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하르트 리히터
국회도서관에 갔다. 토요일의 도서관은 평일보다 조용했다. 그래서 좋았다.
사람들이 각자의 휴식, 여가, 취미활동을 선택한 덕분이다. 나는 그 틈에서 책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 고요함에 먼저 감사한다.
어제 다 읽지 못한 책을 마저 읽었다. 전쟁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리히터의 삶을 따라갔다. 그의 삶을 읽으며 생각했다. 예술은 재능보다 견딤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폭격과 공포가 있었다. 가족 안에는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남아 있었다. 그 모든 경험이 한 사람의 감수성을 만들었다. 인간은 결국 겪은 만큼만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배웠다.
이 배움에 감사한다.
특히 오래 남은 장면이 있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한 가족 안에서 엮인 역사였다. 그 앞에서 그는 설명하지 않았다. 고발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렸다.
흐리게 그린다는 것은 잊는 것이 아니었다. 함부로 단정하지 않겠다는 태도에 가까웠다.
판단을 멈출 줄 아는 예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사실에 감사한다.
오후가 되자 집중력이 떨어졌다. 음악을 듣기도 하고, 유튜브를 보기도 하였다. 배구 중계를 시청하기도 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집중하지 못하는 나 자신까지 허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나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 느슨함에도 감사한다.
오늘 나는 알게 되었다. 그가 현존하는 작가 중 가장 비싼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는 사실보다,
한 인간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그의 예술은 상처를 설명하지 않는다. 기억하게 만드는 힘만 있으면 된다.
이 조용한 깨달음을 얻은 하루였다. 그래서 오늘의 기록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