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란 무엇일까? 이 질문에 정답은 없지만, 오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이다. “예술 작품은 작가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생각이다.
2024년,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 전시를 보기 전에 나는 뭉크에 관한 책을 샀다. 작가의 삶과 그림에 담긴 의미를 알고 나면, 전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지 못한 채 전시에 갔다. 유명한 작품 앞에서 실물 영접을 하고, 그 감동의 순간에 작품 사진을 찍었다. 그 이후로 사진첩을 다시 열어본 적은 없다. “생각보다 색이 밝았다”는 느낌과 “직접 봤다”는 기억만이 남았을 뿐이다.
그다음 해, 미술관에 갈 일이 생겼다. 매주 ‘마음에 드는 그림 한 점’을 고르고 그것에 대한 짧은 글을 써오는 과제 때문이었다. 그림 하나를 고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어떤 그림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고, 내가 이해한 것이 맞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이게 맞나?’ 하면서 미술관을 오가며, 작품을 보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작품을 통해 내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그림을 보면서는, “다음에 밥 한번 먹자”는 말을 진심으로 믿고 오래 기다렸던, 그 사람에게 서운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또 어떤 그림을 보면서는 엄마가 왜 맨날 나에게 다이어트를 하라고 잔소리를 했는지, 엄마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기도 했다. 작품이 핀 조명처럼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어떤 지점을 비춰주면, 그 이야기들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글로 옮기게 된 것이다.
“작품을 틀리게 해석하면 어떡하지?” “작가는 이런 말을 하려던 게 아닐 텐데?” 우리가 작품 앞에서 망설이는 이유는 이런 걱정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가 우리에게 선물을 줄 때, 그 선물을 어떻게 쓰는지는 전적으로 받는 사람의 몫이다. 예를 들어, 배를 드러내고 누워 있는 고양이 그림이 있다고 해보자. 어떤 사람은 그 편안한 모습을 보고 자신의 기분 좋은 상태를 떠올릴 수 있다. 또 어떤 사람은 고양이를 무서워해서 그 앞을 서둘러 지나갈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반려묘 ‘까망이’를 떠올릴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은 가족이나 아이를 생각할 수도 있다. 이 모든 해석은 틀린 것이 아니다. 각자의 기억과 경험에서 비롯된 다른 시선일 뿐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시처럼, 우리가 작품과 마주하고 그 안에 나만의 기억과 감정을 불러낼 때, 그 작품은 더 이상 그냥 작품이 아니다. 나의 이야기를 꺼내준 소중한 매개체이자, 작가가 건넨 특별한 선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