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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율을 잃은 시대의 마음들

조현병을 기억하며

by 마음 자서전


1951년 겨울, 피난길의 바람은 어린 내 뺨을 사정없이 때렸다. 사람들이 한 줄로 길게 늘어선 채 북으로, 남으로 흩어지던 그 혼란의 날들. 전쟁은 1950년에 시작되었지만, 진짜 비극은 그 이듬해 1·4 후퇴 때 하얀 눈 위에 쓰러지던 수많은 사람들의 체온으로 느껴졌다.


나는 다섯 살이었다. 그러나 그 겨울의 장면들은 ‘기억’이라기보다 삶의 가장 깊은 바닥에 새겨진 흔적으로 남아 있다. 울음인지 외침인지 모를 소리, 손에서 미끄러져 떨어진 짐꾸러미들,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뜨겁게 타오르던 사람들의 두려움. 그날 이후, 세상은 한동안 정상이라는 단어를 다시 배우지 못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거리에는 ‘정신이 나갔다.’, ‘정신병자’라고 불리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마치 현실이 아닌 다른 공간을 걷는 사람들처럼 갑자기 웃거나 울었고, 뭔가를 손으로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아이였던 나는 그들이 다가올까 무서워 항상 엄마의 치마 뒤로 숨곤 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표정 속에는 전쟁이 앗아간 평온의 자리가 텅 비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릴적 내가 살던 신설동에서 멀지 않은 청량리에 한국 최초의 정신병원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웃이 조금 이상한 말을 해도 “청량리에 가야겠구먼.” 하고 농담인지 경고인지 모를 말을 했다.

그곳은 가까웠지만, 누구에게도 가고 싶은 곳은 아니었다. 약물은 귀해서, 전기치료가 흔하던 시절, 전류가 몸을 타고 흐르는 동안 환자가 떨고 울부짖는 모습을 본 적 있는 사람들은 병보다도 치료를 더 두려워했다.


많은 세월이 지난 뒤, 내가 마흔 살 어느 무렵 되었을 때 오산리 기도원을 찾은 적이 있다. 그곳에서 젊은 여자가 소리치고 울부짖으며 현실과 비현실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어머니가 두 손을 모아

“기도하자, 할렐루야… 기도하자, 할렐루야…”

를 되뇌고 있었다. 삶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소리가 기도원의 찬송가 소리 사이로 새어 나왔다. 사람들은 그 여자가 실연으로 그렇게 되었다고 말했지만, 그 말로는 잊힌 마음의 깊이를 담아낼 수 없었다.


어머니를 향한 시대의 오해와 비난

그 시절 사람들은 고통의 원인을 찾지 못해 누군가를 탓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그 마음은 때로 가족을, 특히 어머니를 향해 날카롭게 향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문요한은 그의 책 《관계를 읽는 시간》에서 이렇게 썼다.

“프리다 프롬 라이히만(Frida Fromm-Reichmann)은 1948년 조현병의 원인을 어머니의 잘못된 양육에서 찾았다. ‘조현병을 만드는 엄마(schizophrenogenic mother)’라는 용어는 어머니들에게 깊은 상처와 죄책감을 남겼다. 지금은 생물학적 요인이 밝혀지면서 그 오해는 사라졌다.”


전쟁통에 아이를 등에 업고 삶의 무게를 견디던 그 어머니들, 자식을 먹이기 위해 자신은 굶고 검은 연기와 굶주림 속에서도 아이의 손을 끝내 놓지 않던 이들이 조현병의 원인이라 불렸다는 건 시대가 만든 가장

잔혹한 오해였다.

조현병은 어머니 탓이 아니었다. 우리 모두가 충분히 알지 못했던 뇌와 유전, 스트레스와 환경의 복잡한

소용돌이가 어떤 이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았을 뿐이었다.


삶의 줄이 끊어질 때 ‘조현병’이라는 이름에는 깊은 은유가 숨어 있다. 조(調)는 조율, 현(絃)은 악기의 줄. 삶이라는 악기의 줄이 너무 팽팽해지거나 바싹 느슨해졌을 때 소리는 흐트러지고 조율은 어긋난다.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너무 아프면, 너무 외로우면, 그 줄 하나가 ‘딱’하고 끊어질 때가 있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비극을 지나온 그 시대는 모두가 조율을 잃어버린 시대였다.

그 시대의 조현병은 한 개인의 병이 아니라 역사 전체의 진동이 마음에 남긴 균열이었다.

나는 이제야 그들의 침묵을 이해한다. 거리에서 혼자 중얼거리던 사람들, 기도원에서 실연의 폭풍을 견디던 젊은 여자, 그 옆에서 “기도하자, 할렐루야”를 되뇌던 어머니.


그들은 미친 사람들이 아니었다. 삶이 너무 무거워, 잠시 마음의 줄이 뚝 끊어져 버린 사람들이었다.

조현(調絃)은 다시 맬 수 있다. 줄이 끊어졌다 해도, 삶은 다시 소리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소리를 찾는 여정은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는 것에서 시작된다.

전쟁을 지나온 나와 같은 세대에게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아주 늦었지만 아주 큰 위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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