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02.살려만 달라고 빌었다

by yeon

엄마의 얼굴은 화장으로 생기 있어 보였지만 눈은 뜨지 못한 채 머리는 까까머리가 되었다. 의식이 없어 몸은 축 쳐져있었고 그 모습으로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이 끝나면 면회가 가능 하니 중환자실 앞에서 대기하라는 안내를 받고 중환자실로 이동했다. 대기실에는 의자가 있었지만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수술이 몇 시간이나 걸렸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오전 10시쯤 쓰러졌던 것 같고 수술이 끝나고 3시인가 4시쯤에 엄마 얼굴을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엄마와 나는 서울에 살고 있었고 동생과 아빠는 대구에 살고 있었기에 결혼식 때문에 전날 아침에 KTX를 타고 내려왔다. 광명역에서 기차를 타러 가는 길 엄마 손엔 커피숍에서 마시다가 남은 자몽차와 짐가방이 있었는데 가방을 달라고 해도 한사코 거절을 하며 끝까지 엄마가 들고 있었다. 양손에 짐이 있으니 에스컬레이터에서 손잡이를 잡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한번 휘청거려서 잠깐 위험했던 순간이 있었다. 가방을 달라고 하는데도 주지 않고 몸에 힘이 빠진냥 휘청거리던 모습에 엄마한테 왜 안 주냐며 짜증을 냈었다. 그때부터 아팠던 걸까

기차에서도 잠을 자는 것도 아니고 휴대폰을 보는 것도 아닌데 멍하니 있는 엄마에게 위화감을 느끼긴 했다. 아파서 멍했던 걸까.. 아니면 어젯밤에 다 같이 외식하면서 자꾸 같은 말만 반복하던 그때부터였을까..

머리가 많이 아팠을 테고 몸도 정상적이지 않았을 텐데 엄마는 죽을힘을 다해 버티고 있었던 걸까. 수술이 끝나길 기다리면서 이런 생각들로 괴로워졌다.


이대로 엄마와 다시 대화조차 하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왜 마지막 대화를 그따위로 밖에 하지 못했을까. 아니 그전 어제 휘청거릴 때 가방을 주지 않았다고 왜 화를 냈을까, 아니 그전에 신혼집 집들이 한다고 동생집에 다 함께 모였던 날, 며느리가 될 아이 앞에서 벌써 임신 이야기를 하냐고 왜 엄마에게 핀잔을 줬을까, 그 일로 엄마가 며느리 앞에서 무시를 했다며 나에게 울면서 전화를 하게 만들었을까.

엄마에게 했던 모진 말과 신경질만 냈던 기억들만이 점점 선명해져 괴로웠다. 사랑한다고 고맙다는 말 한번 못했는데 이대로 엄마가 내 곁에서 영영 사라질까 봐 무섭고 겁이 났다.


외가 친척들의 전화가 계속 왔다. 울면서 전화를 받고 상황을 설명했고 병원 위치를 알려드렸다. 전화를 받는 내내 횡설수설하니 큰 외숙모가 한마디 하셨다.


"야. 정신 차려"


그 말이 귀에 내리 꽂혔다. 큰 외삼촌도 뇌출혈로 돌아가셨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 상황을 잘 알고 계실 외숙모께서 그 말을 해주시니 물 속으라 가라앉던 몸을 누가 뭍으로 건져준 듯했다. 아득하게 멀리 들리던 주변소음들이 점차 명료하게 들려왔다. 정신 차려야 한다. 정신 차려야 한다. 혼자 되뇌었다.


시간은 더디게 너무나 느리게 지나갔다. 대기실에서 서성인 지 얼마나 됐을까 수술이 끝났다고 간호사분의 안내와 함께 면회가 가능했다. 중환자실로 들어가 본 엄마는 엄마 같지 않은 모습이었다.


짧게 밀린 머리. 뭐가 뭔지 모르겠는 줄이 주렁주렁 달려있고 입엔 큰 관 같은 걸 물고 (기관 삽관) 눈은 감은채 누워있었다. 손은 차가웠고 작은 기계 모니터에 표시된 심박수 숫자만이 엄마가 살아있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왜 하필 오늘이고 이곳일까. 왜 대구일까. 아빠의 고향, 모든 친가 친척들이 계시고 아빠와 동생이 살고 있지만 나에겐 몸서리 쳐지는 도시였다. 엄마에게도 좋았던 기억보다 아팠던 기억이 더 많을 것이다.

엄마에게 대구는 시집살이로 힘든 곳, 나에게는 친할머니에 대한 분노와 불우했던 학창 시절로 점철된 곳이다. 그런데 이 도시가 이젠 엄마까지 집어삼키는 것 같아서 한시라도 빨리 엄마를 데리고 벗어나고 싶었다.


엄마 수술 잘 끝났대. 내가 서울로 빨리 데려갈 거야.
여기서 빨리 벗어나자. 나만 믿어. 그러니깐 그때까지 힘내줘


다른 누군가 들었다면 참 건방진 이야기로 들렸을 것이다. 서울부심 부린다고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몸서리치게 싫은 이 도시를, 엄마마저 잡아먹을 것 같은 이곳을 빨리 떠나고 싶었을 뿐이다.


결혼식이 끝나고 외가 친척분들이 다녀갔고, 아빠와 동생이 온 뒤 엄마와 면회를 하고 의사와 면담을 했다. 수술을 잘 됐다는 형식적인 말만 듣고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도저히 동생집에 있을 수 없어 병원 근처 호텔을 잡았다. 새로운 시작 앞에 행복해야 할 동생 부부 앞에서 통곡을 할 수도 없었고, 그 누구에게도 눈치 보지 않을 공간이 필요했기에 호텔에서 투숙하기로 했다.


호텔에 도착 후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새우처럼 옆으로 말아 누워 우는 것 밖에 없었다. 외가 친척분들의 전화가 오면 전화를 받고 수술을 잘 끝났다고, 의식은 없었다고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이었다.

울다가 지쳐 멍하니 앉아있다가 다시 울다가 과호흡에 등허리가 아파오기도 했고, 선잠에 들었다가 화들짝 놀라 깨기도 했다. 새벽 동이 터오는 것을 보면서 뇌출혈에 대해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뭔지 모르겠다. 인터넷 카페에 가입을 하고 유튜브를 찾아보고 블로그를 찾아봤다.

그리고 오후에 의사 면담과 엄마 면회를 하러 병원으로 향했다.


엄마 쓰러진 사정을 회사에 말한 뒤 일주일간 휴가를 냈다. 그 이후 매일 아침에 중환자실에 전화해 밤새 별다른 증상은 없었는지 의식은 돌아왔는지 물어본 후, 서울에 옮길만한 병원 예약 진료를 잡고, 카페글을 읽고 의사면담 가능한 시간에는 어김없이 병원으로 찾아가 상태가 어떤지 물어보고 면회를 했다. 일주일을 그렇게 보냈다. 그동안 엄마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매일 밤 살려만 달라고 빌었다. 종교는 없었기에 세상의 모든 신, 선인 누구라도 좋으니 10년, 아니 5년만이라도 살려달라고..

이후 엄마가 어떤 상태라도 내가 다 감내할 테니 살려만 달라고 말이다.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02화01.엄마가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