행으로 향했다. 무더운 날이었다. 은행에 도착하자마자 정수기에서 찬물을 뽑아 마셨다. 서류를 제출하고 또 몇 개의 서명을 했다. 그때 나는 차장님에게 다시 물어봤다. “이제 진짜 끝난거죠?” 차장님이 웃으며 그렇다고 말했다. 


다시 새로운 집으로 와서 어머니와 짐 정리를 했다. 우리는 물냉면과 만두를 배달시켜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이제 어머니가 직접 정리를 해야하는 것들만 남았을때가 되어서야 나는 내 오피스텔로 돌아왔다. 냉장고에서 맥주 하나를 꺼냈다. 처음 이 오피스텔로 이사를 한 날, 나는 마트에서 한 병에 7000원이나 하는 IPA맥주를 여러 병 사셔 마셨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내 집을 가진 날을 기념하고, 그동안의 갈등을 끝내는 후련함을 즐기기 위해 나는 미리 한 병에 14000원이나 하는 맥주를 사놓았었다. 한 숨에 맥주를 들이켰다. 그날 나는 샤워를 한 후 바로 잠들었다. 


그렇게 나는 재산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대출을 갚아야 하는 신세가 됐다. 재산을 가진 동시에 빚을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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