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가 장 보고 오라고 해서요"
"?...네~"
빌라 2층 집 아주머니는 나를 잠시 의아하게 쳐다보시다가, 고개를 돌리며 다시 계단으로 내려갔다.
나는 잠시 어정쩡하게 서있다가, 아주머니 집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 서둘러 계단을 걸어내려갔다.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입구를 나서면서, 모자를 고쳐쓰고 마트로 향했다.
오늘은 아이들에게 치즈 계란말이를 만들어주기로 한 날이다. 빨리 계란을 사고 집에 들어가서 연습을 해야 한다. 곧 있으면 어린이집에서 애들을 데려와야 해서 마음이 약간 급해졌다.
문득, 급해진 마음에 긴장감을 느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마음의 긴장에 살짝 미소가 지어졌다.
직장에서 퇴사한 이후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긴장감.
그것을 계란말이에서 느끼는 것이 좀 웃기다고 생각되었다. 그러고 보니 면도를 한지도 5일이 넘었다. 사람들이 힐끔힐끔 나를 쳐다보는 것도 아마 수염 때문인 것 같다.
나는 퇴사했다. 그런데 사실 퇴사가 지금이 처음이 아니다. 직장만 6번째 그만두었다. 6번째 퇴사인데도 여전히 낮에 밖으로 나갈 때는 모자를 쓰고 나간다. 아니, 사실 낮에 잘 안 나간다. 일부러 저녁시간에 나가려고 한다. 그게 더 자연스러운 '퇴근한 30대 가장'의 모습인 것 같아서.
오늘이야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큰 마음먹고 밖으로 나선 것이다.
첫 직장은 유명한 금융 대기업이었다.
좋은 학벌이 아니어서 처음 입사 할 때 상당히 행복했다. 광고 카피에 나오는 '인생역전'을 한 것 같았다.
TV광고에 나오는 기업에 다닌다는 사실이 매우 뿌듯했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주변 동창들과 부모님에게도 자랑스럽게 말하곤 했다 (물론 품위 있게 수줍은 듯이 말했다). 때때로 내가 다니는 회사를 폄하하는 사람을 만나면 화가 났다. 마치 나를 폄하하는 것처럼 느끼곤 했다.
여의도에 있는 회사들은 참 멋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다 세련되어 보였다.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는 모습도 멋있어 보였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다 대단해 보였다. 다들 나보다 한수 위에 있는 사람들 같았다. 그리고 다들 말을 참 잘했다. 똑같은 정보를 가지고 어쩌면 그렇게 말들을 다 잘하는지. 보면서도 감탄하곤 했다.
나는 열심히 일했다. 주말에는 회사에 자진해서 출근도 했다. 하라는 대로 하고, 열심히 했다. 사수가 가끔씩 칭찬해줄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얼굴은 점점 그늘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3년차가 될 무렵에는 점심식사를 거의 못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밤에 잠을 설치는 날도 빈번했다.
어느날 인정을 받았다는 느낌이 드는 곳으로 발령이 났다. 그 팀에서 최소 학벌은 S대였고, 다들 스펙이 쟁쟁했다. 특히 회장님이 가끔씩 출몰?하시는 곳이기도 했다. (다들 회장님을 무서워하면서도, 그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나는 슬슬 오버하게 되었다. 더 잘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마치 많은 사람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은 나를 고양시켰다. 회장님도 어쩌면 나를 지켜보실지 몰라 라는 생각은 나를 흥분시켰다.
나도 이팀의 어엿한 일원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노력했다. 빨리 따라잡고 싶었다. 이곳에서 자리 잡고 싶었다. 아니 사실, 조급했다. 그러니 실수가 잦았다. 그리고, 잦은 실수는 나를 주눅 들게 했다.
붕괴된 것 같은 멘털을 붙잡고 '괜찮아 열심히 해서 이겨내자'라고 수십 번 다짐했지만, 또 실수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두려움과 불안감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자책감을 다시 자책하고 있었다. 실수할 때마다 비난의 눈초리가 사방에서 쏟아지는 것 같은 느낌.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다들 그냥 자기 살기에 바빴다. 다들 본인 생존에 힘쓰고 있었다. 이걸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을텐데...)
시간이 갈수록 얼굴은 더 어두워졌다. 업무지시가 떨어지면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간단한 문서 작업도 1~2시간 걸리는 것이 빈번해서 핀잔을 자주 들었다. 그리고 그런 핀잔에 나는 더 긴장했고 불안했다. 이제는 점심을 거르고 병원에 가곤 했다. 책상 모니터에는 항상 약봉지가 놓여있었다.
그러던 중에 H를 알게 되었다.
H는 매우 똑똑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다. 그는 항상 답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답을 항상 불러 주는 것은 아니지만, 답을 유도해내는 것을 기가막히게 잘하는 사람이다. 특히 나처럼 답을 빨리 알고 싶어하는 사람에겐 꼭 필요한 사람이다.
그런데, H는 단호하다. 그는 부드러운 사람이지만 단호하다. 그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는 좀처럼 얘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젠틀해서 내가 불편한 표정을 지으면, 더 이상 얘기하지 않는다.
