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수경 「물빛」『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2022, 포에버)
대학원 때 발굴 현장에 간 적이 있다. 고고학 수업 시간이었다. 직접 발굴을 한 건 아니고, 선사시대 집단 서식지 터에 (구경) 갔다. 발굴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발굴용 붓을 잡고 한 번 털어도 봤다. 떨렸다. 발굴된 터 전체가 보이는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교수님 설명을 들었다. 아주 오래전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을 보니, 필멸의 생을 사는 인간의 시간에 대한 허무함과 회한, 흙을 통해 전해지는 오래전 그 삶의 온기.... 같은 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럴 리가 있나. 아무것도 모르는 나의 눈에는 그저, 네모난 계단식 논(?) 같았다. 그 논을 보며, '이거 밟으면 어떻게 될까? 교수님에게 이 자리에서 바로, 선사시대 돼지 새끼처럼 죽임당하겠지.’ 같은 생각과 ‘이게 정말 과거의 터인지 어떻게 알지? 아닌 거 아냐?’ 같은 아주 유치한 생각만 했다.
그땐 그런 이상한 생각만 하고 왔다. 왔는데, 직접 경험이란 건 참 힘이 세다. 내 발로 선사시대 집터 언저리를 밟아보고, 발굴용 붓이라도 잠깐 쥐어본 게 내 몸 어딘가에 붙었는지 불쑥불쑥 예기치 못한 순간 나의 뇌를 자극했다. 예를 들어 박물관에 가서 뗀석기나 토기 같은 유물을 보면, 자연스럽게 구체적 삶의 공간인 터가 떠올랐다. 유리 상자 안에 갇혀 조명을 받는 이 ‘토기’가 원래는 누군가가 쓰던 생활품이라는 자각이 들었다. 그 터에 집을 짓고 살았던 어떤 사람이 이 토기 안에 열매를 채워 저장하고, 식구들과 나눠 먹었겠다는 생각이 아련한 마음을 불러오기도 했다.
허수경 시인은 우리나라에서는 국문학, 독일에서는 고고학을 전공했다. 이력이 참 공감각적이다.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에 수록된 시를 쓰는 동안에는 시리아와 터키로 발굴하러 다녔다고 한다. 상상해본다. 독일, 시리아, 터키 등의 ‘공간’을 옮겨 다니며, ‘시간’을 아래로 아래로 파내려 가던 시인. 그곳에서 한국어는 외계어처럼 낯설다. 시인은 낮 동안 혼자만의 언어인 한국어를 속으로 조용히 공글리듯 빚다가, 밤이 되면 가만히 풀어놓았을 것이다. 시간, 공간, 언어가 모두 휘어진 곳에서 오롯이 탄생한 시집. 그래서일까. 이 시집을 읽다 보면 별이 가득한 우주를 유영하는 기분이 든다. 황홀하게 막막하다.
아주 어린 날
세숫대에
물 떠놓고
물빛하고
논다
어른거린다
물빛
날빛
낯빛
날아간다 그림자
덮친다 날아가는 그림자 위를
다른 빛 하나가
그리고 물빛
내 낯을 어루는 물빛
바라본다
설렁대는 빛
일렁이는 저 너머
불안한 맑은 빛
서성이는 이미 물빛이 된
내 어린 지친 얼굴
물빛
빛
- 허수경 「물빛」『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2022, 포에버)
시간과 공간이 한없이 확장되고 교차하는 발굴터에서 시인은 한없이 작았다가 커졌다가 했을 것이다. 불안하면서 맑게, 지치면서도 어리게. 물빛, 날빛, 낯빛이 되는 그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였을 것이다. 물방울 같기도 하고, 흙 알갱이 같기도 한 단어들이 그 순간을 담고 있다. 응축이다. 나는 이 시집을 이해하기보다 감응한다. 경험한다. 오래전 발굴터에 서 있던 순간처럼 말이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내 몸 어딘가에 이 시들이 붙어 있을 것 같다. 그러다 살면서 만나는 어떤 ‘공감각적 순간’이 오면, 이 책의 문장들이 내게로 올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