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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 자서전 Feb 04. 2019

도덕이 주는 힘

자동차 블랙박스를 3년 전에 새것으로 달았다. 전에 있던 것은 인터넷으로 사서 달았는데 전문점에서 새것으로 달라고 권했다. 중고 보상기간이라 싸게 해준다고 하니 3년 할부로 샀다. 지난달에 블랙박스를 산 가게에서 서비스를 받으라고 문자가 왔다. 찾아갔더니 메모리카드를 교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메모리카드를 교환하려면 5만원이라고 한다. 아니면 새것으로 교환을 하란다. 블랙박스가 좋은 게 나와서 선명하게 찍힌다고 말한다. 3년마다 블랙박스를 교환해야 하니 부담이 간다. 아니면 관리비로 매월 만원을 내라고 한다. 내가 자동차를 운행하려면 매월 15,000원에서 30,000 원까지 몇 가지 유형이 있다고 설명한다. 블랙박스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은 매장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경제적으로 상황이 안 좋은 데 이렇게 매월 돈을 낸다는 게 부담이 된다. 5만원을 주고 메모리카드만 교환하고 매장을 나왔다.


한 달 쯤 지났다. 블랙박스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 자동차 운행 중에 “촬영이 시작되었습니다.”란 음성이 나온다. 조금 있다가는 “촬영이 종료되었습니다.“ 란 메시지가 들린다. 시간을 내서 매장을 찾았다. 

매장 기사가 보더니 “블랙박스가 고장이 났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새로운 제품을 권한다. 매월 3~4만원이 들어간다. 수리는 안 되느냐고 물었더니 안 된다고 한다. 촬영은 되느냐고 물으니 촬영은 된단다. 촬영이 되면 그냥 쓰자고 생각하고 매장을 나왔다. 

매장을 나오는데 인사가 없다. 물건을 팔려고 할 때는 열심히 설명을 하더니 안사고 나가니   

태도가 달라진다. 제품을 설명할 때는 나를 위하는 듯 착각했다. 그러나 물건을 안사는 사람의 뒤에다 대고 하는 태도는 달랐다. 

우리 사회에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하다. 사람보다는 돈이 우선시되고 있다. 장사꾼이라 그렇다고 치더라도 돈을 추구하고 사람을 멀리한다는 가게는 오래가지 못한다. 

장사꾼만 돈을 추구하는 게 아니다. 기술(技術)이 아니라 인술(仁術)이라는 의사는 어떤가? 2014년에 허리가 아파 동네 의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X레이를 찍고, 물리치료를 받고, 주사를 맞고 약을 먹으라고 했다. 그런데 저녁을 먹고 지하철을 타고 도서관에 강의를 들으러 간다. 강의를 듣는데 허리가 아파온다. 참고 강의를 들었다. 강의가 끝났는데 일어설 수가 없다. 기다시피해서 지하철을 타고 자리에 앉으니 괜찮다. 지하철에서 내려 걸으니 다리를 펼 수가 없다. 택시를 타고 집에 와서 누우니 다리를 뻗을 수가 없다. 다음날 큰 병원을 갔다. MRI를 찍으니 척추수술을 해야 한단다. 3번4번 척추에 쇠로 고정을 하는 수술이다. 다른 방법이 없느냐고 물으니 없다고 한다. 비용이 8백만 원 이상이 들어간다.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허리를 다쳤다고 잘 아는 병원을 알려달라고 했다. 동생이 추천한 병원은 일요일은 진료를 하지 않는다. 아픈 몸으로 하루 종일 집에서 있는데 몸이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월요일 아침에 일찍 병원을 향했다. 병원은 크지 않았다. 정밀진단을 하더니 수술을 하지 않고 시술을 해도 된다고 말한다. 비용도 3백만 원이다. 

의사가 모두 돈을 우선하지는 않겠지만 그런 의사도 있다. 

성직자들도 사람을 우선하기보다는 돈에 눈이 어두운 사람이 있다. 피곤하고 고달픈 영혼을 위로하고 평안함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척한다. 삯꾼 성직자는 성(聖)스러운 척하지만 성(聖)스럽지 않다. 오히려 성(性)스런 목사도 있고, 자신만의 성(城)을 쌓으려는 성직자도 있다.

그들은 신자들이 가진 것을 노린다. 물질을 노리고, 물질이 없는 신자에게는 재능 봉사를 요구한다. 신자들을 잠재력을 양육하여 성장시키는 데는 관심이 없다. 그들이 가진 것만을 바라본다. 


모든 사람들이 사람보다 돈을 생각하지는 않다. 우리나라에 자본주의가 들어온 이후에 자본주의가 되지 않아야 할 곳에도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장사를 하는 사람에게도 상도덕이란 게 있다. 도덕이란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 또는 행동기준이다. 

몇 년 전에 마이클 샌들의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이 오랫동안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정의로운 사회에 목말랐기 때문이 아닐까?     


‘칸트는 ‘도덕적 개인은 의무를 다하려는 인간이며, 동시에 자율적 인간이다‘라고 말한다. 도덕이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칸트는 다시 말한다. ’도덕적 기초만으로는 부적절하다고 보며, 종교는 하나님이 사람을 대하듯, 다른 사람을 대해야 하며, 철학은 이성에 대한 의무에 따라 다른 사람을 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제러미 러프킨, 이경남 옮김, 민음사 《공감의 시대》  (437쪽)


인간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있다. 가치는 도덕적 가치와 비도덕적 가치로 나눌 수 있다. 도덕적 가치는 공동체 지향적이거나 이타적이다. 비도덕적 가치는 개인적 선호와 관련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도덕적 가치보다 비도덕적 가치를 우선시한다면 공동체는 파괴되고 말 것이다. 


우리 시대의 살아있는 최고의 진화생물학자로 평가받는 로버트 트리버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삶에서 도덕적 지위만큼 중요한 변수는 찾아보기 어렵다. 도덕 수준은 우리가 남에 비추어 자신의 가치를 평가할 때 매력과 유능함보다도 중요하게 여기는 변수다. 따라서 기만과 자기기만의 대상이 되기 쉽다. 도덕적 위선은 우리 본성의 내밀한 한 부분이다.” 


인간의 도덕적 관념은 시대에 따라, 민족에 따라 바뀔 수 있다. 그러나 남을 속이는 행위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비도덕적이다. 이렇게 형성된 도덕적 기준은 수천 년에 걸쳐 만들어진 인간 공동체의 약속이 되었다. 그런 상도덕을 무너뜨리는 상인들로 인하여 신뢰사회가 무너져서는 안 되겠다.  

 

블랙박스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직원이 수리하는 곳을 알려준다. 연휴가 끝나고 수리센터를 찾아야겠다. 

 우리 사회에 좋은 품성을 가진 사람이 많아지고, 도덕성의 절대성이 진화할수록 나라 전체는 다른 나라에 비해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019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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