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 자서전 Jan 08. 2021

마룻바닥에 엎드리다

  마룻바닥을 닦는다. 

  20년 된 아파트에 이사해 인테리어 공사를 했다. 확장도 했다. 새로 지은 아파트는 가격이 비쌌다. 오래된 아파트는 나와 같이 나이든 사람들이 많다는 이유도 있었다.   


  인테리어를 하면서 바닥은 강마루라는 재료로 시공을 했다. 비닐장판보다 좋고, 촉감도 좋다. 그러면서 내가 살아왔던 집들의 장판을 떠올린다.  

  625전쟁이 끝나고 나서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그때는 시멘트 포장지로 장판을 했다. 바닥에 초배지를 붙이고, 그 위에 시멘트 포장지를 뒤집어서 풀로 붙였다. 이음매에는 시멘트 포장지를 테이프처럼 오려서 붙였다. 그리고 마무리는 콩댐으로 했다. 콩댐은 물에 불려서 간 콩에 들기름을 섞어서 바른다. 장판지도 팔았지만 가격이 비싸 시멘트포장지를 사용했다. 그 후로는 비닐 장판을 했다. 비닐장판이 처음 나왔을 때는 꽃 장판이라 불렀다. 비닐 장판에 꽃무늬가 있어서였다. 꽃 장판이 비싸서 이사 갈 때는 걷어가기도 했다.     

 

  우리 부부는 마루로 장판을 한 집에서는 처음 사는 셈이다. 아내는 마루에 조금이라도 흠집이 생길까 노심초사한다. 물이 떨어져도 걱정이고 물건을 옮길 때도 마루에 흠집이 생길까 조심한다. 아내가 마루에 신경을 쓰는 것을 보니 나도 옆에서  나몰라 할 수가 없다. 

  인터넷으로 마루 보호제를 검색했다. 여려 가지 물품이 검색되었다. 제품도 여러 종류였다. 어떤 게 좋을지 알 길이 없었다. 구매는 더 두고 생각해 보기로 하고, 우선 쿠팡 카트에 보관해 두었다. 실물도 보지 않고, 정확한 설명도 없이 구입하기가 망설여져서였다. 그 후 집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플라스틱 까만 통이 눈에 들어왔다. 자동차에 사용하던 물 왁스이다. 
  

  나는 아내에게 마루에 바르면 광택도 나고, 마루에 오염물질이 덜 묻는다고 일러주었다.  청소하기도 편하고 마루수명에도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아내는 그러면 한쪽 구석에 발라보라고 했다. 거실 창문 옆 화분 있는 곳에 걸레도 왁스를 묻혀 바르자 마루에 흰 자국이 생기는 게 아닌가. 그만 놀란 아내는 “얼룩이 생기잖아!” 했다. 잠시 후 얼룩을 닦자 그 자리가 반짝거렸다. 왁스의 효과를 입증한 셈이었다. 그 후 아내는 내게 틈만 나면 왁스를 바르라고 명령 아닌 명령을 했다. 

  아내의 명령대로 오늘은 왁스를 바르기로 했다. 25평 아파트이지만 왁스를 바르고 걸레로 문지르니 힘이 들지만 운동도 된다. 바닥에 광택이 나고 발을 디디면 매끄럽게 느껴진다. 

  그런데 왁스를 칠한 곳이 허옇게 변색되질 않는가. 왁스를 조금만 바르고 바로 걸레로 문질러야 하는데, 다 바르고 난 후에 걸레로 문지르니 잘 닦이지 않았다.       

  저녁 무렵 귀가한 아내가 집안에 들어서 마루를 보더니 그만 짜증을 내는 게 아닌가. 

  “이게 뭐야, 당신 마루에 뭐 발랐어?” 

  그러더니 걸레로 닦아보지만 생각대로 잘 닦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윽고 아내는 자동차에 바르는 걸 여기에 발라서 그렇다고 투덜거리기까지 했다. 

  “잘 보고 해야지. 이게 뭐야? 안 닦이잖아?”

  그러면서 극세사 걸레로 닦기 시작했다. 조금씩 닦아지지만 마음 대로 되지 않아 보였다. 

  “그냥 둬요. 물걸레질하고 시간이 지나면 없어져요.” 

  “뭐가 없어져요? 없어지긴!”

  그런 아내를 보며 나는 오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게 좋겠다, 고 생각했다. 젊어서는 이런 사소한 일로 아내와 자주 다투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일로 아내와 언쟁을 벌리고 싶지 않았다.      


  대개의 사람들은 있으면 있어서 힘들다고 하고, 없으면 없어서 힘들다고 말한다. 쇼펜하우어의 말이던가. 그는 이렇게 한탄했다.      


 “인생은 궁핍해서 고통스럽거나 권태로워서 고통스럽다. 있으면 있어서 고통이고, 없으면 없어서 고통이다. 있으면 지루하고 없으면 아쉽다. 그렇다면 있으면 없지 않음을 기뻐하고, 없으면 있지 않음을 기뻐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의식은 그렇게 진행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에 덧붙여 “사람들이 불행한 것은 장점은 사라져서 고통스럽고 단점은 존재하기 때문에 고통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의 말을 두고 두고 새겨볼 만하다. 어디 이뿐인가. 그의 말에 조금 더 귀를 기울여본다. 


  “장점은 사라져서 고통이고, 단점은 존재해서 고통이다. 인간은 장점에는 쉽게 익숙해지고 단점에는 익숙해지지 않는다. 연인이나 배우자가 잘해 주면 처음에는 무척 고마워한다. 그러나 곧 익숙해지기 마련이고, 익숙해진 후에는 ‘그 사람은 원래 그렇게 해’ 하면서 더 이상 고마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연인이나 배우자가 잘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장점에는 쉽게 익숙해지고 그래서 장점으로 인한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데, 단점에는 익숙해지지 않고 그래서 단점으로 변질될 것이다. 

  이것은 결코 아름다운 사랑의 관계일 수 없다. 사랑의 관계란 아름다운 인간관계여야 한다. 그런데 누군가를 능동적 주체가 아니라 수동적 종속인으로 삼아 버리는 주종관계가 아름다운 인간관계일리는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애정관계는 진정한 사랑의 관계가 될 수 없다.” 


  그렇다. 현재에 만족하고, 투정부리는 아내에게도 불평하지 말아야 하련다. 성숙한 사랑은 아니더라도 마음 편하게 늙고 싶다. 그래야 늙어서 밥이라도 맘 편히 먹을 수 있지 않겠나 싶다. 나도 아직은 성숙한 사람이 되려면 멀었지 싶다. 

  마룻바닥에 엎드려야겠다. 그리고 열심히 닦아야하지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엇으로 인생의 스토리를 쓸 것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