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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나에게 쓰는 편지

아니마, 아니무스

by 마음 자서전

그녀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마라

사랑하는 젊은 나에게,

지금, 이 편지를 쓰는 나는 너보다 훨씬 더 늙고, 더 느리고, 훨씬 더 많은 것을 잃고 얻은 사람이다. 내가 너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오래도록 꺼내지 못한 말이 있다.

지금은 들리지 않겠지만, 언젠가 네 마음이 조용해질 때, 이 목소리를 기억해 주면 좋겠다.

너는 강해지려 애쓰고 있지. 눈물은 보이지 않으려 하고, 늘 바쁘게 살아야 한다고 믿고. 그래야 남자답다고, 어른답다고 생각하지. 그건 틀린 말은 아니야. 세상은 그런 얼굴을 원하니까.

하지만 그 속에 너도 알고 있는 ‘조용한 목소리 하나’가 있지 않니?


감정에 쉽게 젖고, 음악 한 곡에 가슴이 흔들리고, 작은 생명 하나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너.

그건 약한 게 아니다. 그건 네 안에 살고 있는 또 다른 너, ‘그녀’의 목소리다. 그녀는 언제나 네 곁에 있었다. 하지만 너는 늘 바빴고, 늘 무거웠고, 늘 참고 견디느라 그녀를 외면했지. 그녀가 느낀 슬픔, 고요한 기쁨, 따뜻한 상상들을 '쓸데없는 감정'이라며 밀쳐냈지.


나는 이제야 그 말을 들어주고 있다. 나는 이제야 그녀가 내 삶의 절반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나를 더 부드럽게 만들었고, 더 깊이 사랑하게 했고, 무너질 수 있는 용기를 내게 가르쳐주었다.

사랑하는 나여, 그녀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마라. 감정을 말해도 좋고, 울어도 괜찮고, 사랑한다고 말해도 된다. 너는 인간이고, 그 인간성 속엔 여성성과 남성성이 함께 살아 숨 쉰다는 것을 잊지 마라.

그녀는 너의 연약함이 아니라, 너의 진짜 힘이다. 이 말을 언젠가 네가 기억해 줄 날이 오기를 바라며, 노인이 된 내가, 젊은 너에게 이만 붓을 놓는다.

늘 너를 사랑하는 80세의 너로부터

25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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