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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엄마가 쓰러졌다.

by yeon Feb 07. 2025

그날은 그러면 안 되는 날이었다. 엄마에게 그날은 일생이 큰 숙제를 해나는 날. 누구보다 후련하게 자식을 다 키워냈다는 뿌듯함으로 보냈어야 하는 하루였다.


그날은 엄마의 아들, 즉 남동생이 결혼을 하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고, 혼주 화장을 받기 위해 미용실로 향했다.

8월 유난히도 더웠던 여름날이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머리가 아프다며 두통약을 꺼내 급하게 먹던 모습에서 눈치를 챘어야 할까..


미용실에 도착 후 화장을 받는 내내 굳은 표정이 긴장해서 그럴 거라 짐작만 했다.

"엄마가 시집가도 되겠네. 너무 이쁘다"라는 농담에도 어색한 미소만 띄울 만큼 긴장했으리라 생각했다.


엄마는 속눈썹도 붙이고, 립스틱도 곱게 바른 후 머리를 하기 위해 자리를 이동했고, 내가 그 자리에 앉았다.

나도 메이크업을 받기 위해 기초화장부터 하고 있는데 엄마 머리를 해주시던 분이 나에게 다가와 엄마 가방에 약을 찾았다. 돌아보니 엄마는 비닐봉지를 입을 가져다 댄 채 오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원래도 건강이 좋지는 않았던 엄마였지만 이럴 때는 없었는데.. 저혈당인가? 어디가 아픈 거지?


속이 좋지 않다는 엄마를 부축해 화장실로 갔다. 엄마는 변기통 앞에 앉아 속이 메슥거리는지 계속 게워냈다. 엄마 등을 두들겨 주는데 점차 중심도 잡지 못해 기울어져갔고 내가 엄마 뒤에 앉아 안아서 중심을 잡아줬다. 아빠가 화장실 밖에서 괜찮냐고 물어보고 사돈어른이 잠시 들어와 걱정되는 표정으로 체한 거 아니시냐고 손을 따면 괜찮지 않겠냐 하시는데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다.


"엄마 응급실 가자"

"안돼 결혼식 가야지. 지금 응급실 가면 결혼식 못 가"


몸은 더욱 기울어져가는데도 응급실은 안 간단다. 몇십 분을 변기 앞에 앉아 가냐 마냐로 실랑이를 했다.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단순히 저혈당 같은 증상이 아니다.


"이러다 결혼식 가기 전에 장례식장부터 가겠다! 응급실 가자고!!"

답답한 마음에 엄마에게 소리를 지르니 엄마는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하더니 온몸에 힘을 쥐어 짜내듯 입술을 꽉 깨물고 변기 앞에서 일어나 세면대로 향했다.

변기에서 세면대까지는 세발자국 정도 되는 짧은 거리였다. 그런데도 제대로 걷질 못하고 다시 주저앉았다.

나는 아빠를 불러서 구급차를 부르라고 했다.


"이러다 결혼식 가기 전에 장례식부터 가겠다. 응급실 가자고"

이 말이 엄마 발병 전 마지막 대화였다.



구급차가 오고 구급대원들이 화장실에 도착할 때쯤 엄마는 의식이 사라져 갔다. 엄마를 구급차에 싣고 구급대원이 코로나 상황으로 인근 대학병원은 전부 갈 수 없는 상황이라는 말과 함께 뇌출혈로 의심되니 근처 뇌 전문 병원으로 가겠다고 했다.


구급차에는 아빠가 타고 나는 택시를 타고 뒤 따라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현실 감각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택시 안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그저 눈물만 났고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해 상황설명을 했다. 통화 내용을 듣고 있던 기사님께서 내릴 때 정신 바짝 잡아야 한다고 해주셨다.


곱게 혼주 화장을 한 엄마는 들것에 실려 응급실로 들어갔다.


엄마 가방과 옷가지를 들고 울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엄마를 의료진에게 인계한 구급대원이 나를 불렀다. 결혼하신다고 들었는데 혼주석은 비우는 거 아니니 아버님이라도 결혼식에 보내셔야 하시는 거 아니냐는 그런 말이었다.


얼마나 따뜻하신 분인지 그런 사정까지 염려되어 말을 건네준 그 맘도 그땐 알아차릴 수 없었다. 밖에서 울고 있는 아빠를 결혼식으로 보내고 난 뒤 잠시 후 의사가 나를 불렀다. CT촬영이 끝난 모양이었다.


지병과 평소 먹던 약, 전초증상등을 물어봤다. 이미 간호사에게 말했던 내용이지만 뭔가 도움이라도 되지 않을까 싶어 다시 한번 아는 만큼 성실하게 답했다. 곧 의사는 CT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다 무슨 말일까..


사진 상으로 보시면 이쪽에 출혈이 있고, 사실 이 부위 출혈은 연세가 있으시면
수술 안 하는 부위입니다.

어머니가 젊으신 편이니 수술하긴 하지만 수술 중 사망하실 수도 있고, 평생 식물인간이 되실 수도 있습니다. 수술이 잘 되더라도 치매 노인 수준일 겁니다.


의사는 꽤 젊어 보였고 습관적으로 친절한 표정을 짓는 듯했다. 최선을 다해보겠다는 말, 다만 장담은 못하겠다는 말은 비정했고 단호했다. 그저 울면서 수술 동의서에 서명하는 게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물속으로 가라앉는 듯 응급실의 분주한 말소리, 다른 환자와 간호사들의 말소리가 멀어져 아득하게 들려왔다.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엄마가 있는 쪽으로 가니 간호사 한분은 엄마 눈에 붙은 속눈썹을 떼고 있었고, 다른 한분은 이발기로 머리를 밀고 있었다.


너무 이쁘게 화장을 한 채 눈도 못 뜨고 머리를 삭발당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 현실적이지 않아서 나는 어쩜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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