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집단•외집단 편향(in-group • out-group bias)
사랑하는 아들• 며느리에게
너희가 미국에서 손주들을 키우는 걸 생각하면,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걱정이 된다.
특히 학교에서 여러 인종과 문화가 섞여 지내다 보면, 한국계 아이들이 때로는 ‘우리’가 아니라 ‘그들’로 보일 때가 있을 거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경향을 ‘내집단•외집단 편향(in-group • out-group bias)’이라고 하는데,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을 더 가깝게 여기고, 그렇지 않은 집단은 조금 멀리하거나 경계하는 습관이 있다.
이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본능이지만, 그대로 두면 백인이 다수인 미국 사회에서 우리 손주들이 친구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기고, 외로움과 소외감이 깊어질 수 있단다.
나는 이런 벽을 허무는 가장 좋은 방법의 하나가 ‘함께 밥을 먹는 것’이라고 믿는다. 한 달에 한 번, 아니면 2~3개월에 한 번이라도 손주들이 백인, 흑인, 히스패닉, 아시아계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보면 어떻겠니.
그 자리에서 김치, 불고기, 잡채, 떡 같은 한국 음식을 나누고, 음식 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즐기는 거다. 맛있는 음식과 웃음소리는 서로의 마음을 훨씬 가깝게 만든다. 그렇게 하면 손주의 친구들은 한국인과 한국 문화를 ‘다른 것’이 아니라 ‘즐겁고 따뜻한 것’으로 기억하게 될 거다.
친구를 초대할 때는 그냥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손주가 직접 ‘초청하는 편지’나 예쁜 ‘초청장’을 만들어서 건네면 참 좋겠다.
간단히 날짜와 장소, 먹을 음식, 함께 할 활동을 적고,
“네가 와서 함께 하면 정말 기쁠 거야”라는 마음을 담아 보내는 거지.
이렇게 하면 친구들이 더 설레고, 초대받는 기쁨을 크게 느낄 거다.
또, 학교에서 친하게 지내고 싶은 학생이 있다면 선생님께 먼저 말씀드려서 이 모임의 취지를 설명하고, 그 학생의 부모님과 함께 초청하는 방법이 좋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부모님끼리도 서로 인사를 나누고, 아이들끼리도 더 편하게 어울릴 수 있다.
무엇보다 한국인끼리만 어울리지 않고, 여러 민족과 더불어 다양한 직업(의사, 경찰관, 요리사, 예술가, 기술자)을 가진 어른들과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다. 이런 만남은 손주의 시야를 넓히고, 세상에는 여러 길과 삶의 방식이 있다는 걸 몸으로 느끼게 해줄 것이다.
특히 요즘 방에만 있고 웹툰만 보는 성주에게는 이런 모임이 더없이 좋은 경험이 될 거다.
만화 속 세상도 재미있지만, 사람과 마주 앉아 웃고 이야기 나누며 함께 음식을 먹는 시간은
웹툰이나 게임에서 느낄 수 없는 따뜻함과 추억을 준단다. 이런 경험이 성주의 세상을 넓히고, 새로운 친구를 만드는 용기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모임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미국에서 소수민족인 우리 아이들이 서로를 ‘내집단’으로 느끼게 하는 경험이 될 수 있게 한다.
집에서 환하게 웃으며 맞아주는 모습,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기억, 그리고 함께한 시간들이 쌓이면, 손주들이 학교에서 ‘소수 한국계’라는 이유로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이 훨씬 줄어들 것이다. 나아가 손주 스스로도 다른 친구를 초대하고, 그들의 문화를 궁금해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키울 수 있을 거다.
아들아, 며느라, 세상은 생각보다 마음의 문을 열면 훨씬 따뜻해진단다.
그 문을 여는 첫걸음이 바로 너희 집 식탁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부디 이런 작은 모임이 손주들의 세상을 넓히고, 미국 사회 속에서 당당하고 건강하게 자라도록 힘이 되어주길 바란다.
늘 너희와 손주를 사랑하고 응원하는
아버지가 2025.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