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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작 Jan 01. 2022

욕이 필요한 순간

이승원 감독 <세 자매> 


"씨발, 어른들은 왜 사과를 못해!" 
- 보미(첫째 희숙의 딸)의 대사 

- 이승원 감독 <세 자매> 



  12살 무렵 나도 저런 생각을 했다. 엄마는 내가 가져가지 않은 열쇠를 가져갔다고 -본인이 분명 기억한다고- 나를 닦달했다. 나를 골목에 세우고, 열쇠 구멍을 보여주며 소리쳤다. 내가 울먹이며 아니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도 막무가내였다. 소란스러움에 나온 할아버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본인이 가져갔다고 말했다. 나는 참을 수 없는 서러움이 밀려와 방으로 뛰어갔다. 한참 울고 있으니 엄마가 오더니 겸연쩍게 말했다.

  "뭐, 그런 거 가지고 우노...."


세 자매의 연기는 언어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탁월하다. 영화 시간 내내 몰입에 몰입을 했다.


  안다. 엄마는 미안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직접적인 사과는 하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다. 12살의 나는 생각했다. "왜 어른들은 잘못해도 사과하지 않지?" (다행히 앞에 욕을 붙이진 않았다. 붙였어야….) 


  영화 속 세 자매(정확히는 네 남매)는 기댈 곳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가 또 첫째와 넷째를 심하게 때린 어느 날, 10살 남짓한 둘째가 셋째를 데리고 몰래 창문으로 나간다. 내복을 입고 맨발로 동생의 손을 잡고, 슈퍼로 뛰어간 아이는 아빠가 자기 형제들을 때리고 있다고 말한다. 어른들은 이미 알고 있고, 문제라고 서로에게 말한다. 그 어른들은 내복만 입고 맨발로 뛰어나와 도움을 요청하는 10살 아이에게 말한다. "네가 잘해야지. 가서 때리지 말라고 말하며 빌어" 힘이 없는 아이가 아빠를 신고해 달라고 하자, 어른들은 ‘어디 감히 아빠를 신고하려고 하느냐’며 아이를 몰아세운다.     


  뿌리 없이 폭력에 장시간 노출된 시간을 견디며 보낸 세 자매는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흔들리는 삶을 산다. 큰딸 희숙은 자해에 기대고, 작은딸 미연은 종교에 기대고, 막내딸 미옥은 술에 기댄다. 아픈데 아프다고 말하지 못한다. 상처는 점점 커져 현재 세 자매의 가족들을 아프게 하고, 스스로를 망가뜨린다. 미옥은 둘째 언니인 미연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 노릇을 어떻게 하는지" 알려달라고 한다. 그러자 미연은 말한다. "그걸 누가 배워서 하니.." 맞다. 배워서 하는 게 아니라, 받은 대로 한다. 실수도 하고, 부족하지만 그래도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어른들 그늘에서 자란 아이는 그 마음을 햇빛처럼 받고, 자란다. 그러나 (적어도 영화를 통해 본) 세 자매의 삶에는 그런 햇빛이 없다. 그래서 세 자매는 늘 허둥거린다. 그들 자매의 아이들이 각기 다른 형태로 망가져 있는 것이 그 증거다. 그렇게 그들은 무엇이 원인인지도 모른 채, 그저 묻어두고 각자의 삶을 견뎌낸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가정 폭력의 가해자였던 아버지의 생신이다. 난장판이 벌어진다. 반드시 한 번은 거쳐야 할, 아주 속 시원한 난장판이다. 남매들이 뒤엉켜 싸우고, 울고불고하는 상황에서도 아버지는 연신 목사님께 사과한다. 그러자 미옥은 아버지에게 말한다. 목사님 말고 우리에게 사과하라고. 아버지는 끝내 입을 열지 않는다. 그러자 영화 내내 이어폰을 끼고, 관심 없어 보이던 큰딸 희숙의 딸 보미가 외친다.        

  "X발, 어른들은 왜 사과를 안 해!"      

  그렇다. 이 문장에는 반드시 욕이 붙어야 한다. 끝내 아버지는 사과하지 않았다. 대신 유리창에 이마를 찧고 피범벅이 된다.



문소리가 이렇게 아름다운 배우였던가라는 생각을 보는 내내 했다. 눈빛부터 말투까지 그 자체로 경지에 올랐다.

 

  영화 <세 자매>는 보는 내내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는 영화였다. 영화 속의 네 남매처럼 극단적인 물리적 폭력에 노출되어 살았던 것도 아니고, 관심도 사랑도 있었지만, 종종 이유를 알 수 없는 (이유라면 부모의 스트레스라는 것을 어린 우리는 알고 있었다) 체벌이 있었다. 영화 속 구성처럼 우리도 딸 셋에 아들 하나. 네 남매였고, 늘 권위적인 기운이 떠다녔다. 셋째인 나는 상대적으로 폭력에 덜 노출되었지만, 어서 집을 떠나고 싶었고, 그렇게 했다. 20대, 집을 떠나보낸 십 년의 기간이 나 스스로를 알게 했고, 나는 훨씬 더 편안해졌다.   

