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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외로움, 그리고 사랑의 회복

사랑받고 싶었던 아이, 술에 기대 선 어른

by 마음 자서전


나는 주변에 몇 명의 알코올중독자를 알고 있다. 그들의 인생을 떠올릴 때, (문봉규 외 공저, 《알코올중독자 내 안의 또 다른 나》, 학지사, 2019)를 읽으면서 생각난 게 있다.

“알코올중독자는 피해자이자 가해자이다.”


첫 번째 남자는 농촌에서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폭력적이었다.

말로, 손으로, 눈빛으로 아들을 지배했다. 아이는 늘 공포 속에 살았다. 그는 아버지를 증오했지만, 동시에 그 공포를 통해 세상을 배웠다. 그에게 세상은 늘 자신을 괴롭히는 곳이었다.

어른이 되어 그는 술을 찾았다. 술은 잠시 그를 자유롭게 했지만, 동시에 자신이 미워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불러냈다. 가족에게 상처를 주고 후회하면서도 다시 술을 마셨다. 그는 피해자였고, 또 다른 가해자가 되었다.

책은 말한다.

“알코올중독자의 자기중심성은 유아기적이다. 그는 세상이 자기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학대 속에서 ‘안전한 나’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그는 “편안하고 행복한 쪽보다는 괴롭히는 쪽으로 해석”하는 비극의 시나리오 속에 갇혀 있었다.


두 번째 사람은 편애의 그늘 속에서 자랐다.

엄마는 딸을 귀하게 여겼고, 아빠는 아들을 아꼈다. 겉으로는 사랑받는 아들이었지만, 그의 사랑은 언제나 조건이 달려 있었다.


‘잘해야 사랑받는다.’


그는 늘 비교당하며 긴장 속에서 자랐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사랑받을 대상을 잃었다. 그의 외로움은 술 속으로 흘러들었다. 술은 잠시 위로였지만, 결국 또 다른 외로움을 낳았다. 책은 말한다.

“중독으로 빠져드는 연결고리는 인간관계의 어려움으로 인한 외로움이다.”


그는 사랑을 확인받기 위해 술을 마셨고, 술로 인해 사랑을 잃었다. 사랑받고 싶어서 시작된 중독은, 결국 사랑을 부수는 도구가 되었다.


세 번째 이야기는 대학원에서 들은 강의 속의 사례였다.

‘중독’을 가르치던 교수는 자기 경험을 고백했다. 아들이 성적표를 내밀 때마다, 그는 “더 분발하라”고 말했다. 칭찬 대신 더 나은 성취를 요구했다. 그 아들은 자라서 알코올중독자가 되었다. 그 어머니는 뒤늦게 깨달았다. 완벽을 강요하는 사랑이 아이에게는 사랑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코올중독자 내 안의 또 다른 나》는 이렇게 말한다.

“예민한 사람은 인간관계가 어렵다. 낮은 자존감과 피해의식은 별 의미 없는 말에도 상처받는다.”


아들은 언제나 부족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술을 택했고, 그 술은 그가 진짜 자신을 만나는 일을 가로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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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사람은 모두 상처받은 아이였다. 그러나 그 상처를 돌보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고, 결국 자신이 미워하던 방식으로 누군가를 다치게 했다. 그들은 피해자이자, 가해자였다. 책은 말한다.

“알코올중독자는 술 말고도 사는 게 힘들다.”

그들에게 술은 고통의 원인이자 피난처였다. 고통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고, 술 때문에 더 큰 고통을 맞이했다. 이것이 그들의 비극의 시나리오다.

그러나 회복의 길도 존재한다. 책은 다시 말한다.

“회복은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다. 회복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다. 회복은 결국 실천이다.”


회복이란 단순히 술을 끊는 일이 아니라, 술 없이도 살아가는 자신을 새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술이 아닌 사람과 관계 속에서 외로움을 견디고 마음을 나누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회복은 단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넘어지고 흔들리면서도 조금씩 달라진 자신을 발견할 때

그는 술이 아니라 사람에게 기댈 수 있게 된다. 그 순간 비로소 술로부터의 자유가 시작된다.

“회복은 술 없이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배우는 것.”


이 문장은 술 없는 인생이 아니라, 사람과 다시 연결되는 삶의 회복을 뜻한다.


나는 이제 ‘알코올중독자’를 단순히 술에 의존하는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사랑을 잃은 아이이며, 관계의 상처 속에서 방향을 잃은 어른이다.

그의 회복은 술을 끊는 일이 아니라 사랑을 다시 배우는 일이다. 그가 술 대신 사람을 선택할 수 있을 때, 그는 비로소 살아 있는 삶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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