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에 지친 몸을 이끌고 회사에 출근해보니, 웬지 분위기가 가볍다.
보통 커피를 몸에 집어넣으며 서서히 잠이 깨느라 조용한데,
오늘은 웬지 사무실에서 웃음소리도 들리고 뭔가 발랄하다.
그렇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이 분위기는 '팀장님이 자리에 안 계신 분위기'이다.
갑작스레 알게 된 사실에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
경험해보지 못하면 알기 힘든 묘한 기분이다. ^^
직장생활하면서 종종 보너스처럼 이런 날들이 있다.
팀장님이 자리에 안계시면, 그날은 어린이날이 된다.
(아마 팀장님들은 담당 임원분들이 안계시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 팀원들에게 내색은 안하시겠지만 ㅎㅎ)
아마 어른 격인 팀장님이 자리에 안계셔서 어린이날이라고 불리는 것 같다.
그렇게 어린이날을 즐겁게 향유하다보면 시간이 흘러 곧 퇴근을 하게 되는데,
생각보다 퇴근길의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내일은 결국 팀장님이 오시고, 그럼 오늘 하지 않은 일들은 내일 고스란히 하게 될테니까.
일 안하면서 돈을 받는다는 것은 어쩌면 피고용인이기때문에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일이 없어서 시원하게 반나절이나 하루를 다 놀아제꼈(?)을때,
만약 이러한 날들이 한 2주가 넘도록 지속되는 경우,
처음에는 월급받는 내 입장에서는 떙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한달이 되어가자, 삶에 무기력이 찾아왔다.
몰래 몰래 들여다봤던 네이버증권을 계속 보고 있자니... 내가 뭐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매 시간마다 들었다.
그리고 불안했다. 그래서 동향 파악을 위해 심심찮게 관리팀 직원들과 점심을 자주 먹었다.
그 때 나는 느꼈다.
'아 인간에게 생산성에 대한 욕구가 있구나.'
'일은 하긴 해야되는 구나'
심지어 '인간이 참 건강하게 지어졌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마냥 일하지 않고 일터에서 논다는 것은 사실 매우 힘든 일이다.
(바빠서 힘든 점은 굳이 쓰지 않겠다. 다들 잘 아실테니 ^^)
그 때 너무 좋았던 것은,
하루에 편의점 한번 갈 수 있으면 그렇게 행복했다. 박카스 하나 먹으며 지하상가를 돌때의 그 여유가 너무 좋았다.
그리고 바쁘게 일한 만큼 고객사나 팀장님에게 인정받을 때의 그 뿌듯함.
그런 것들의 가치가 정말 제대로 느껴졌던 것 같다.
다행인 것은,
9번째 직장을 겪고, 10번째 직장을 겪어서
인간에게 주어진 생산성의 욕구와 쉼의 가치를 제대로 느껴봤던 것 같다.
만약 10번째 직장을 겪고, 9번째 직장을 겪었다면, 나는 생산성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을 것 같다.
일의 양은 사실 조절하기가 어렵다.
(물론 불합리한 처사로 인한 업무조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일반적인 업무량의 조절은 내 권한 밖에 있는 것이 보통이다)
비올때는 짚진 장수 아들을 걱정하고, 해가 맑을 때는 우산 장수 아들을 걱정한다는 이야기이다.
다시 말하면, 물이 반쯤 담긴 컵을 바라봤을 때,
'물에 컵이 반밖에 없네' 아니면
'물에 컵이 반이나 남았네'의 이슈이다.
돌이켜보건대,
일이 많은 날, 퇴근할때의 홀가분함은 일하는 사람으로써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고,
일을 하지 않아도, 월급이 따박따박 나올 때 느끼는 그 고소함(?)도 피고용인이 누릴수 있는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아 물론,
나의 꿈은 퇴사이다. ㅎㅎ
단지 삶에서 느껴지는 소소한 특권, 거기서 비롯되는 행복은 오롯이 갖고 가자는 얘기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