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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 자서전 Jan 09. 2021

건강 바라기

    왼쪽 사타구니에 탁구공이 하나 생겼다. 동글동글하다. 아프지 않다. 귀엽게 보여서 손으로 쓰다듬기도 했다. 이놈이 생긴 지는 한 달 쯤 되었다. 아내에게 보여주었더니, “이게 뭐야, 이상해.”라고 했다. 

  어려서도 몸이 피곤하면 가래톳이 생긴 일이 있었다. 가래톳이 생기는 위치와 비슷한 곳이다. 모양은 가래톳보다 조금 커 보였다. 위치로 봐서는 비뇨기과를 가야 할 것만 같았다. 비뇨기과에 진찰받을 일이 있었다. 그때 의사에게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주 진찰이 있었다. 비뇨기과 의사가 보더니 “탈장입니다. 외과로 가세요.”라고 하지 않는가. 나이가 들면 생긴다고 의사는 덧붙였다. 외과로 갔다. 외과 의사 역시 탈장이라고 말하면서, 어머니 뱃속에서 장기가 생길 때 장기를 싸고 있는 막이 약해져서 약해진 쪽으로 불쑥 쏟는 게 탈장이라고 했다.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되었다. 알지 못했던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고, 또한 의사에 대한 신뢰도 갖게 되었다. 

  의사는 혈액검사, 소변검사, 초음파검사, 엑스레이 검사를 하라는 진찰소견을 내려주었다. 그리고 수술날짜를 잡자고 했다. 하지만 나는 명절이 지나서 수술했으면 좋겠다고 하자 그러면 명절 지나서 간호사와 날짜를 정하라는 답변이었다. 

  그 후 며칠 지났다. 아침에 갑자기 배가 아파왔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급히 병원으로 갔다. 의사는 그곳에 염증이 생기면 일이 커진다고 하면서 당장 입원하고 수술을 하라고 했다. 나는 “안 그래도 그렇게 하려고 준비해서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명절을 앞두고는 수술하기 싫었는데, 갑자기 배가 아프니까 입원하려고 준비를 해 온 것이었다.     


  내가 입원한 곳은 간병병동으로 이었다. 일반 병동보다 입원비가 비싼 곳이었다. 일반 병동에는 입원실이 없어 부득이했다. 특별히 간병을 필요로 할 것 같았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입원 결정을 했다. 병동은 새 건물이라서 넓고 쾌적했다. 침대를 잡고 가져온 물건을 수납함에 하나하나 정리했다. 그리고 침대 탁자를 펴 노트북을 꺼냈다. 

  ‘상담실습 및 슈퍼비전’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비대면 수업이었다. 입원해도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비대면 강의의 장점이다. 이동시간이 절약될 뿐 아니라, 교통비도 절약되고, 미세먼지도 줄어든다. 앞으로도 이런 온라인 수업은 늘어나 날 것만 같다. 학교수업의 형태가 바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세상이 되어간다는 느낌이다. 

    

  입원실에서 큰 소리로 전화를 하면 옆 사람이 불쾌할 수도 있다. 나는 다른 환자들이 보이지 않게 침대 커튼으로 가린 후 음소거를 하고 Zoom으로 수업에 참여했다. 의료시설에서 환자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입원실에서의 강의는 나도 처음이고 교수님도 처음인 것 같았다. 물론 학우들도 이런 모습은 낯설 것이다. 영상을 통해 학우들로부터 빠른 쾌유를 바란다는 응원을 받으니 저절로 기운이 솟구치는 듯했다. 온라인 수업이 낯설었던 기억이 오래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익숙하다. 오히려 편리한 면도 있다. 

  산업혁명, 정보혁명이 세상을 바꿔놓았듯이 바야흐로 코로나 19가 비대면이 세상을 바꿔놓고 있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무크 MOOC. (Massive Open Online Course)’ Coursera. edX. Udacity 등으로 온라인 수업을 한다고 트랜드전문가 김용섭은 자신의 저서 《언컨택트》 (퍼블리온, 2020)에서 말하고 있다. 그는 이울러 비대면 시대의 정신건강 문제를 이렇게 제기하고 있다.     

  “원격근무가 외로움, 소외감 같은 정신건강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가뜩이나 현대인들은 정신건강 문제가 적지 않은데, 원격근무의 확산은 자칫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원격근무를 하면서 소외감과 고립감을 느꼈을 때 이를 해소할 방법을 찾는 것도 앞으로 기업이 관심을 기울일 일이다.”      


 그렇다. 앞으로 기업에서도 정신질환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면 기업에 정신상담가들을 뽑을 수도 있을 것이다.     


  침대에서 잠을 자다가 몇 번이나 깨었다. 침대의 매트리스가 너무 딱딱해서였나 보다. 평택에서 제일 큰 병원인데 침대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 내가 근육질이 아니어서인가. 데일 카네기는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을 ‘건강과 장수’, ‘음식’, ‘수면’, ‘중요한 사람이라는 기분’ 등 8가지를 들었다. 사람에게 수면이 중요한데 나는 잠을 설치며 밤을 꼬박 밝혔다.    

 

  내 병은 탈장脫腸이라고 한다. 장腸이 밖으로 나온 게다. 흔히 간이 밖으로 나온다고 하는데, 머지않아 간도 나올 모양인가 보다. 요절한 천재 시인 ‘이상’은 탈장이 아닌 탈신을 노래했던가.      

 

 “탈신, 신발을벗어버린발이허전해서실족한다.”     


그는 이렇게 읊었다. 작가는 신발의 탈신이 아니라, 탈신脫身을 말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길을 잃어버린 장腸으로 탈신脫身이 아닌 탈장인 게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삶을 고해苦海라고 한다. 병이 나니 아프다. 기쁘고 즐거운 일이 사라진다. 그리고 고통만 남는다. 괴롭다. 눈물이 난다. 사는 게 고해인데, 몸이 아프니, 바다에 떠 있는 난파선과 같다. 그래서 건강이 제일이라 하는지 모르겠다. 

  젊은 싯다르타 왕자는 어느 날 길에서 만난 노인을 보고 깨달음을 얻어 “지금의 내 안에 이미 미래의 노인이 살고 있도다.”라고 외쳤다. 나는, ‘내 몸 안에서 병病이 살고 있다’고 외치고 싶다. 건강을 자만하지 말자. 내 몸 안에 있는 미래의 병과도 잘 지내야겠다.     

 

 ‘생명이 길어지면 봉래蓬萊를 만난다.’는 중국속담이 있다. 봉래란 신선들이 모여 산다는 중국의 영산靈山 봉래산蓬萊山을 말한다. 예부터 오래 산다는 것은 경사이다. 하지만, ‘오래 살수록 고통도, 수치羞恥도 많아질 수 있다.’ 사람들은 건강하고 장수長壽 하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장수杖壽(지팡이로 연명하는 삶)를 하거나 치수癡壽(치매로 앓는 삶)로 사는 사람도 있다. 꾸준히 운동하고 균형 있는 식사를 하면서 노후를 살아가고 싶다.        

  하버드대학교 조지 베일런트 교수는《행복의 조건》에서 성공적인 인생을 예측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척도를 ‘수입, 신체적 건강, 삶의 기쁨’이라고 했다. 수입은 적어도 죽을 때까지 건강해야겠다. 그게 삶의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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