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시간이 습격해온다

퇴사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1

by As the Deer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나면 항상 5초정도 고민을 한다.


'피곤한데 그냥 집에 갈까?'



그러나, 아무리 힘들어도 이제는 공유오피스로 간다.

여유시간의 습격에 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1


공유오피스 등록 하기 일주일 전쯤 심각한 무기력을 경험한 날이 있었다.


퇴사하기 전에

반드시 하리라고 마음 먹었던 To do list가 10개가 넘었었다.


그러나 그 날은 하나도 한 것이 없었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그래 그거 해야지!' 하면서도 몸은 여전히 안마의자에 붙어있었다

동력이 전혀 생기지 않았다.


'이게 뭐지?' 싶었는데

오른쪽 다리만큼은 신나게 떨고 있는 나를 발견 했다.


나는 불안해하고 있었다.

단순한 무기력이 아니라 내가 눌려 있는 건 두려움과 불안 때문이었다.



#2


야심차게 만든 계획대로 일을 실행하고, 일이 순조롭게 진행 될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기대 시점에 결과 값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원하는 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을 경우, 그 인고의 시간을 나는 오롯이 견뎌야 한다. 나는 그 감내하고 견디어내야만 했던 고통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바늘에 찔려본 사람은 다시 바늘에 안찔리려 하는 것처럼) 섣불리 손을 뻗을 수가 없었다.


돌이켜 보건대, 그동안 그 고통을 마주하지 않게 한 것은 직장생활이었다.


회사를 다닐 때는 주어진 일을 하며 시간을 버티면 급여는 매번 나왔다. 사업이나 프로젝트가 잘 안되면 마음은 아프지만 그래도 급여는 나왔다.


그런데 이제 시간을 버틴다고 돈이 나오는 상황이 아니다. 성과를 내야하고 생산성을 가져가야한다.

직장이 사라지고 나니 마치 맨 살로 차가운 시멘트 바닥을 만지듯, 기존에 만나지 못했던 날 것의 시간들을 마주하고 있다.


직장 생활 당시, 나의 시간의 가치가 이 정도인데 (연봉 / 12달 / 30일 / 24시간 하면 나오는 시간당 급여)

내가 내 시간을 쓰면 나는 이것보다 잘 쓸 수 있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 시간 사용에 대한 output이 보장되지 않으니, 섣불리 손을 뻗을수가 없는 것이다. '가만히 있는게 중간은 가는거야'라는 말처럼 그냥 가만히 있게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잔인한 것이 (ㅎㅎㅎ) 시간이 갔는데 별로 한 것이 없다고 느낄때 자괴감과 공허가 덮친다.

근무시간에 따라 급여를 받는 것과는 다르게 시간이 갔음에도 (뭔가를 했음에도) 돈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나를 움츠려들게 만들었다.


퇴사하니까 비로소 시간의 힘에 대해 더 알게 된 것 같다.


넘치는 여유시간을 너무나 원했다. '여유시간에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해봐야지!' 라는 생각은 이제 습격받는다. 여유시간은 이제 마치 '어디 한번 해봐!' 라고 말하는 느낌이다.


되려 넘치는 시간에 눌림을 경험했다. 마치 지그시 내 어깨를 누르며, '이 많은 시간을 소비할 순 없지 않겠어?' 라고 말하는 느낌이다.



#3


그래서, 나에게 루틴은 거의 생명이 되었다.


생산성과 방향을 지켜준다 (갈 곳이 있는 것은 중요하다.)


무엇보다 엔트로피의 법칙에 역행할 수 있게 도와준다. (집에 있으면.. 질서에서 무질서로 흘러내린다 ㅎㅎ) 그리고, 그 공유오피스에서 나는 그토록 하고 싶었던 To do list에 몰입 할 수 있다. '면학분위기'라는 말처럼, 공유오피스는 뭔가를 해보려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물론, 근로자/피근로자의 온도차가 있지만 어느 곳보다 에너지로 가득차다.) 돈 조금 아낀답시고 집에 있었던 날들 보다 생산성은 거의 2배로 늘었고, 방향성에 대한 고민도 긍정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상념이나 두려움으로부터 나를 기립할 수 있다.


체로키 인디언 이야기가 있다.

체로키 인디언 장로가 손자에게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다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인디언 장로가 말했다.

“그 싸움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두마리 늑대 사이에서 벌어진다. 하나는 두려움이지. 놈은 불안과 걱정, 불확실성, 머뭇거림, 주저함, 대책없음을 가지고 다닌다. 다른 한 늑대는 믿음이라고 한다. 그 늑대는 차분함과 확신, 자신감, 열정, 단호함, 흥분 그리고 행동을 불러온단다."

그러자 손자가 말했다.

“그럼 둘중에 어느늑대가 이겨요?”

그러자 장로가 대답했다.

“바로 네가 먹이를 주는 늑대란다” ('원씽', 게리 켈러)


루틴은 분명 이 믿음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인 것이 확실하다.

우리의 머리 속에는 하루에도 수천가지의 생각들이 노크한다. 특히 혼자 있을때 상념이 찾아들면 거기서 헤어나오기가 쉽지 않다. 일할때는 자연스럽게 그 생각들을 쳐내지만, 일이 없을 때가 문제인데 그 때 '내가 해야할 것들을 하게 하는' 루틴이 나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만성적인 두려움 또는 불안이 덮치려고 시도할 때 루틴은 믿음을 더 끌어올려주고, 두려움이 찾아 올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하도록 도와주고 있다.


나의 progress를 확인할 수 있다.


말 그대로다. To do list에 대해 진도를 체크할 수 있다. 루틴이 생기니 자연스럽게 기록을 할 수밖에 없다. 그 진도만큼 나는 나의 목표를 수정하거나 루틴을 수정할 수 있다. 설령 목표가 잘 안되더라도, 이렇게 잡힌 루틴은 분명 새로운 목표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사실 지금도 나의 루틴은 더 생산적인 방향이 잡히도록 조금씩 수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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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마침 지금 공유오피스에서 글을 쓰고 있다.

집이었으면, 글은 커녕 아마 지금 자고 있었을 것이다. (점심 밥을 많이 먹었다;)


감사하게도 나는 오늘도 집에서 걸어나왔고, 루틴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다행이다. 그리고 이 루틴이 잡힌 것에 대해 감사하다.


루틴이 사실 뭐 별거이겠는가? 말이 루틴이지, 그냥 계획 세우는 것 뿐이다.

그런데 이 작은 행위가 큰 차이를 가져오고 있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목적의식, 부르심이 나를 일어서게 하는 ultimate power가 맞다.

그러나, 정체를 알수 없는 압력과 우울, 상념들을 딛고 일어서게 만드는 힘은 루틴이라는 것을 오늘 다시 한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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