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어젯밤 나는 개그맨 이진호를 만났다.
어딘가 거대한 건물 안이었고, 우리는 사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는 한때 유망한 개그맨이었지만, 도박과 음주 운전으로 구설에 오른 인물이다. 그곳에서 나는 그와 함께 오래된 사진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사진을 찍으려면 사진관엘 가야 했던 시절, 흑백으로만 세상을 기록하던 시절, 교복을 입고 찍었던 입학사진, 그리고 비교적 잘살던 어린 시절의 집 풍경이 떠올랐다.
이야기 도중, 우리는 커다란 사진 한 장 앞에 섰다.
“이건 무엇 같아요?” 내가 물었다.
진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건 80대의 할아버지가 곰 발바닥을 찍으려고 겨울 산속에 들어간 사진이에요.”
내가 그렇게 설명하자, 꿈은 거기서 끝이 났다.
눈을 떴을 때, 나는 곧바로 이 꿈을 기록했다. 요즘은 꿈을 꾸어도 금세 잊는다. 젊을 때는 꿈이 하루 종일 마음속에 남아 있었는데, 이제는 아내에게 꿈 이야기를 하려 해도 내용이 흐릿하다. 그래서 나는 꿈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한 작은 저항이었다.
문득 떠올랐다. 2022년에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읽었었다. 두꺼운 책이었고, 어려워서 끝까지 읽지 못했다. 그 책을 덮으며 느꼈던 것은 단 하나였다.
“나는 꿈을 이해하기보다, 꿈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진호는 내게 낯설지 않았다. 그의 이름 속에는 젊은 시절의 나, 사회 속에서 인정받고 싶었던 나, 그리고 그만큼 실수하고 흔들렸던 나의 그림자가 함께 들어 있었다. 그와 마주 앉아 사진을 이야기한 것은, 아마 젊은 나와 지금의 내가 잠시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눈 장면이었을 것이다. 프로이트의 말대로, 꿈속 타인은 결국 ‘나 자신의 일부’다. 내가 만난 이진호는 젊은 나의 분신이자, 빛과 그림자를 함께 지닌 나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사진은 기억의 상징이다. 그리고 그날 꿈속의 사진은 단순한 한 장의 그림이 아니라, 시간의 층위를 겹겹이 담아둔 내면의 필름이었다. 나는 그것을 현상하려고 애쓰는 중이었는지도 모른다.
사진 속에는 80대의 노인이 있었다. 곰의 발바닥을 찍으러 겨울 산속에 들어간 노인. 그 노인은 어쩌면 지금의 나였다.
곰은 본능이고, 자연이고, 생명이다. 그 발바닥은 존재의 자취이며, 삶의 증거이다. 나는 그 흔적을 찍으려 했다. 아마 무의식 속에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다.”
프로이트라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꿈은 억눌린 욕망의 위장된 실현이라고. 그의 이론대로라면, 내 꿈속의 노인은 삶의 끝자락에서 나를 다시 증명하고 싶은 욕망의 형상이다.
젊은 날의 기억과 현재의 나 사이에서, 나는 존재의 무게를 다시 확인하고 싶었다.
꿈은 늘 현실을 넘어선 언어로 말한다. 그 언어는 상징이고, 감정이며, 기억의 그림자다.
‘곰 발바닥’이라는 묘한 이미지는 지나온 삶의 발자국이기도 하고, 아직 남아 있는 생의 열기이기도 했다. 사진을 찍는다는 건 결국 “지금, 이 순간을 남긴다”라는 뜻이다. 무의식은 그 행위를 빌려 ‘내가 살아왔다는 증거를 남기고자 하는 욕망’을 표현했을 것이다.
나는 이제 꿈을 자주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건 단순히 노화의 탓만은 아니다. 프로이트의 관점에서 보면, 꿈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건 무의식이 말을 멈췄다는 뜻이 아니라, 의식이 그 말을 더 이상 잡아두지 않는다는 뜻이다.
젊을 때의 나는 무의식과 더 가까웠고, 나이 든 지금의 나는 그것을 조금 더 멀리서 바라본다. 그러나 꿈은 여전히 내 안에서 살아 있다. 그것은 말로는 설명되지 않지만, 어느 밤, 조용히 나를 찾아와 내가 잊은 나의 이야기를 다시 들려준다.
어젯밤의 꿈은 그런 이야기였다. 사진관의 기억, 흑백의 시간, 젊은 나와 늙은 나, 그리고 겨울 산속의 노인과 곰의 발자국. 그 모든 것은 결국 한 장의 사진 속에서 겹쳤다. 그 사진은 내 무의식이 찍은 나의 초상화였다.
나는 오늘 그 사진을 글로 현상했다. 그것이 나의 꿈일기이고, 나의 무의식이 남긴 예술이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다 읽지 못했지만, 지금 나는 그 책의 한 문장을, 삶 속에서 천천히 읽고 있는 중이다. 그 문장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꿈은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남긴, 살아 있는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