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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섭효과와 학습

by 마음 자서전

우리가 무언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단순히 머릿속에 정보를 쌓아 두는 일이 아니다. 기억은 늘 기존의 정보와 새로운 정보가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형성되며, 이 과정에서 충돌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간섭효과(interference effect)라 부른다. 간섭효과란 새로운 학습이 기존 기억을 방해하거나, 기존 기억이 새로운 학습을 방해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간섭효과의 개념은 1932년 심리학자 존 A. 맥기오치(John A. McGeoch)가 본격적으로 제안했다. 그는 망각을 단순히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억 흔적이 사라진다고 보는 흔적 쇠퇴설(trace decay theory)을 비판하며, 오히려 기억 간의 간섭이 망각의 핵심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여러 학자들이 이를 실험으로 뒷받침했다.

대표적인 실험은 Jenkins와 Dallenbach(1924)의 수면 연구다. 참가자들에게 단어를 외우게 한 후, 한 집단은 곧바로 잠을 자고 다른 집단은 깨어 있도록 했다. 결과는 잠을 잔 집단이 훨씬 더 많은 단어를 기억했다는 것이다. 이는 망각이 단순히 시간 경과 때문이 아니라, 깨어 있는 동안 새로운 경험이 기존 기억을 방해했기 때문임을 보여준다. 또 다른 예로, 맥기오치와 후속 연구자들은 피험자들에게 리스트 A 단어를 학습한 뒤 리스트 B 단어를 학습하게 하고 다시 리스트 A를 회상하게 했을 때, 성적이 떨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후행 간섭(retroactive interference)의 증거였다. 반대로 리스트 A가 리스트 B 학습을 방해할 경우는 선행 간섭(proactive interference)이다. 나아가 Wickens(1972)의 범주 전환 실험에서는, 같은 범주의 단어들을 계속 학습하면 점점 기억 성적이 나빠지다가, 범주가 달라지면 회상이 다시 좋아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간섭효과가 특히 정보의 유사성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 현상은 인간관계와도 비슷하다. 자녀에게 부모가 지나치게 잦은 간섭을 하면, 아이는 스스로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다. 부모의 선의가 오히려 아이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억누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억도 다른 기억이 끊임없이 간섭하면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결국 기억이란 충분히 독립된 공간과 시간을 확보해줄 때 더 잘 작동한다는 점에서, 자녀 교육과 유사한 원리가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학습에서 간섭효과를 줄이기 위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첫째, 학습 순서를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성격이 다른 과목을 교차 배치하면 간섭이 줄어든다. 둘째, 휴식과 수면을 충분히 취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수면은 기억을 공고화(consolidation)하여 간섭을 줄인다. 셋째, 분산 학습(spaced repetition)을 활용하면 같은 내용을 시간 간격을 두고 반복할 수 있어 장기 기억에 유리하다. 넷째, 맥락을 분리하는 것도 방법이다. 과목별로 다른 색 펜이나 다른 장소를 활용하면 기억 단서가 달라져 혼동이 줄어든다. 마지막으로, 단순히 다시 읽는 것보다 적극적인 인출 연습(recall practice)을 통해 문제를 풀거나 스스로 설명하는 과정이 기억을 강화한다.


결국 간섭효과는 우리가 왜 쉽게 잊는지를 설명하는 중요한 심리학적 원리다. 동시에, 이를 이해하면 학습의 효율을 높이는 전략도 세울 수 있다. 부모의 과도한 간섭이 자녀의 성장을 억누르는 것처럼, 기억 역시 불필요한 간섭이 많아지면 본래의 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학습의 핵심은 무조건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뇌가 간섭을 최소화하고 정보를 구분할 수 있도록 돕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다. 작은 습관의 변화만으로도 우리는 간섭효과를 줄이고 더 오래, 더 정확하게 지식을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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