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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엄마 손길

by yeon

엄마에게 제발 데려가달라고 울면서 빌었던 그 이후 겨울 방학 때 엄마가 살던 곳으로 가서 며칠 지낼 수 있었다. 엄마가 지내는 곳은 이전에 살던 곳보다도 더 안 좋은 쪽방. 모자원 앞에 형성되어 있던 쪽방촌인데 화장실은 공중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다. 쪽문처럼 생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시멘트로 아무렇게나 마감된 바닥에 수도 하나와 가스레인지 하나 간신히 올려둘 곳이 있고 안쪽으로 두 사람 누울 정도의 공간인 방하나가 있었다.


아빠와 생활하며 생겼던 빚을 갚고 있었다고 나중에 알게 됐고, 엄마 역시 좋은 형편은 아니었다. 반년만에 만난 엄마는 제대로 씻지 못해 다 터져버린 내손을 보곤 왜 이러냐고 물었다.

"엄마 목욕탕에 일주일에 한 번씩 못가, 할머니가 목욕 바구니를 뺏어. 그리고 집에선 너무 추워서 샤워도 간신히 해. 머리도 자주 감으면 혼나"


엄마와 오랜만에 목욕탕을 갔다.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때를 불리고 엄마가 등을 밀어주고 씻고 나오니 튼 손은 다시 부드러워졌다. 엄마가 로션을 손에 듬뿍 발라주면서 트면 뜨거운 물에 잠시 불렸다가 로션 바르라고 말해주었다. 다 씻고 집으로와 엄마가 해준 밥을 먹으니 졸음이 밀려왔다. 지금껏 살았던 집들 중에 가장 좁고 화장실도 가장 멀었지만 그래도 따스했다. 엄마가 옆에 있다는 것 만으로 안도가 밀려왔다.

한참 자고 있는데 엄마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내손을 계속 쓰다듬으며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난 그 손길이 따뜻해 그저 계속 자는 척을 했다.


이대로 가면 고등학교도 못 갈 수 있다고 제발 서울로 데리고 와달라고 계속 보챘다. 엄마는 본인 살고 있는 집을 한번 훑어보곤 아빠와 확실히 정리되면 데리고 오겠노라 약속을 해줬다. 엄마는 이혼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가 엄마와 살게 되면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 그나마 갚아가고 있는 빚이 다시 늘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엄마와 며칠 지내고 다시 내려갔을 땐 이전보다 더 숨이 막혀오는 듯했다. 아빠가 고등학교를 보내지 않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학교 다니는 내내 할머니의 그 타박 섞인 소리를 듣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이대로 이곳에서 지낸다면 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집을 나가거나 둘 중에 하나뿐이라 생각했다. 갈 곳은 없었지만 이곳만 아니면 될 것 같았다. 학교를 못 가더라도 그게 보육원이든 고아원이든 어디라도 받아만 준다면 할머니에게서 도망가고 싶었다. 그래서 아빠에게 빨리 엄마와 이혼해 주라고 보채기 시작했다.


모르겠다. 어린 딸 입에서 엄마와 이혼하라는 소리를 듣는 아빠는 무슨 생각을 했을지, 이 모든 걸 관망하고 있는 아빠는 어떤 심정이었을지.. 그다음 여름방학 때 가본 엄마집은 쪽방촌에서 나와 주택에 남은 공간에 딸려있는 방 한 칸짜리 집으로 이사를 했다. 여전히 화장실은 밖에 있었지만 적어도 공중화장실은 아니었다. 엄마 나름대로 나를 데려올 준비를 하고 있는 듯했다.


나의 보챔에 아빠는 엄마와 이혼을 했고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년 반이라는 시간 길지도 짧지도 않았던 지옥이 끝나는 날이었다. 동생도 잠시 데려와 지내보기도 했지만 엄마 혼자 아이 둘은 역부족이었기에 아빠와 동생이 같이 살았다.


대구는 나에게 그런 곳이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의 즐거웠던 추억도 분명 있지만 그것들을 기억해 내기도 전에 가슴속 울분이 먼저 튀어나와 버리는 곳,

어떻게 죽어야 할머니와 연결되어 있는 혈육이라는 것이 끊어질 수 있을지 매일 같이 고민하던 곳,

목에 동맥을 끊고 거꾸로 매달려 죽으면 내 몸속 피가 다 빠져나와 그놈의 혈육의 연결 고리가 끊어질 수 있을까? 내 몸속 피부, 세포에 새겨진 DNA 때문에 죽어서도 혈육인 걸까? 14살의 소녀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지냈던 곳..

그런 곳에서 엄마마저 쓰러졌다. 하필 이곳에서 하필 그날 말이다.


엄마에게 가장 아픈 손가락, 당신 손으로 키우지 못했던 아들..

그래서 항상 아들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부터 쏟고 미안한 마음만 앞서던 엄마였다.

그 아들의 다 커서 드디어 결혼식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날 화촉점화도 못해보고 엄마는 그렇게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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