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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미애 Jun 21. 2018

쿠엔틴 타란티노 필모그래피③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장고: 분노의 추적자>, <헤이트풀8>

왕성하게 활동 중인 감독의 작품세계를 시기별로 구분하는 것은 조심스럽고, 어쩌면 무의미한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나눠보자면, 현재까지 타란티노 영화는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같은 시기의 작품은 내러티브 구현 방법이나 소재와 배경 등에서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1기는 데뷔작 <저수지의 개들>부터 <펄프 픽션>, <재키 브라운>에 이르는 90년대 작품들로 LA 지역을 중심으로 한 갱스터물이다. 이 시기 작품들은 전통적인 영화의 내러티브 구현 방법인 서사구조를 비트는 형태를 취한다. 2기는 <킬 빌> 시리즈와 <데쓰 프루프>로 전반기와 후반기의 2분할이 가능한 내러티브와 B급의 전통을 잇고 있는 작품들이다. 3기는 최근작인 <바스터즈 : 거친녀석들>, <장고 : 분노의 추격자>, <헤이트풀8>로 역사적 배경을 영화로 차용해와 구체적인 시간을 제시하는 일종의 대체 역사물 장르다.  

작가론에 대해서는 기회가 된다면 다시 이야기하는 것으로 하고. 간 보는 것처럼 무책임하게 던져 놓은 서두지만,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서론이 좀 필요했다는 핑계를 대본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Inglourious Basterds, 2009) 


<바스터즈>는 <펄프 픽션>과 더불어 하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지만,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포인트만 짚고 넘어가는 걸로.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언어 차이로부터 비롯되는 정보 통제다. 매 챕터마다 반복 사용되는 이 방법은 모든 정보를 다 알려주면서도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고 긴장감 있게 만들어준다. 


챕터1에서 프랑스어로 대화를 시작하던 한스 란다 대령은 중요한 대목에서 영어를 사용하고, 챕터2에서 독일군 포로를 심문하는 알도 레인 중위는 통역 없이는 포로가 하는 이야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표면적으로 확연하게 대조되는 두 캐릭터의 예의바르고 공격적인(혹은 유식과 무식 정도로 비칠 수도 있다) 태도처럼 직접 언어를 구사하는 한스와 통역을 대동하는 알도의 차이를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다. 챕터3에서는 같은 테이블에서 독일어를 할 줄 모르는 쇼산나와 프랑스어를 할 줄 모르는 괴벨스를 지켜보는 것이 재밌고, 챕터4에서는 아치 히콕스의 독일어 억양과 영국식 제스처 때문에 사건이 촉발된다. 계획이 헝클어져버린 마지막 챕터에서는 부득이하게 사용하게 된 이탈리아어로 인해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2기의 타란티노가 모든 정보를 움켜쥐고 배우들에게도 관객들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다면, 3기에 이르러서는 언어 차이를 통해 관객들에게만 정보를 알려주는 형식을 취한다. 영문 모르는 배우들의 표정을 보고있노라면, 타란티노가 왜 이런 전략을 취했는지 무릎을 탁 치게 된다. 모르는 것만큼이나 알고 있는데서 오는 긴장감도 못지않다.  


+ 첫번째 챕터는 나중에 장면 분석을 한번 해보고 싶다. 꼭. 

++ <바스터즈>를 처음 극장에서 볼 땐 마치 이런 느낌이었다.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동네 형이 있었는데, 그 형이 크게 성공한 후에 다시 만난 느낌. 맨날 슬리퍼 질질 끌고 소맥 말아먹으면서 음담패설이나 하던 형이 중요한 행사랍시고 정장 빼입고 와인잔을 들고 격식있게 건배사를 하는거다. 그런데 그 건배사가 나한테는 옛날에 들려주던 음담패설처럼 들려서 계속 킥킥대게 된다. - 지금 내가 하는 말이 이해가 되시는지?   




