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라는 서랍

by 오즈의고양이
KakaoTalk_20251223_060000640.jpg 에바 알머슨, 함께


아직 이름없는 감정이 있다. 여학생들 사이에서 제법 인기가 있는 숏컷 여학생이 있었다. 10대의 나다. 나서는 걸 좋아해 각종 장을 맡았고,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막는 스타일. 당시 친구들이 말했다. 넌 여자로 태어나길 잘했어, 남자로 태어났다면 엄청난 바람둥이가 됐을 거야.


S가 있었다. 우리는 멀어졌다 가까웠다를 반복했다. 내가 누군가와 친하게 지내면 S는 질투했고, 나 역시 S의 친구들을 종종 질투했다. S는 장녀였고, 나도 그랬다. 세 살 아래 남동생이 있었고, 나도 그랬다. 우리는 가까워지며 서로의 그림자를 알게 되었다. 그것마저 안아주는 사이였다(고 생각한다).


다른 대학을 가며 서서히 연락이 줄었다. 졸업 이후엔 뜬금없이 S가 남자친구가 괜찮은 사람인지 봐달라 했다. 제주에 있는 그의 자취방에 함께 놀러가기로 한 것이다. S는 나에게 부탁했다. 내가 컴퓨터를 잘 아니까 남친이 이상한 영상을 보는지 찾아봐달라고. S의 남자친구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나는 컴퓨터 하드를 검색해 숨김 폴더를 찾아냈다. 침 삼키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조용히 집중했던 S와 나.


별도로 외장하드가 있으면 모르겠으나 여기엔 일단 두 개 정도 있다. 보고 바로 삭제하는 성격이거나, 네가 온다고 해서 정리했을 가능성도 있다. 폴더를 왜 숨겨놓았는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S는 내 이야기를 듣고 안심된다고 했다. S는 남자친구가 돌아온 이후 자신이 나에게 부탁한 그 일(!)을 고백했다. 그는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나는 그의 표정이 진심인지 아닌지 구별하려 애썼다.


둘은 다음해 결혼했다. S는 세 아이의 엄마로, 워킹맘으로 아직도 제주도에 산다. 처음 보는 사람의 집에 가서 PC를 뒤지던 그때를 뭐라 불러야 할까. 왜 그렇게 열심히 찾아줬을까. S는 그때를 아직 기억할까? 그 이후로 누구도 나에게 이런 부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내 마음에 아직 S라는 서랍이 있다. 미해결된 사건처럼 닫히지 않는 그런 공간이. 긴장했던 그때의 온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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