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so excited의 용례.
최근 새로운 시도들을 하고 있다.
퇴사 전 야심차게 계획 했던 것들이 3가지 정도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는 박살 났고 ㅎㅎㅎ (정부 정책이 바뀌었다)
나머지 두개는 현실을 마주하며 계속 노선을 수정 중에 있고,
하나는 새롭게 발견하여 준비 중에 있다.
(언젠가 궤도에 오르면 1호 'N' , 2호 'B' , 3호 'S' 에 대해 브런치에 하나씩 풀어놓을 생각이다.)
생산성 강박을 느끼며 이리저리 읽어 놓았던 글들이 그래도 준비에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시간을 떼우자라는 최소한의 생각으로 시작한 독서가 꺠달음을 줄 때, 둥지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나에게 잔잔한 보상을 준 것 같다. 특히, 아래의 글이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
"매일 500페이지를 읽어라. 그것이 복리처럼 지식을 쌓는 방법이다. 나는 더 많이 읽고 생각함으로써 비즈니스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충동적인 결정을 줄이려고 한다. 모두가 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 워런버핏-
어제 한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회사였다. 용건은 다음주 월요일 면접 가능한지 묻는 내용이었다.
예전 같으면 아마 '일단 면접보고 생각하자'라고 했겠으나, 이번에는 그렇게 마음이 가지 않았다.
내가 시도중인 1,2,3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시도중인 것들이 여기서 중단된다면, 그동안 어쨌거나 쌓인 노력과 노하우가 다시 초기화 될 것이 자명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employee가 되어 employer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나의 시간을 급여와 교환해야한다. 1,2,3호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사라지므로, 여기서 중단된다면 나는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이 상태로 들어가면 본명 또 고민을 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회사에 크게 미련이 가지 않았던 이유는 상시채용을 하는 회사였다. (진짜 상시채용이 아니라 채용 공고가 거의 내내 떠있는 회사였다. 즉, 퇴사자가 빈번한 곳이었다.)
굳이 그런 회사에 가서 혹시 '이번엔 다르지 않을까?' '나는 다르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가지 않기로 했다.
(이 글이 나에게 성지순례 길이 되면 좋겠다. '이날 결정을 참 잘했네!'라고 외치길 기대하며 ㅎ)
최근 2~3일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이 과다 분비된거 같다. 지치는데 잠은 오지 않는다. 일 비슷하게 계속 뭔가 하는데 '아 좀 쉬어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방금도 쪽잠을 청했으나 일어나니 개운했다. 시간을 보니 15분 잤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내 삶에 이렇게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때가 있었나?
나는 평일은 언제나 매여 있었다.
시키는 일을 군말 없이 해내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때때로 느끼는 성취감과 급여이체일의 기쁨이 나에게는 유일한 보상이었다.
주말은 능동적이고 주도적일 수 있었고,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수동적일 수도 있었다. (물론 나의 원함이 반영된 수동성은 능동성의 기쁨과 맞먹는 것 같다. )
글을 쓰면서도 신기하다.
아침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점심시간을 제외하고는 계속 뭔가 작업을 하고 있다. 하루를 계획하고, 뭔가 일을다져나가며 진전되는 모습들을 바라볼 때, 그 잔잔한 기쁨으로 인해 쉬고 싶다는 생각이 안든다. 재미와 일이 섞여버리니 일이 더이상 일이 아니었다.
참, 이런게 주도적인 삶의 형태일까 싶다.
아직 결말은 모르지만, 이런 삶의 형태를 알게 되어서 참 감사하다.
사실 오늘 아침 예배 말씀에서 은혜를 받았다.
(히브리서 11장)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믿음은 눈가리고 그냥 무조건 믿~~~~~슙니다 를 100번 하는게 아니다. 믿음을 사용하려면 분명한 대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리의 마음에 구체적으로 그 분명한 대상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막연한 기대가 아닌 분명하고 명확한, 구체적인 기도제목을 갖고 우리는 구해야 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에서 '실상'은 휘포스타시스로 권리증서, 실체, 또는 확신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 확신이 우리를 응답과 추수로 데려다 준다. 우리는 그 확신의 단계에 이를때까지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믿음이 우리안에 들어올 때, 그 확신을 갖게 된 이후에는 우리는 믿음의 증거를 보여야 한다. 자식이 없을 때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열국의 아비라고 불렀던 것처럼. '하나님이 나에게 ooo을 주셨습니다!' 라고 믿음을 나타내야 하는 것이다.
무언가 기대할 때 막연하게 '기냥 잘 되면 좋겠다.. 안되면 할 수 없고'라고 생각하곤 했다. 소원했던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아프기 떄문이다. 자라면서 무언가 기대하는 건 나에게 '순진하다'의 온유한 표현이었다.
오늘 말씀을 들으며 '기대감'이라는 단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안되면 말고' 라는 기대가 정말 기대였을까? 사실은 안될 수 도 있다는 것을 기대하는 면도 컸던 것 같다. (+값과 -값의 크기가 거의 같다면 0다)
기대감은 위와 같은 프로세스를 거쳐 키워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신의 단계에 다다렀을 때, 그 기대하는 바를 향한 나의 열정은 얼마나 뜨거울까? 아마 잠도 못잘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든다.
어제 저녁 아내와 카톡을 하면서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I am so excited
중학교 영어시험 볼때 써보고, 실제로 처음 써보는 문장이었다.
I am so excited. 마치 처음 경험하는 듯한 주도적인 삶을 살면서, 다시 알게 된 기대감은 나로 하여금 미래를 기대하게 만드는 것 같다.
아직 이룬 건 없지만, 지금 이 순간을 일시정지 시킨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네, 오늘 즐거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