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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라소라빵 Feb 20. 2022

올림픽 속 이데올로기 충돌의 순간들

2022 베이징 올림픽을 되돌아보며

이번 주제는 전 세계의 스포츠 축제, 올림픽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그렇다고 스포츠 선수나, 경기에 대한 이야기냐고 물으시면 그건 아닙니다. 스포츠보다는 이데올로기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이번 올림픽은 1932년부터 84년까지 이어진 냉전 올림픽(Olympic ColdWar)을 떠올리게 하는 점이 많았습니다. 첫 번째는 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전쟁 분위기를 자아내는 와중에 개최된 올림픽이라는 점. 두 번째는 바로 중국에서 열린 올림픽이라는 점입니다. 특히 선수들에 대한 검열이나 편파판정에 대한 이슈는 냉전시기 과열된 올림픽 양상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였는데, 전 국민을 어처구니없게 만드는 편파판정이 계속되었죠.


 

ⓒSBS 뉴스_쇼트트랙에 아이템전이 웬 말?

그도 그럴 것이 한 언론 칼럼에 붙여진 이번 올림픽의 별명은 '시진핑의 시진핑에 의한, 시진핑을 위한 올림픽'입니다. 이번 과열된 올림픽 양상은 올해 하반기에 시진핑 주석의 연임을 결정짓는 20차 당 대회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죠. 공산당에서 보통 주석은 2 연임까지가 관례고, 3 연임 정도의 장기집권을 위해서는 그만한 명분과 업적이 필요합니다.


시진핑의, 시진핑에 의한, 시진핑을 위한 올림픽

때문에 이번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는 것은 중국 내 소수민족의 분쟁을 잠재우고 겉으로는 포용하는 제스처를 취하고, 중국 선수단이 메달을 많이 따 애국심을 고양시켜 ‘위대한 강대국 중국’이라는 이미지를 국내 인민들에게 과시하려는 의도를 띠고 있다는 겁니다. 때문에 해외 선수들의 국민들과의 접촉을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핑계로 철저히 통제하고, 이해할 수 없는 편파판정 또한 빈발해졌다는 해석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착한 중국인은 죽은 중국인뿐...’이런 극단적인 혐오를 표출할 필요는 없습니다. 올림픽이라는 메가 이벤트는 항상 국가 원수들의 속셈과, 국가적 이데올로기가 도사렸던 장소이기 때문이죠. 지금은 비교적 자유롭지만 우리 부모님 세대만 하더라도, 일상생활마저 이데올로기 경쟁이라는 국제 정세로부터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스포츠는 훨씬 정치적 목적이 얽혀 있었고요. 때문에 이번 글에선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처럼 올림픽에 반영되었던 국가들의 속셈들과, 변화의 순간을 연대기 순으로 뽑아봤습니다. 올림픽이 정말로 선수들과 스포츠만을 위한 공간이었는지 함께 들어다 보시죠.



*연대기의 분류는 엄격히 학문적인 분류가 아닌 글쓴이 개인의 견해가 담겨있습니다

*포스터, 로고 등 사료는  모두 IOC홈페이지가 출처로 별도의 저작권 표기를 생략합니다.


1. 올림픽의 시작과 그 속에 담긴 제국주의(1896~1936)


최초의 올림픽

가장 근대적인 올림픽의 시작은 1896년 4월에 열린 아테네 올림픽입니다. 이때는 총 독일과 프랑스 영국을 중심으로 한 14개국이 참여했고, 유럽에 국한된 경기였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때 아관파천이 발생한 년도로, 전세계 속 제국주의의 열망이 한창 확대되던 시기입니다. 이 당시의 올림픽이 그렇게 큰 대회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은 곧이어 열린 1900년 파리 올림픽에서 입니다. 이 당시 올림픽은 파리 만국 박람회, 즉 파리 엑스포 속 일부 행사로 열렸고, 프로와 아마추어가 뒤섞인 형태였습니다.

1900 파리 엑스포 조경 일러스트
1900 파리 올림픽. 여성이 그려져 있지만 여성참여자는 20명 정도에 불과했다

한창 제국주의가 유럽에서 활개를 치던 시기였기 때문에 엑스포는 선진국들이 자국이 얼마나 발전되었는지 과시하는 장이었고, 이러한 경쟁이 과열되어 발생하는 해프닝 역시 많았습니다. 이러한 면모가 돋보이는 일화가  1937년 파리 엑스포에서 발생한 독일과, 소련과의 경쟁입니다.


1937 파리 엑스포 좌측이 독일 전시관, 우측이 소련 전시관, 가운데가 주최국인 파리의 전시관이다.

