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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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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활발한골방지기 Mar 21. 2023

진통 중 첫째 아이가 사라졌다.

#7


'조금' 있으면 나온다던 아이는 소식 없이 그저 진통 세기만 세졌다.


무통주사를 놔 달라는 나의 요청은 항상 미루어졌다.


출산 경험이 있다는 이유로 간호사들은 이상하게 생각해도 진통 주기가 점점 짧아지니 조금 있으면 나올 거라며 나를 설득시켰다.


아아... 신이시여...


무통 주사 없이 버티는 진통이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남편이 동의서를 쓰고 짐을 옮기고 나서 분만실로 들어왔다.

그런데 남편은 혼자였다.


"여보. 애는?"


"어?"


둘 다 눈이 동그래지면서 우리 큰 아이가 보이지 않아 나는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애 어딨어!!"


"어머니가 오신다 했는데....데리고 가셨나?"


순간 '이 자식이 미쳤나?' 싶었다. 

남의 새끼 말하는 것 마냥 천하태평인 표정이 정말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


내 눈을 본 남편은 아차 싶었고 심각성을 깨달은 채 다급하게 소리쳤다.

"잠깐만!! 진정해! 잠깐만 기다려봐!!" 라며 마치 공격적인 개에게 진정할 때 하는 제스처 처럼 한 손은 손바닥을 내게 보이고 뒷걸음질 치며 다른 한 손으로는 휴대전화를 빠르게 조작했다.


내 눈은 불에 타 오르며 손발이 덜덜 떨렸다.


혹여나 정말 아이가 없어졌을까 봐 손 발이 차게 식으면서

식은땀이 났고 심장은 죄어 오면서 사라지는 것 같았다.


정말 다행히도(?) 시모가 아이를 데리고 간 것이었다.


우리가 정신없을까 봐 말없이 아이를 데리고 갔다는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어떻게 말도 없이 아이를 데리고 갈 수가 있을까.


애초에 아이를 혼자 둔 남편의 행동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내 눈에는 둘 다 미친 사람 같다고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남편에게 화를 냈다.


남편은 자신의 어머니를 그렇게 표현한다는 것에 기분나쁠 겨를 없이

바짝 엎드려 나에게 사과를 했고 두 번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자신이 조심하겠다고 말했다.


화내는 소리가 난 내 방으로 간호사가 고개만 살며시 집어 넣어 들여다 봤다.

하지만 모든 소리를 다 듣고 있던 간호사는 나와 남편을 번갈아 보더니 남편을 향해 '으이그'라는 눈빛을 보내며 조용히 나갔다.


분노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지만 큰 소리를 내 봤자 다른 산모들에게도 방해가 되고 내 아이와 나에게도 좋은 영향은 없으니 일단은 넘기기로 했다. 하지만 두고두고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었다.



애초에 시모를 좋아하는 상황이 아니었으니 화는 몇 배가 됐었었고, 참고 참는 중이었던 나는 이 일을 계기로 시모에 대한 감정이 더욱 차게 식었다.




분노 때문에 나는 진통 한 텀을 넘겼다.


아이가 사라진 것에 대한 감정 이 있는 동안, 그 어떤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신랑은 어떻게든 나를 풀어보려 열심히 노력했고

나는 으르렁대며 화를 삭혔다.


아까 남편을 째려보던 간호사가 내진을 하러 들어왔다.

진통이 힘들어도 계속 웃고 있던 내가

아까와는 다르게 표정이 굳어 있자,

나에게 말을 건내며 풀어주려 노력했다.


"아이가 엄마 뱃 속이 좋은가~ 나올 때가 됐는데 ~"


"진통이 너무 오래 되는 것 같아요, 선생님."


"진통 주기는 곧 있으면 나올 것 같은데 내진 해 보니까 더 있어야 될 것 같아요. 조금 더 기다려봐야 알겠지만, 그래도 안되면 파수해야 될 것 같아요. 힘드시죠? 아기도 준비 중이니까 조금만 힘내세요."


간호사 덕분에 나는 조금 더 둘째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었고 화는 점차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다시 강도 높은 진통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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