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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활발한골방지기 Mar 05. 2023

네. 싫은데요?

학생의 목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자신의 나이에 맞는 학년 수업을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들이 더러 있다.


어떤 한 학생이 새로 들어왔다. 그 학생은 또래 아이들보다 한두 살 어린 듯 보였고, 말도 어눌하게 했다.


아무리 학생들의 공부를 도와주는 입장이라 한들, 의지도 없고 말도 예쁘게 하지 않는 아이는 반갑진 않다.


그래도 '나는 어른이다'를 되새기며, 밝은 멘트를 날렸지만 여전히 그 아이는 하고자 하는 의지도, 노력하고자 하는 에너지도 없다.

마치 물이 없어서 말라죽기 직전인 꽃 같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아이를 집중적으로 케어했다.

한 번은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자 하기 싫으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학생은 눈을 번뜩이며

"네. 싫은데요?"라고 했다.



사실 아이가 그렇게 말하면 원래는 기분 나빠야 하는 게 정상(?)인데 아무래도 나는 정상이 아닌 것 같다.


눈도 안 마주치고 대답도 들릴락 말랑하게 말하는 그런 아이가 갑자기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또박또박 정확한 말투로 말을 하다니. 감격스러웠다.


"어머! 너 지금 내 눈 보면서 말한 거야? 감동이야아아아아~~"

기뻐하는 제스처와 기쁜 눈빛으로 밝게 얘기하는 선생이 얼마나 황당했을까.

아이는 당황해하며 다시 눈을 피했다.

나는 그런 아이와 다시 한번 눈을 마주치기 위해 고개를 휘휘 저으며 날 피하는 아이의 얼굴을 따라 몸도 같이 움직였다.


"왜~ 선생님 좀 봐줘~ 우리 00이 눈이 이렇게 예쁜데 여태 선생님이 몰랐단 말이야~"


피식.


처음이었다. 그 아이가 웃은 게. 너무나도 맑은 미소였고 순수했다. 아이의 마스크 안에 숨겨진 미소를 본 나는 감격에 눈물이 그렁거렸다.


이렇게 웃을 줄도 알고, 눈도 마주칠 줄 알고, 말도 또박또박하는 아이가 왜 내 앞에서 여태 그랬을까 싶은 생각도 함께 스쳐 지나갔다.


이내 진정하고 아이에게 물었다.

"공부는 왜 하기 싫은 거야?"

아이는 경계가 풀린 건지 내 물음에 시원시원하게 대답했다.


"하기 싫으니까요."

"그럼 여기 앉아 있는 거 진짜 힘들었겠다."


아이는 가만히 있다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있잖아, 공부하기 싫지? 근데 하기 싫은 거를 먼저 해치우면 나중에 되게 편하다?"

"안 하면 되잖아요."

"그렇지. 그런 방법도 있는데, 생각해 봐? 학교 끝나고 게임을 친구들이랑 신나게 해! 되게 좋지?"

"네."

"근데, 게임을 막 신나게 하고 있는데 갑자기 엄마가 방에 들어와서 이렇게 말씀하시지. '숙제 다 했니?'".


그 아이와 반에 있는 아이들은 모두 우와우와 소름이야! 라며 머리를 쥐어 뜯기도 하고, 몸을 베베 꼬기도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해 진정시킨 후 말을 이었다.


" 만약에 네가 숙제를 다 하고 게임을 했다면 엄마의 그 질문을 들었을 때 짜증이 났을까?"

"아니요..."

"그래. 너도 다 알고 있었네! 똑똑이! 그래서 우리는 하기 싫은걸 먼저 배워야 하는 거고 먼저 해야 해. 그래야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나머지 시간을 온전히 좋아하는 것들로 채울 수 있는 거야. 선생님이 하는 말 이해해?"

"네..."


아이는 맞는 말이라며 수긍은 했지만 시무룩함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우리 00 이는 보니까 잘하는데 하기 싫은 마음이 되게 강했던 것 같아~ 처음에는 잘 못했는데 지금은 그때 보다 훨씬 잘하잖아~ 더군다나 지금 열심히 하고 있어도 같은 학년 친구들보다 못한다고 생각하니까 아예 안 해버리려고 하는 거잖아~?"


아이는 눈이 동그래지며 "어떻게 알았어요?" 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아이들이나, 자존심이 강한 아이들, 무기력과 우울감이 있는 아이들은 하려다가도 잘 안되면 아예 안 해버리고 마는 경향이 있다.


중간에 왜 포기를 하냐고 비하하기보다는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게 중요하다.


"어떻게 알긴~ 선생님도 그랬는걸. 그리고 네 마음 알아주는 사람과 응원해 주는 어른만 주변에 있다면 넌 분명할 수 있어. 그 응원하는 사람? 내가 해 줄게! "


아이는 얼굴이 붉어졌고 말없이 연필을 잡고 문제를 풀었다. 고개를 수줍게 끄덕이며.


이후에 나는 아이가 힘들어하는 날이면 조금만 해도 괜찮다고 하고, 열심히 하는 날이면 날개를 달아주며 붕붕 띄워줬다.

덕분에 아이는 힘든 날은 적어지고 열심히 하는 날이 길어지고 있다.





공부를 싫어하는 아이들은 대체적으로 분명한 목표가 없다.

왜 하냐고 물어보면 '엄마가 시켜서'라고 대답하는 게 대부분이다.


그런 아이들은 집중력도 짧고, 하기 싫어서 몸을 베베 꼬며 수업 시간 내내 딴짓을 하거나 잠을 자거나 말을 걸어 방해를 한다.


때론 "여기 있는 애들, 부모님이 번 돈으로 온 거고 공부하려고 앉아 있는 거야. 순전히 네가 하기 싫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얘네 모두가 방해받을 순 없어. 얘네 모두를 방해할 권리? 너한테 없어."라며 단호하게 말하기도 하지만, 아이의 관심사는 오로지 공부가 아닌 것뿐이다.

방해하려는 의도도 분명 없었을 것이다.


그저 목표가 없을 뿐이고, 당장 하고 싶은 게 공부가 아닐 뿐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어떤 학부모는 '그럼 대학을 목표로 하면 될까요?'라고 묻는데, 그건 틀렸다고 본다.


대학이 목표가 아니라 처음 목표를 세울 때는 할 수 있는 걸로 기간은 짧게. 그리고 점점 더 크고 멀리 세워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목표는 아이 본인이 세워야 하고, 부모는 그저 응원만 해 주는 사람이어야만 한다.

운전대를 잡은 건 우리의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길을 잃어도  '걱정 마. 길은 어차피 이어져있어. 네가 가는 길이길이야'라고 응원해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일 뿐이다.


아이들은 실패도, 성공도 모두 경험해야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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