주최자인 프랑스보다 전시관을 크게 짓겠다고 소련이랑 독일이 자존심 경쟁을 벌인 것인데. 서로 더욱 웅장하게, 더욱 크게 짓는다고 경쟁을 한 결과 주최국인 프랑스의 전시관보다 2배 정도로 크고, 웅장한 규모를 가진 전시관이 지어졌습니다. 이러한 과열된 경쟁 양상이 전쟁으로 이어졌다면은 생각한다면 성급한 결론이겠지만, 실제 4년 뒤인 1941년엔 독일은 조약을 깨고 소련을 침공합니다. 이렇듯 올림픽이 개최되던 당시는 다들 자신들의 체제와 국가가 더욱 뛰어나다고 자랑을 못해서 안달이 나던 그런 시대였습니다.  초기 엑스포 속의 부설 프로그램으로 열린 올림픽 역시 이런 제국주의 시대의 과열된 경쟁심리가 반영되었고, 올림픽은 또 다른 체제 선전의 장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1936 베를린 올림픽

이데올로기 선전의 장으로 대표적인 올림픽은 바로 1936년 독일에서 열린 베를린 올림픽입니다. 세계 최초로 TV로 중계한 올림픽이자 히틀러가  선전을 위해 개최했던 올림픽으로 유명합니다. 나치는 영화감독을 고용해 올림픽 경기를 예술적으로 촬영하고, 아리아인의(독일인) 신체의 미적 아름다움을 카메라로 담는 동시에, 독일이 금메달을 독점하여 '아리아인의 생물학적 우수성을 홍보한다.'는 정치적인 목적이 다분히 담겨있었습니다.  

아직 나치의 폐단이 밝혀지기 전이라 나치의 경례가 자연스러운 것은 물론
미국과 영국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한 참여국들은 나치 경례를 하며 경기장에 입장했다

 당시의 충격적인 점은 미국과 영국을 제외한 국가는 선수 입장 시 나치 식 경례를 하면서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올림픽 개최 이전의 독일은 공원에 '유대인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공공연하게 걸려 있을 정도로 차별이 심각했습니다. 그러나 올림픽 기간 동안은 유대인에 대한 차별도 잠시 중단되어 TV로 방영되는 독일은 정말 평화롭고, 잘 발전된 선진국으로 포장되었죠.(이런 독일과 히틀러, 나치가 5년 뒤 소련과 조약을 어기고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다들 상상조차 못 했을 겁니다.) 당시 베를린 올림픽은 전 세계 50개 언어로 3천 개 이상의 프로그램으로 방송되어 효과적으로 나치를 선전하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2. 냉전의 개막, 그 속에 담긴 이데올로기(1948~1984)


1952 헬싱키 올림픽

1952년 헬싱키 올림픽. 우리에게는 내전 중인 가슴 아픈 시대였지만 올림픽은 세계화가 이루어진 시기였습니다. 이스라엘과 소련이 처음으로 올림픽에 출전했고, 냉전의 분위기가 점차 과열화되던 시대였지만 올림픽 자체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이념과 갈등을 뒤로하고 평화를 위해 전 세계가 함께 할 수 있다는 상징적인 모습을 연출했죠. 개최지 선정 또한 그 의의에 맞게 회원국 투표를 통해 결정되게 되었습니다. 특징적인 모습이라면 냉전시대인 만큼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정치노선에 따라 선수들은 따로 분리되어 수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이 무색할 정도로 냉전이 과열되는 만큼, 올림픽 역시 함께 과열되어 갔습니다. 반대 진영 선수의 업적을 폄훼하는 프레이밍과 도를 넘은 비판은 물론이고, 서로의 올림픽에 보이콧하는 사태까지 이어졌습니다.

1980 모스크바 올림픽. '러시아'하면 생각나는 곰 마스코트가 인상적이다

1980년의 올림픽은 모스크바에서, 1984년의 올림픽은 미국 LA에서 열렸습니다. 냉전시대를 주도하는 양측 우두머리가 주도하는 올림픽이 연속해서 개최된 셈이죠. 그리고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했습니다.


1980 소비에트 연방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자유 민주주의 진영의 올림픽 보이콧

1980년 소비에트 연방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무자헤딘-알카에다-탈레반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만든 전쟁의 시작이었습니다. 때문에 80년 올림픽은 이에 반발해 미국을 포함한 동맹국인 한국 등 수십 개 국이 올림픽에 보이콧하며 참여하지 않았고, LA올림픽은 14개 공산권 국가들이 소련의 주도하에 보이콧하여 올림픽의 권위가 연달아 실추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은 미국의 입장에선 민주주의 선전의 장이었는데, 6.25 전쟁을 딛고 일어난 국가가 이렇게나 현대화되고 발전하였다는 것을 전달할 수 있었던 기회였습니다. 때문에 당시 공산권 국가인 쿠바와 에티오피아, 니 카라, 북한 등은 참가하지 않고 보이콧했습니다. (그래도 러시아를 비롯한 다른 공산권 국가들은 참여를 해 12년 만에 온전히 이데올로기와 관계없이 개최된 성공적인 올림픽이 되었습니다.)


