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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의식이 돌아오다

by yeon Mar 02. 2025

엄마를 서울 대학병원으로 데려온 뒤론 더 바빠졌다. 매일 같이 퇴근 후 필요한 물품을 병원에 가져다 날랐고, 병원에서 사용한 수건은 가져오고 새 수건으로 교체해서 가져다줬다. 간병에 필요한 물품을 꽤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예기치 못하게 필요한 것들이 생겼고 그런 것들은 인터넷으로 병원으로 주문했다. 택배 보관함은 본관에 있었는데 본관까지 갈 시간이 여의치 않다는 간병인의 말에 본관에서 물건을 픽업해 재활의학병동 앞에서 만나 전달해주곤 했다.


불필요한 일이었을 수도 있긴 하지만 내가 엄마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했을 때 물품이라도 가져다줘야 엄마에게 못해서 후회했던 모든 것들을 조금이나마 속죄하는 것 같았다.


간병인이 재활을 시작하고 점차 의식이 돌아오고 있다고 회복속도가 빠르다며 좋은 소식을 전해줬다. 의식이란 게 드라마처럼 짠 하고 나타나는 게 아니라 다 돌아왔다곤 할 수 없으나 점차 눈도 뜨고 말소리에 반응도 시작했다고 말해주었다. 다리에 힘도 들어가 세워두기도 하고 팔도 움직인다고 말이다. 병동 면회가 금지되어 있어 직접 눈으로 보진 못했지만 그런 소식 하나하나에 하루는 날아갈 듯이 기쁘기도 하고, 설사한다던지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하는 날은 다시 덜컹하고 심장이 내려앉기도 했다.


엄마와 나는 애틋한 모녀 관계는 아니었다. 내가 애교가 많은 딸도 아니었고 엄마도 딸과 정서적 교류를 하는 사람은 전혀 아니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는 밥 한 끼 같이 먹는 것도 힘들었다. 저녁 밥상 앞에서 함께 밥을 먹으며 하루 일과를 나누는 그런 가정도 아니었다. 그저 각자 알아서 잘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다만 엄마는 어려운 형편에 최선을 다해 내 손을 놓지 않았고, 난 그 힘든 모습을 보며 자랐을 뿐이다. 가족들이 식탁 앞에 모여 같이 식사를 하며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풍경은 나에겐 TV에서만 볼 법한 장면이었다. (식탁을 놓을 만한 공간이 있는 집도 아니었지만..) 같이 여행을 가거나 손을 잡고 쇼핑을 한다던지 하는 보통의 모녀와는 거리가 있는 조금은 삭막한 엄마와 딸..


그런 다정함은 없을지언정 엄마는 내가 힘들 때 언제나 돌아갈 수 있는 둥지라고 생각했다. 튼튼하고 큰 우산은 아니지만 꼭 필요할 때 있는 우산 같은 존재말이다. 그런데 엄마가 쓰러지고 난 후 알게 되었다. 엄마는 내게 내가 밟고 서 있을 수 있는 땅 같은 존재였다. 그 땅이 한순간에 사라지니 그 끝을 모를 낭떠러지로 떨어져 갔다. 어디까지 떨어지는 건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들인지 두려움이 덮쳤다. 그 두려움을 떨쳐내려 엄마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찾아보기도 하고 얼굴은 못 보지만 매일 같이 병원으로 찾아갔다.


엄마를 서울 병원으로 옮기 그 주 토요일에도 물품을 전달해 주러 아침에 병원으로 향했다. 그날은 하늘엔 먹구름이 끼어 햇빛이 나질 않았고 그래서인지 조금 쌀쌀했다. 엄마가 쓰러진 게 8월 한여름이었는데 벌써 계절이 바뀌고 있었다. 재활병동 앞에 도착해 간병인에게 전화를 하니 재활 들어가기 전 시간이 조금 남았다며 엄마와 잠시 내려오겠다고 했다. 사실 면회는 금지지만 병원이 워낙 커서 병원 로비를 벗어나서 만나는 것까진 알 수가 없다고, 그래서 많이들 그렇게 만난다고 하면서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의식 없던 엄마가 의식을 차렸다고 했는데 말은 할 수 있을까.. 나를 알아보긴 할까.. 걱정반 기대반으로 기다리는데 쌀쌀한 날씨 탓인지 몸이 떨려왔다. 잠시 뒤 리클라이너 휠체어 (목을 잘 가누지 못하는 와상 환자가 많이 쓰는 휠체어로 머리까지 받쳐주는 휠체어)에 엄마를 태우고 간병인이 내려왔다. 아직 온전히 몸을 가누진 못하는지 앉아있는 모습이 삐딱했다. 산소포화도 기계에 목관에 콧줄에 소변줄까지 주렁주렁 달고 엄마가 나타났다. 눈을 뜬 채로 말이다. 얼마 만에 보는 눈뜬 모습이란 말인가.. 살도 많이 빠져 눈이 더 커져있었는데 표정 없이 눈만 부릅뜨고 있어 이전 엄마 얼굴과는 차이가 있어 살짝 이질감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엄마가 눈을 뜨고 내 앞에 있었다.


"엄마. 나 알아보겠어?"


엄마에게 두 달 만에 건넨 첫마디였다. 고개를 미세하게 끄덕끄덕 거리는 엄마.

엄마가 알아듣고 반응하기 시작했다. 힘찬 고갯짓은 아니지만 온 힘을 다해 끄덕거리는 엄마였다.

엄마의 모습에 눈물이 흐리기 시작했다. 이제 정말 살았다는 안도의 눈물, 그  눈물이 볼을 타고 목을 타고 그렇게 계속 흘러내렸다. 옆에서 보던 간병인도 눈물을 훔치더니 자리를 비켜줬다.


"엄마 여기가 어딘지 알겠어?"

반응이 없었다.

"여기 병원이야 알겠어?"

끄덕끄덕

도리도리는 아직 안 되는 모양이었다.


날이 꽤나 쌀쌀해서인지 앙상한 나뭇가지 같은 엄마 손이 차가웠다. 서울로 올라오던 날 보다는 각질이 좀 나아진 것 같아 보였다. 간병인이 뜨거운 수건으로 불려서 닦아줬다고 했는데 그 말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그래도 아직 까칠까칠하고 각질이 눈에 보일정도였다. 엄마가 내 튼 손을 잡고 울었던 그 옛날처럼 내가 엄마 손을 잡고 휠체어 옆에 쭈그려 앉아 울음을 삼켰다. 엄마에게 말을 해야 했기에 울음을 삼켜봤지만 눈물은 멈출 수가 없었다.


그때 엄마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냥 엄마가 아팠다는 말, 결혼식은 잘 끝났으니 걱정 말고 이제 재활만 하면 다시 집에 갈 수 있다고, 내가 그렇게 만들 거라고 그러니 걱정 말라는 그런 말들을 했던 것 같다. 최대한 안심시켜주고 싶었다. 눈문 부릅뜬 채 표정에 변화가 없는 엄마가 이해를 했는지는 모르겠다. 10번 정도 지난 후 엄마는 재활을 하러 다시 간병인과 병원으로 들어갔다.


엄마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뒤 집으로 돌아가야 했는데 울음이 나와 벤치에 앉아 한참을 떨면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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