  

  알고 있다. 시대가 그랬고, 어른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나는 어떤 혜택(?)을 많이 입었다는 걸. 그리고 나는 부모와 사이가 좋다. 어른이 된 나는 이해를 한다.     

  

  그러나 그런데도 울컥하게 되는 순간들은 있다. 영화 속 해변 앞에 세 자매를 세워놓고 춤을 추라고 시키는 장면이 그렇다. 물리적 폭력은 없었지만, 어찌할 수 없이 전시된 아이의 표정에서 어린 시절의 나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없던 순간들. 어른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너는 애가 왜 그러니'라는 이유를 들어야 했던 어떤 순간들.     


  영화 속 세 자매의 삶이 보여주듯, 어떤 상처는 반드시 치유되어야 하고 그것의 시작은 언제나 가해자의 사과다.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계속 '죄송하다'는 말을 달고 사는 첫째, 가식적인 삶을 사는 둘째, 현실 감각을 상실하고 살아가는 셋째. 그리고 심한 내상을 입은 넷째까지. 그 아이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돌이킬 수 없다고 해서,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어른들은 왜 사과를 못 해" 앞에 붙는 'X발'은 아주 적절하다.



















 영화 <세 자매>는 보는 내내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는 영화였다. 영화 속의 사 남매처럼 극단적인 물리적 폭력에 노출되어 살았던 것도 아니고, 관심도 사랑도 있었지만  종종 이유를 알 수 없는 (이유라면 부모의 스트레스라는 것을 어린 우리는 알고 있었다) 체벌이 있었다. 영화 속 구성처럼 우리도 딸 셋에 아들 하나. 사 남매였고, 늘 권위적인 기운이 떠다녔다. 셋째인 나는 상대적으로 폭력에 덜 노출되었지만, 어서 집을 떠나고 싶었고, 그렇게 했다. 그 십 년의 기간이 나 스스로를 알게 했고, 나는 훨씬 더 편안해졌다. 


  알고 있다. 시대가 그랬고, 어른들은 나름 최선을 다했고, 나는 어떤 혜택(?)을 많이 입었다는 걸. 그리고 나는 부모와 사이가 좋다. 어른이 된 나는 이해를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울컥하게 되는 순간들은 있다. 영화 속 해변 앞에 세 자매를 세워놓고 춤을 추라고 시키는 장면이 그렇다. 물리적 폭력은 없었지만, 어찌할 수 없이 전시된 아이의 표정에서 어린 시절의 나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없던 순간들. 어른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너는 애가 왜 그러니'라는 이유를 들어야 했던 어떤 순간들. 


  영화 속 세 자매의 삶이 보여주듯, 어떤 상처는 반드시 치유되어야 하고 그것의 시작은 언제나 '사과'다.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계속 '죄송해'하는 삶을 살아가는 첫째, 가식적인 삶을 사는 둘째, 현실 감각을 상실하고 살아가는 셋째. 그리고 심한 내상을 입은 넷째까지. 그 아이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돌이킬 수 없다고 해서,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어른들은 왜 사과를 못해"앞에 붙는 '씨발'은 아주 적절하다. 


  

 마지막 장면,  이소라의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가 흘러나오고, 바다를 배경으로 세 자매가 보인다. 카메라는 멀리서 그들을 잡고 있다. 자매들이 서로를 보듬으며 천천히 카메라 밖으로 나가면, 그 끝에서 어린 시절의 사 남매가 카메라 프레임 안으로 들어온다. 카메라 밖에서도 그들의 삶은 계속될 것이다. 여전히 여러 가지 문제는 계속되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나아갈 수 있다. 해변에서 장난치며 웃는 아이들처럼. 그렇게 다시, 살아내는 것이다.  




추신>


 

https://youtu.be/lMUio3kcuWY

추신 : 친구가 알려줘서 문소리 배우의 수상소감을 봤다. 아. 이토록 멋있다니!!! 


“우리 자매들에게 딸들이 있다. 그 딸들이 폭력과 혐오의 시대를 넘어 당당하고 행복하게 웃으며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영화다. 이 땅의 모든 딸들에게 그 마음이 전해졌으면 했다

...

윤여정 선생님, 아까 멋진 무대 보여줬던 홀리뱅 언니들, 그런 멋진 언니들이 있어서 우리 딸들의 미래가 더 밝지 않을까 생각한다”

- 문소리,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수상 소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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