이런 보이콧 외에도 양국의 매스컴은 금메달을 딴 선수를 축하하기보단 각자의 이데올로기에 흠집을 만들기 위해 전력을 다했습니다. 지금도 미국에서 인기 있는 스포츠 잡지인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트드에선 올림픽에 출전한 소련 선수들에 대해 노골적으로 비인간적인 이미지가 담긴 단어를 선택해 보도했습니다. 기사에선 ‘영양사의 감시하래, 하루 5천 칼로리의 음식을 쑤셔 넣었다.’라는 식으로 보도하여 소련 선수들이 체제 아래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부각하려 했고,  소련의 전체주의로 인한 것이라는 부정적인 메시지와 함의를 전달했습니다. (Ezra Bowen and George Weller, “The 1956 Winter Olympics,” Sports Illustrated 20(Jan, 1956), p. 27


소련의 여성 운동선수들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유포하여 도덕적 우위를 점하고자 하는 전략 또한 있었습니다. 당시 미국은 생물학적 성에 기초한 남녀의 차별이 몇 세기에 걸쳐 약화되어가고 있는 추세였지만, 스포츠에 있어 이런 영향력은 아직 미비했습니다. 미국 언론 매체는 뛰어난 기량을 보인 소련의 여성 선수들을 마치 여성으로서 성 정체성을 포기한 집단으로 그렸습니다. 1970년 7월 2일 자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다음과 같은 글을 게재했습니다. 


(1937년 5월 10일 ~ 2021년 4월 26일) 전 소비에트 연방의 육상 선수 타마라 프레스


미국에서 여성 육상 종목의 발전이 더딘 이유 중 하나는, 소련의 타마라 프레스와 같은 선수들이 이 종목에서 선수로 뛰기 때문이다. 이들은 여성이라기보다는 남성으로서의 특징을 더 많이 갖고 있다. 그녀의 사진을 본 미국의 부모들은 그들의 딸이 수영이나 다른 종목으로 인도하게 될 것이다
  Los Angeles Times, 2 July 1970, E2

즉 소련 여성 운동선수들의 성 정체성에 대한 의심은, 그들이 올림픽에서 보여준 기량에 대한 반작용으로 폄훼를 시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이들의 육체를 공산주의 체제의 실패의 상징으로 활용하고, 성 질서를 파괴하는 이들처럼 그린 것이죠. 어떻게 보면 체제의 비인간성을 드러낸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소련의 전략은 자국의 매체를 통해 자국 선수들의 우월성을 홍보하는 것이었습니다. 소련의 스포츠 선수들은 단지 운동능력이 뛰어나 뽑힌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에 대한 신념으로 무장하고, 국제무대에서 체제의 대표자 역할을 수행하는 일명 운동복의 외교관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이죠.


올해 베이징 올림픽도 이와 비슷한 양상을 띄고 있는데 1월 25일 중국 선수단의 출정식이 그런 성격을 반영합니다. 당시 선수단이 외치는 구호는 “영수에게 보답하기 위해 목숨을 걸자. 일등을 다투고 패배는 인정하지 않는다. 총서기와 함께 미래로 가자!” 이런 구호였는데 여기서 영수, 총서기는 모두 시진핑 주석을 의미합니다. 냉전 체제의 소련 스포츠 선수단과 성격이 거의 유사하다는 것이죠.  정리해서 미국이 소련의 선수를 “인간 기계, 로봇”으로 묘사했다면 소련 매체는 그들을 “조국의 영광을 위해 분투하는 전사”라고 표현했습니다. (Mertin, “Presenting Heroes,” p. 476)


     


3. 올림픽이 정말 평화를 위한 공간이 될 수는 없을까?


선수들은 이데올로기와 관계없이 서로 인사와 교류를 주고받았다. 2022 동계 올림픽에서 한국 숙소를 찾은 외국인 선수들이 인사차 만들고 간 눈사람들

물론 소련선수와 개인적으로 조우한 미국 선수들의 반응은 양국의 딱딱한 반응과는 달랐습니다. 1952년 올림픽 선수촌의 소련 대표 팀을 방문한 이후 “우리들 모두가 결국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기뻐했다.” 이에 대해 소련은 “선량한 마음을 가진 귀국의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의 감사인사를 전해주십시오”라고 응답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에서 미국의 언론매체가 그리는 바와 같이 고립적이고 폐쇄적인 소련 선수들의 이미지를 찾아볼 수 없었죠. ( John Bale, “’Oscillating Antagonism:’: Soviet-British Athletics Relations, 1945-1960,” in East Plays West, p. 95.) 


분명 올림픽에는 정치적 목적과 이데올로기가 짙게 담겨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까지 그 과열된 양상과 분쟁에 동참해줄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올림픽의 목적이 선전이나 체제의 우위를 선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피어나는 도전과 의지, 그리고 올림픽 정신인 평화를 믿는다면 올림픽은 정말로 그런 것을 품은 장소가 될 테니까요. 비슷한 이유로 이번 올림픽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편파판정과 중국 당국의 운영 등 많은 이슈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이데올로기와 거버넌스에 속한 모든 사람들을 증오하고, 혐오하지는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이데올로기와 거버넌스 속에서 그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지만, 그것들을 사람과 사람을 위해 초월할 때 한층 더 좋은 세상과 마주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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