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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서울로 올라오던 날

by yeon

휴가가 끝나고 회사에 출근을 했는데 사람들과 대화하기가 힘이 들었다. 하루종일 중환자실에 누워있을 엄마 생각으로만 머릿속 가득했기에 일도 제대로 진행이 안 됐다. 회사에서도 시간이 나는 대로 대학병원 외래를 잡고 진료날에는 연차를 내서 대리진료를 보고 입원장을 받아뒀다. 10군데의 대학 병원을 찾아다녔고 입원 날짜 나오면 연락 준다는데 한 달이 넘도록 연락이 오는 곳이 없었다. 남들은 잘도 옮기는 것 같은데 나만 진행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세상이, 신이 엄마와 내가 죽기만을 바라는 걸까.. 그동안에도 엄마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평상시처럼 출근하던 길이었다. 그날은 너무 덥지도 않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눈부시게 새파란 색이었다.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길에 갑자기 숨이 막혀왔다. 정확히는 숨이 쉬어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좀 더 깊고 크게 숨을 쉬려고 몰아쉬니 과호흡이 오기 시작했고 이러다가 정신을 놓을 것 같았다. 문득 죽을 것 같단 공포감이 다가왔다. 버스에서 급하게 내려 버스 정류장 뒤편으로 가서 쪼그려 앉았다. 마스크를 내리고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아.. 이게 공황이구나..


TV매체에서 공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죽을 것 같은 느낌은 어떤 건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겪어보니 왜 기절을 하는지 단번에 이해가 됐다. 내 주변에 산소가 부족해지는 느낌으로 숨이 쉬어지지 않고 그러다 과호흡이 온다. 숨을 쉬고 있는데 숨이 막혀온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일순간에 덮쳐와 혼절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나는 다행히 발작까진 일어나지 않았다. 주말에 바로 정신의학과를 찾아 진료를 보고 약을 처방받았다. 검사에서 우울증과 불안증 점수가 매우 높게 나타났다. 지금까지도 약은 먹고 있다.


그렇게 병원을 알아보고 출근을 하고, 엄마 면회나 의사 면담을 하러 대구로 가는 생활이 한 달 반 정도 지났을 즈음 한 병원에서 입원 가능 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제 그곳에서 벗어나 나와 가까운 곳, 급한 일이 생겨도 내가 달려갈 수 있는 거리에 데려올 수 있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입원까지 일주일 남은 시간 간병인도 알아봐야 했고, 물품도 새롭게 구비해둬야 했다. 사설 구급차도 알아봐야 했고 현재 입원 중인 병원에도 이동할 날짜를 알려주고 전원(병원에서 다른 병원으로 재입원) 준비를 했다. 그 모든 준비과정마저 그저 감사하기만 했다.


처음 수술한 병원 중환자실에서 4주, 일반병실 간호통합에서 3주 정도 입원을 했었다. 간호통합 병실로 가면서 면회가 차단이 되었다. 그렇게 면회도 안 됐던 상황이라 병원 옮기는 날 3주 만에 엄마를 볼 수 있었다. (한 두 번 면회를 하긴 했으나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제대로 볼 수 조차 없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본 엄마의 몰골은 중환자실에 있을 때 보다 처참했다. 몸은 축 늘어져있고, 살은 많이 빠져 보였고 손을 만졌더니 각질이 눈에 보일 만큼 날렸다. 입술은 다 터있었고 여전히 의식은 없었다. 10번 부르면 1~2번 정도 동공이 미세하게 쫓아오는 것 같았지만 이전에 그런 반응은 의식이 돌아온 게 아니라고 간호사가 단호하게 말했었기에 의식이 돌아왔다고 할 순 없었다.


대구에서 서울까지 사설 구급차를 타고 4시간 정도 걸렸다. 그 시간 동안 엄마 손을 단 한순간도 놓지 못했다. 올라가는 길에 휴게실은 한번 들렀다. 구급대원 분들 화장실 가시는 겸해서 잠시 들렀으나 나는 그 시간에도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다. 각질이 날리는 엄마의 손을 보면서, 계속 불러봐도 반응 없는 엄마를 보면서 매초마다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내 기억 속에 있는 살아서 움직이는 엄마는 어디에도 없었다.


서울 병원 도착 후 간병인분을 처음 만났고 대구 병원에서 쓰던 각종짐과 새롭게 준비한 엄마 간병용품이 든 캐리어까지 해서 짐을 올려 보내고, 간병인분께 잘 부탁드린다고 연신 인사를 했다. 그리고 엄마를 들여보냈다. 나는 간호사실에서 수속을 하고 각종 서류 제출과 엄마 상태와 기저질환들에 대해서 전달을 했다. 그리고 다 끝나니 4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다 끝난 후 병동에서 내려와 나가려던 찰나 간병인 분께 연락이 왔다.


"어머니 62킬로 나간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네 쓰러지시기 전엔 그 몸무게였는데 무슨 문제 있나요?"

"지금 몸무게 쟀는데 50킬로도 안 나가요. 48킬로예요"


8월 22일 쓰러지고 전원 하던 날이 10월 4일이었다. 44일 만에 근육과 살이 그렇게 빠졌다.

전화를 끊고 쏟아져 내려오는 눈물에 원무과 의자에 앉아 한참을 울었다. 서울로 올라오고 재활을 시작하면 다 이겨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드디어 빛이 보이고 희망이 생겼는데 엄마 상태를 눈으로 보고 직접 느끼니 모든 희망이 꺼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살까지 빠졌다고 전화까지 받으니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창피한지도 모르고 한참을 울었다.


서울로 올라오던 날 나는 12시간 만에 물을 마셨다. 목이 마른 지 배가 고픈지도 모르다가 전원이 끝나고 울음을 멈추니 허기짐과 갈증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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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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