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마지막 주에 글을 하나 쓰고, 거의 한달 만에 글을 쓴다. 브런치에서 '빨리 글을 쓰라'고 몇번 메시지를 보냈는데, 이제는 아예 안오고 있다. 일주일에 한번만이라도 글쓰자라는 다짐이 무색할 정도로, 최근 한달은 매우 바쁘게 지나갔다.
직장다닐때 아무리 바빠도 한달이란 기간을 보통 체감했었다. 월초 월마감시즌이 기점이었다. 월초에는 보고 사항이 많았고, 월말은 마감작업을 준비하느라 한달이 되었구나라는 인식이 분명했다.
그러나 백수, 아니 사업준비를 하고 있는 지금, 시간이 너무 빨리간다. 아이들 등하교를 하고 있는 요즘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이다. ('아빠 이제 그 얘기 그만 하면 안돼?' 라고 첫째가 얘기해서 지난주부터는 금지어가 되었다)
퇴사 후 이직이 아닌, 사업.. (아니 창업이라고 해야하나?)을 준비 중에 있다. 아직도 준비 중이긴 하지만, 급여생활자일때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을 깨닫고 있다.
내가 진행한 만큼 사업에 진척이 생긴다. 그래서인지 오롯이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 (오전8시~16시)에는 너무 피곤해서 쉰 적은 있어도 딴 짓을 한 적은 없다. 찾아보고, 정리하고, 전화하고. 또 정리하고, 실행하고를 반복하고 있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16시가 되어 부랴부랴 아이들을 픽업하러 간다.
쉬지 못해서, 또는 딴 짓을 하지 못해서 생기는 아쉬움은 없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엄청 바쁘다가도 비수기가 되어 느긋하게 딴 짓을 할때면, '이 맛에 직장생활을 하는 것이지 후후' 하며 자족할 때가 왕왕 있었다. 이것이 또한 직장생활의 묘미라고 생각했다. 무두절(팀장님 출장 및 휴가)이 생기면 꿀같이 누리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예 사라졌는데도 불구, 삶이 빡빡해졌다거나 힘들다는 생각은 아직 들지 않는다. 아직도 I am so excited의 도파민 분비 상태인지 모르겠으나, 진도가 나가지 않아서 답답한 건 있지만, 쉬지 못해서 힘든 것은 없다.
당연한 것이겠지만, 내 일은 정말 내가 움직인 만큼만 움직인다. 그림자 같다. 내가 오늘 가만히 있으면 당연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움직여야 사업에 진척이 생긴다. 그림자를 움직이려니, 내가 더 움직이는 수 밖에 없다. 일단은 움직여야 했다. 생산성 강박 같은데, 어쩔 수가 없다. 누군가가 감시하는 것도 아니지만, 나는 오늘도 달렸다. 글까지 써놓고 달렸다 ㅎㅎㅎ.
부지런한 움직임은 마치 가속도가 붙는 것 같았다. 미래의 파이프라인이 될성 싶은 것들은 새벽까지 알아보고 강의를 들어보기도 했다. 잠은 오히려 더 줄었다. 다행히 가지치기 해서, 이제는 두 세가지 정도로 줄긴 했지만, 진도를 만들어내기 위한 강박은 계속 되었다.
오늘도 그 강박이 있었다. 뭔가 답답함이라고 해야 하나. 성에 차지 않았다. 신사업팀에 근무를 했더라면 아마 벌써 깨지고도 남았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도 과연 이 사업 내지는 파이프라인들이 든든한 현금흐름을 오랜기간 만들어 줄지에 대한 의구심도 떨쳐낼 수 없었다.
지금 회사를 다녔더라면, 그냥 생각없이 돈을 벌고 있었을 내가 상상이 되었다. 좀 깨지고, 월급 받으면 되니까 말이다. 얼굴은 푸석푸석 힘든 내색이 많았겠지만, 불안한 현금흐름을 걱정하진 않았을 것 같았다.
불안, 두려움.
참 이녀석들은 끝이 없고 참 끊임없다.
현실을 살고 있지만, 미래를 살기 때문에 어쩌면 불안과 두려움의 노크는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서글픈 건, 나이가 먹는다고 쉬워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더 이상 수능을 두려워하거나, 결혼을 못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또 다른 종류의 두려움이 매번 찾아온다. 마치 옷을 갈아입고 찾아오는 것 같다. 이 녀석은 또 뭐냐.. 싶으면서도 결국 파고파고 들어가면, 두려움이다. ( 또 두려움이다.. 지겹다 )
모처럼 아내가 서울 근무를 하는 날이었다. 저녁을 차려주고, 식탁에 앉아 아내에게 넋두리를 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곰곰히 듣더니 한마디 했다.
"그래도 3월부터 시작했는데, 이정도면 성과를 많이 낸 거 아닌가? 나는 참 잘했다고 생각하는데"
순간 답답한 마음에 봄바람이 불었다.
그런데 웬지 창피했다. 내가 말했다.
"아니 여보, 내가 지금 그런 얘기 들을려고 한게 아니고"
"근데 여보 왜 웃고 있어?"
컥. 할 말이 없었다. 마음은 이미 칭찬으로 보드라와졌고, 행복하여 얼굴엔 미소가 생겼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나는 느꼈다.
'아. 나에겐 격려가 필요했구나. 제 3자의 시선이 필요했구나'
뭐 이런 깨우침. 하루 이틀이 아니다.
돕는 배필을 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아내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러자 아내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아내도 별 수 없다 ㅋㅋㅋ)
생각해보니 직장에서 뭔가 해내면 피드백이 있어왔다. 칭찬이 왔거나, 비판이 있거나. 인정을 받거나, 그 반대거나. 성과에 따른 피드백이 있어왔는데, 지금의 나는 그런게 없다. 어쩌면 등을 토닥여주거나, 등짝 스매싱이 있거나 해야 하는데 그런게 없다보니, 주우욱 달려 온게 아닌가 싶다. 뭐 이런 단순한 이유였다면, 앞으로는 나의 도움인 아내에게 자주 상담? 요청을 해야 할 것 같다. (서로 칭찬도 하고 말이다 ㅎㅎ)
불확실성과 정면으로 혼자 만나는 건 두려운 일이다. 어쩌면 두려움은 미래를 살아야 하는 현실의 내가 마주하게 될 필연적인 감정인 것 같다. 그러나, 그렇다고 '뭐 어쩌겠어 다 그런거지' 라고 하고 싶지 않다. 두려움에 더 이상 나의 미래를 내어주고 싶지 않다. 두려워서 시도하지 못했던 것들, 두려워서 꺼내지 못했던 말들, 그로 인해 더 움츠려들게 되는 이 악순환을 나는 깨고 돌파하고 싶다.
어제 설교 시간에 들은 내용이다.
"고통이 30이고, 위로가 100이면, 우리는 행복합니다.
그러나, 고통이 10이고, 위로가 5면, 우리는 불행합니다.
삶의 행복은 위로의 크기에 의해 결정됩니다.
비교가 아닙니다.
우리는 불행한 상황이 바뀌는 것만을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위로가 증가되는 것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출처: 산위의 마을 교회)"
이 말에 큰 공감이 되었다 (아멘했다) 그리고, 이 말을 간직하고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