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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 the Deer Jun 17. 2022

영화를 보며 나를 본다 :
덩케르크

갈망 - "Hope is a weapon"

Intro


개인적으로 전쟁영화를 좋아하진 않는다. 전쟁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특성, 파괴의 결과에 따른 비극과 아픔이 싫기 때문이다. 그래서 호평을 받는 좋은 영화를 보더라도 보고나면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영화 속에서 그려지지 않은 슬픔, 특히 남겨진 자들이 감당해야 할 비통함과 상실감이 상상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웰메이드되어 있는 영화는 이러한 속성을 매우 잘 보여준다. 전쟁의 진짜 모습을 영화에서 잘 그려내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그 박진감 넘치는 전투씬 이면에 누군가가 감내해야 할 과정들이 모락모락 마음속에 올라오게 '잘' 만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나면 참 기분이 씁쓸하다. 우리 편이 이겼다는 승리감보다 파괴로 인한 상실감과 당혹감이 더 크다. (때때로, 전쟁영화를 봤는데 마음에 씁쓸함이 맴돌면, '아, 내가 잘 만들어진 영화를 보았나보다'라고 생각한다.) 


덩케르크는 좀 특별한 전쟁 영화다. 이 전쟁에서 주인공들은 총을 쏘지 않는다. 그리고 파이팅이 넘치지지 않는다. 그들은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오로지 기다리기만 한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다보면 이런 생각으로 주인공을 응원하게 된다. 

'포기하지 마. 그래도 포기하지마' 

이렇게 마음 속으로 응원하게 되고, 그러한 주인공을 도와주지 않는 것 같은 야속한 상황 전개에 매우 안타까워하면서 영화를 보게 된다.


덩케르크는 지명의 이름으로, 영화는 1차세계대전에 포위되었던 영국군들을 구출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초점은 그 포위되었던 구출을 기다리는 영국군들에게 맞춰져 있다. 그들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떤 심정이었는지, 그들이 어떤 선택들을 하며 구출을 기다리는지 영화는 보여준다. 


절망과 희망 사이


영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장면은 수많은 영국군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장면이다. 차례를 기다리는 영국군들이 수백명 수준이 아니라 정말 빽빽하게 해변가에 줄지어 서있다. 모두 다 돌아갈 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근데 배편도 만만치 않다. 줄 서있는 군인들의 숫자에 전혀 미치지 못할 배들이 오는가 하면, 군인들을 태우고 가던 배가 독일군의 공격을 받아 침몰한다.


조국을 위해 '죽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몸을 바쳐 싸우는' 역할을 하는 것이 군인의 역할이다. 그러나 뭔가 할 수 없는 덩케르크의 상황에서, 군인들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아마 패배감과 수치심으로 서로를 잘 바라보지도 않을 것이다. 사실 그들이 잘못한 건 아니지만, 그들이 패배하고 있는 국가에 속했기 때문에, 이러한 감정은 자연스럽게 피어난다.


빽빽하게 줄지어 서있고, 배편도 그것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그런 상황 속에서, '곧 내 차례가 오겠구나'라고 생각하는 군인은 아마 많치 않을 것이다. 까마득한 줄 사이로 제발 시간이 빨리가길 바라는 마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 여기 밖에 있을 곳이 없다는 생각, 그리고 언제 독일군이 닥칠지 모르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생각을 지배하고 있을 것이다. 계속 '절망'이 마음속에 노크해올 것이다. 그냥 삶을 포기하라는 음성이 마음속에서 아마 계속 고개를 들 것이다. 


난 포기하지 않는다



사진 중앙에 보면 두 사람이 보이는 데, 이 두사람의 분위기는 어딘가 다르다. 단순한 task의 실행으로 보기에는 어려운, 뭔가 골똘한 생각과 함께 꿍꿍이가 있는 듯한 표정이다. 이 두사람은 사실 의무병처럼 보이면서 배를 타려고 하는 것이다. 뒤에 주욱 서있는 군인들의 표정과 뭔가 달라보이지 않는가? 마음 속에 희망을 품고 있는 것이다. 감독의 의도가 반영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왼편 상단 부분의 줄 서있는 군사들의 생각은 약간 희미하고 약간 잿빛을 띠고 있는데, 사진 중의 두사람은 뭔가 더 생동감이 있다. 더 활력이 담겨 있어 보인다. 마치 이들은 뭔가 다르다는 것을 표현하는 색감 같기도 하다.


위 사진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한가지 배경지식이 있다. 그것은 사진에 보이는 저 사람들의 시도가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탈출하기 위해, 산전수전을 다겪고도 포기하지 않는 병사들이다. 저들은 구출되기 위해 숱한 시도와 실패를 반복적으로 겪었던 병사들이다. 다시 말하면, 죽음이 코 앞에 있음을 수없이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희망 품기'의 베테랑들인 셈이다.


절망을 넘는 힘, 갈망


영화를 보다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저 상황에서 과연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데 만약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영화 속에 나를 집어넣어보지 않는다면, 영화는 정말 지루할 수 있다.) 정말 수많은 구출의 시도들이 무산된다. 너무 야속할 정도로 독일군 비행기들이 와서 구출하러 온 함선들과 배들을 부수고 또 부순다. 


모든 시도들이 무산될때 과연 희망을 선택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아마 인생 살아본 사람들은 모두 알 것이다. 사실, 절망은 선택하기 쉽다. '포기하면 쉬워'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절망은 그리 어려운 선택이 아니다. 그런데 이 쉬운 선택이 결국 우리를 어두운 결말로 인도할 때가 종종 있다. 절망하게 되면 눈을 감게 된다라는 표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사람이 마음을 닫으면 시야도 좁아지게 마련이고, 선택지도 별로 없어보이기 마련이다. 그리고, 절망의 선택을 한번 하고 나면, 두번 세번 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게 된다.


하지만, 쉬운 선택에 비해 너무 cost가 큰 결과이다. 영화를 보면 잘 알겠지만, 단지 절망이라는 마음을 먹은 것 뿐인데, 누군가는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바닷가에 몸을 던지는 병사들이 나온다), 누군가는 결국 집에 돌아간다. 물론, 사방이 적이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절망을 선택하지 않는 것이 쉽진 않다. 그렇다면 희망을 선택하기 위해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영화를 보면서 한가지 힌트를 얻은 것이 있다. 주인공의 눈빛과 행동들을 보면서 알게 된 것이다. 바로 '갈망'이다. 주인공을 통해 이 영화가 말하고 있는 갈망은 '살아야한다'이다. 동기가 무엇이든 살아야한다는 갈망이 '살아나갈 것이다'라는 희망을 품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라는 것을 주인공의 눈빛을 통해 알았다. (눈빛이 엄청 활력이 있고, 빛났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무언가 달랐다. 단단한 무언가가 똘똘 뭉쳐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영화 트레일러에 이런 문구가 나온다. 


Survival is a victory. 

정말이지 너무 멋있는 문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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