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감사일기

에밀 졸라에게 다가간 날

오래된 책, 느린 만남

by 마음 자서전

오랜만에 국립중앙도서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익숙하면서도 늘 조금은 낯선 그 공간에서, 오늘의 목적지는 분명했다. 에밀 졸라. 그의 이름을 검색창에 입력하자, 화면 위로 여러 권의 책이 조용히 떠올랐다. 온라인의 책과 오프라인의 책이 섞여 있었다. 그중 오프라인 다섯 권을 골라 대출했다. 그러나 막상 펼쳐 보니, 내가 찾던 바로 그 책들은 아니었다. 마음속의 기대와 책장 위의 현실 사이에는 늘 작은 어긋남이 있다.

남은 책들은 디지털도서관에 있었다. 화면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책들. 시계를 보니 11시 40분. 배보다 마음이 먼저 허기를 느꼈다. 온라인 도서는 점심을 먹고 나서 시작하기로 했다.

식당은 단출했다. 한 끼 오천 원. 국회도서관보다 오백 원이 저렴했다. 가격만큼이나 맛과 구성도 소박했다. 메뉴는 콩나물국, 닭고기 김치볶음, 깍두기, 미역 등이다. 국회도서관이 직원 식당과 같은 공간을 나누어 쓰는 데 비해, 이곳은 직원 식당이 따로 있는 듯했다. 그 차이는 음식보다 분위기에서 먼저 느껴졌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왔다. 그때 한 권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에밀 졸라 연구》.

1986년, 서강대학교 인문과학대학 연구소에서 펴낸 오래된 책이었다. 페이지를 넘기자 ‘파리’는 ‘빠리’로, ‘메시지’는 ‘메세지’로 적혀 있었다. 지금의 맞춤법과는 다른 표현들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시간의 흔적이 활자 속에 고스란히 눌어붙어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책을 읽었다. 아니, 그 책에 머물렀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낡은 문장들 사이에서 에밀 졸라의 얼굴이 조금씩 또렷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문학에만 머무른 작가가 아니었다. 그림을 사랑했고, 화가들을 바라보는 눈 또한 날카로웠다. 당대의 화가들을 향한 그의 비평은 문학적이면서도 뜨거웠다. 글 속에서 그는 언제나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끝까지 읽지는 못했다. 디지털도서관 사용 시간은 세 시간 남짓이었다. 더 하고 싶어도 노트북을 연결할 콘센트가 보이지 않았다. 배터리는 서서히 숨을 고르다 끝내 꺼져 버렸다. 더 이상 자료를 담을 수 없었다. 이 점 역시 국회도서관과는 달랐다. 사소한 차이지만, 이용자의 시간과 집중을 좌우하는 차이였다.


그래도 괜찮았다. 오늘 하루, 에밀 졸라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책을 다 읽지 못한 날에도, 이해는 남는다. 깊이 읽지 못했어도, 마음 한구석에 남은 문장 하나, 생각 하나가 다음 읽기를 준비하게 한다.


그것으로 오늘은 졸라와 작별했다.

영화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을 관람하고, 졸라와 세잔에 대해 알기 위한 여정이다.

내일은 국회도서관에서 졸라와 세잔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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