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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 자서전 Apr 01. 2019

아픈 기억에 나를 파묻고

  자다가 꿈을 꾸는 일이 많습니다. 잊으려고 해도 잊히지 않아서 꿈을 꾸나봅니다. 마음에 아픈 상처는 아물지 않습니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생각이 납니다. 백곰 한 마리가 내 가슴을 누르고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우리 집은 제법 사는 집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사촌들 중에 가난한 이들을 데려와 상점 일을 시켰습니다. 우리 집에서 밥을 먹는 식구가 14명이나 되었습니다. 한집에서 살 수가 없어 두 집으로 나눠서 살았습니다. 공부 잘하는 사람은 대학교까지 공부를 시켜주었습니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사업이 기울었을 때도 친척들을 나가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없으면 없는데도 같이 살았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보증을 잘못서서 집 한 채가 넘어갔습니다. 아버지는 못 드시는 술을 드시고 힘들어했습니다. 아버지에게 신새를 진 친척들이 많았습니다. 큰집, 작은 집 당숙, 당고모들에게 음陰으로 양陽으로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후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아버지는 뇌졸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빚쟁이들이 몰려왔습니다. 사회초년생인 나는 외톨이가 되었습니다. 10살 이상 차이가 나는 동생들과 앞날을 걱정했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그런 일까지는 나에게 맡겨진 사명인 줄 알고 묵묵히 했습니다. 

  

  어느 날 친척 중에 한 분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시골에 있는 땅이 네 땅이야.”

  시골에 땅이 3천 평이 있는데, 그게 우리가 가질 땅이라고 합니다. 우리 할아버지는 동학란 때 한의사였습니다. 당시 참전을 해서 임금님으로부터 땅을 하사받으셨습니다. 할아버지가 삼형제 중에서 우리 아버지에게 가장 좋은 땅을 주셨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당숙이 그 땅을 자기 명의로 했습니다. 모르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알고 나니 화가 났습니다. 그 분은 돌아가셨지만, 아들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알고도 모른 척합니다. 나를 보면 피합니다.

  이제 “말해 보았자 무엇 하느냐!” 라고 속으로 삭이지만 잘 삭혀지지 않습니다. 바쁘게 살 때는 잊고 있다가도 문득 생각이 날 때가 있습니다. 

  그 당숙은 삼형제가 있습니다. 그중에 맏이입니다. 맏이가 조상이 물려준 땅을 혼자 다 차지했습니다. 막내 당숙이 아파서 입원을 했습니다. 병원비가 없다고 친척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땅을 팔아서 고쳐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결국 막내 당숙은 돌아가셨습니다. 둘째 당숙은 나와 가장 친했는데, 그 후로 큰형과의 인연을 끊었습니다. 큰형이 죽었을 때에 연락을 했는데도 안 왔습니다. 

  나도 잊고 살지만 가끔 생각이 납니다. 둘째 당숙이라도 만나보고 싶지만 연락처를 안 알려줍니다. 

  물질에 초연하자고 생각을 해도 불현듯 생각이 납니다. 금액으로 따지면 대략 60억이 됩니다. 이 나이에 6촌 동생들과 분쟁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나의 아픈 기억으로 남겨두겠습니다. 

  

  기드 모파상Guy de Maupassant의 단편소설 <후회>에서 싸발은 자신이 흠모하는 샹드르 부인에게 좋아하는 감정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그리고 황혼에서 샹드르부인을 다시 만났습니다.  

  

   '싸발은 상드르 부인을 사랑했지만 고백하지 못했다. 가슴 속으로만 사랑했다. 먼 훗날 덜덜 떨며 입을 열었다.

  “그럼 그날에… 만일 제가 … 모험을 했다면… 부인께서는 어떻게 하셨을까요?”

  그녀는 아무런 후회가 없는 행복한 여인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솔직하지만 기쁨이 깃들어 있지는 않은 아이러니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꺼이 따랐겠지요.” 

  싸발은 나무 밑에 주저앉아서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세계3대 단편작가 걸작선》, 황서연 옮김, 지식의 샘


  나도 6촌 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그늘에서 눈물을 흘리는 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눈물을 흘릴지라도 내 입으로 6촌 동생들에게 말을 꺼내고 싶지가 않습니다. ‘말을 꺼낸다고 그들이 내 마음을 알아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은 상드르 부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마음을 6촌 동생들은 알아주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인간중심치료의 대가 칼 로저스도 청소년기에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의 부모는 늘 평가하고 가치를 판단하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나의 어린 시절도 그랬습니다. 늘 평가받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내가 밉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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