장고: 분노의 추적자(Django Unchained, 2012) 


스파게티 웨스턴 그리고 블랙스플로이테이션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깊은 조예를 지닌 타란티노의 내공을 느껴볼 수 있는 영화. <장고: 분노의 추격자>는 흔히 구분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동시에 잡은 적절한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바스터즈>와 <장고>의 가장 특징적인 점 두 가지는 그동안 그의 작품은 시간적 배경이 늘 불분명했는데, 근래에 이르러서는 명확한 시간적 배경에서 사건이 벌어진다는 점이다. <바스터즈> 챕터3에서는 1944년이라 명시하며 챕터1로부터 4년이 지났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장고>는 시작부터 1858년, 남북전쟁 2년 전이라는 시기를 못 박으며 시작한다. 


<장고>에서도 <바스터즈>에 이어 언어를 통한 정보의 부재가 계속된다. 백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흑인들이 잘 알아듣지 못한다거나 독일 출신 닥터 슐츠와 독일인 주인 밑에서 자란 브룸힐다가 사용하는 독일어가 대표적인 예. 동시에 여러 사건이 발생하는 <바스터즈>에 비해 <장고>의 이야기 구조는 단선적이고 서사적이라 정보의 언어를 통한 정보의 부재가 사건의 결정적인 키를 쥐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소소한 재미와 긴장감 조성에는 아주 훌륭한 역할을 한다. 


근래의 타란티노의 오프닝들은 점점 세련되어진 느낌이다. 물론 <저수지의 개들>이나 <펄프 픽션>, <킬 빌>의 오프닝도 아낀다. 하지만 뭐랄까 일부러 거칠고 투박하게 만들어 놓은 듯한 느낌이었다면, 요즘 작품들은 작정하고 공을 들인 티가 난다. 개인적으로 <장고: 분노의 추적자>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오프닝과 장고가 다시 숨어들어간 후 캔디의 저택에서 벌어지는 마지막 총격씬이다. 개인적으로 격하게 아끼는 한 장면을 꼽으라면 단연 총격씬.  


+ "D.J.A.N.G.O. The D is silent." "I know." 

1966년 <장고>에서 오리지널 장고 역할을 맡았던 프랑코 네로가 등장해 제이미 폭스에게 이름을 묻는다. 이에 제이미 폭스는 자신을 장고라 소개하며 D는 묵음이라 알려준다. 나도 안다고 대답하는 프랑코 네로의 그 표정이란

++ 웨스턴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힙합, R&B를 BGM으로 붙여놓았다. (물론 흑인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는 어울릴법하기도) 원래부터 음악도 만렙이었던 타란티노지만, 장고에 이르러 한단계 더 올라선 느낌




헤이트풀8(The Hateful Eight, 2015)  


각본 유출로 인한 제작 중단 등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타란티노의 8번째 작품.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중요 인물도 8명에 이르고(개인적으로는 주요인물에 O.B도 포함시키고 싶다), 3시간에 가까운 긴 시간 동안 이어지는 이야기 덩어리가 큰 영화지만, 설원이 배경이었던 초반 40분을 제외하면 이야기는 오로지 '미니의 잡화점'에서만 진행된다. 개인적으로는 2010년대 뉴 버전의 <저수지의 개들>을 다시 만난 것 같은 반가움이 들었다.


<바스터즈>, <장고> 등 3기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차용했던 역사적 사실이 <헤이트풀8>에서도 남북전쟁, 링컨 등의 형태로 그대로 드러난다. 하지만 그간 타란티노 작품에서 흔하게 보였던 기존 걸작들에 대한 오마쥬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 점이나 기존 작품들의 OST의 경우 이미 존재하던 음악을 끄집어내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던 반면 이번에는 모두 새로운 음악으로 채웠다는 점 등은 두 작품은 물론 그동안 타란티노의 작품과는 결이 조금 다른 지점들이다.


<헤이트풀8>이 3기의 연장선상인지, 새로운 4기의 시작인지는 타란티노가 다음 작품을 들고 나온 후에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는 그때 가능할 것이다. 




-관련 글-

타란티노 영화 속 그 장면 https://brunch.co.kr/@fulfpiction/21

쿠엔틴 타란티노 필모그래피① https://brunch.co.kr/@fulfpiction/23

쿠엔틴 타란티노 필모그래피② https://brunch.co.kr/@fulfpiction/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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