될 수 있으면 그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만, 마음이 불편해지면 내색을 숨기기가 어렵다. 그래서 대화가 종종 자주 끊어지기 일쑤였다. 딱히 서로 즐겁게 시시껄렁한 대화를 늘어놓을 정도의 사이는 또 아니라서 대화가 끊어지고 정적이 흐를때면 어색하긴 하다.
하지만 나는 그와 계속 연락한다. 그가 나를 좋아해 주고 아껴주는 것을 나도 충분히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쩔때는 딱히 달갑지 않을 때가 있지만, 그래도 나는 연락한다. 이제는 직언을 해주는 사람이 주변에 많이 남지 않은 것도 그 이유 중에 하나다.
어느 날 H가 말했다.
'혹시 직장이 너의 인생을 보장해 주고, 책임져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네?'
나의 표정이 순간 완전히 일그러질뻔했다.
아니 누구를 바보로 아는가? 당연히 아니지.
기분이 나빠졌다. 하지만, 얼굴을 가다듬었다. 소중한 조언을 놓칠 수 없었다. 얼굴을 가다듬느라 H의 조언을 한쪽 귀에서 한쪽 귀로 흘리는 사이, 마음 한쪽에 숨겨놓았던 문장이 보였다.
'난 여기밖에 없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리고 내 표정이 들킬까봐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이 직장에서 사실 승부를 보려고 했다. 여기 아니면, 어디도 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미 많은 기회를 망쳐버려서, 여기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학벌에서 망쳤는데, 이 직장에 온 것은 두 번 다시 없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만회할 기회, 인생을 역전할 기회라고 말이다.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H가 말을 이었다.
'이 직장이 전부가 아니야. 여기는 직장이고, 직장은 직장일 뿐이야'
'결국 니 인생에 니가 책임을 져야 해. 이 직장이 전부가 아니야. 직장이 너를 책임져주지 않아'
물론 몰랐던 사실은 아니다. 직장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는데, 가슴으로는 몰랐다고 해야 할까? 아는데 제어할 수가 없었다. '여기가 아니면 안된다'는 불안과 낙심에 직장에 자신을 바치려고만 했다. 노력하면, 그래도, 어느정도는, (이렇게 이 한 몸 바치는데) 직장이 자신을 책임져 줄 것이라 생각했다. 다른 기회는 고려해보지도 않았다. 그냥 이 직장에 맞추려고만 했다. 내 주제에 이정도면 감지덕지하니까.
사실 직장은 언제든지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둘 수 있다.
나가겠다고 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나에게 '여기가 아니면 난 끝이야'라는 강박이 있었다. 여기가 아니면 역전은 불가능하니, '여기서도 역전을 못하면, 나는 실패자다'라는 생각이었다. 절박했는데, 잘 안되서 더 절박했다. 절박함은 조급함으로, 조급함은 무리수를 낳았다. 그래서, 더 꼼꼼히 더 많이 디테일해졌다. 쓸데없는 것에 신경을 많이 썼다. 나중에는 시간이 부족해지고, 실수를 많이 하게 되었다.
나 자신을 자책하고 비난했다. 이것의 반복이었다.
나에게는 새로운 리셋이 필요했다. 이 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새로운 환경이 필요했다.
H가 직장을 그만두라고 한 건 아니다. 하지만, H는 그 직장이 '유일한 희망'이 아니라는 것을 환기시켜 주었다. H는 나에게 리프레쉬하고 충전의 시간을 가질 것을 권했다. H의 확신에 찬 눈빛과 격려 덕분에 나는 리셋에 대한 희망을 품고, 직장에서 벗어날 용기를 갖게 되었다.
생각의 전환이었다.
퇴사라는 전혀 다른 환경에 대한 희망이 생기니, 새로운 시각이 생겼다. 낑낑대고 있는 영역 중에 많은 부분 놓아버릴 부분이 있었다. 생활이 점점 정상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딱히 '믿을 구석'은 없었지만, 출구가 생기니, 숨은 쉴 수 있었다. 정상적인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결국 첫 직장을 3년 4개월여 만에 퇴사했다.
늘 정해진 루트대로 살려고 했던 나는, 남들과 다르게 행동하지 않으려 항상 노력해 왔다. 그래서 첫 퇴사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이 루트를 벗어나면, 실패자가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실제는 달랐다. 퇴사의 과정은 마치 처음 물속에 들어가는 과정과 비슷했다. 물 속에 들어갈 때, 익사할 것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가지고 물속에 뛰어들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물속에 있는 것이 좋다.
바로 그 느낌.
일종의 자유를 느꼈다
처음 퇴사했을 때, 허리가 아플 때까지 누워 잠을 잤다.
대학 때처럼 밤늦게 까지 게임도 하고, 영화도 보았다.
어색하지만, 혼자서 버스를 타고 호수나 강을 보러 구경하고 오기도 했다.
무언가 해방된 느낌이었다.
아침에는 아내 밥을 차려보기도 하고 (게을러서 계속 아내 밥을 차려주진 못했다), 저녁에는 장을 보고 요리를 해서 아내와 같이 먹기도 했다 (역시 가끔 요리해서 먹었다).
만족스러운 첫 퇴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