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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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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활발한골방지기 Mar 25. 2023

같은 출산, 다른 느낌

#8


진통이 심해지자 간호사는 짐볼 운동을 알려주었다.

동시에 남편에게는 진통 완화되는 치트키를 선사했다.


그것은 바로 엉덩이 바로 위에 있는 허리를 손바닥으로 살살 문질러 주는 것이다.


이것이 생각보다 진통을 잠재우는데 도움이 되었다.

남편의 큰 손은 내 허리뼈를 받쳐주는 양쪽 근육까지 덮어 문지르니, 따뜻함이 전해져 편안함을 느꼈다.


때문에 진통이 오면 반드시 내 허리를 문지르라고 주문을 넣었고 남편은 알겠다며 계속 내 옆을 지켰다.


하지만 끝나지 않는 진통으로 남편 또한 지쳤을 터.

남편은 그렇게 서서히 보호자 소파와 한 몸이 되어갔다.


나는 진통이 올 때를 제외하고 누워 쪽잠을 청했다.

하지만 점점 짧아지는 진통 때문에 잠도 별로 못 자고 일어났다.

이번 진통은 꽤나 강도가 세서 도저히 그냥 누워서 버틸 수가 없었다.


낑낑대며 일어나 짐볼 위에 앉았다.

짐볼 운동을 해야 한다는데 앉음과 동시에 얼음이 되어 간신히 숨만 쉬는 지경이 되었다.

내가 일어나 짐볼에 앉았으니 남편이 당연히 올거라 생각했지만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남편을 부르고 싶었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고 점점 내 숨은 거칠어져 갔다.


"후욱....후욱..."


힘겹게 심호흡을 하고 있는데 남편은 계속해서 소식이 없었다.


간신히 고개를 돌려 남편을 보니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었다.


와. 아하하...


허탈함에 피식 웃음과 동시에 코 끝이 아렸다.


나는 아직도 그 순간이 잊히지가 않는다. 또한 남편도 잊지 못하겠다고 한다.


나는 남편이라는 사람이 핸드폰 게임을 하느라 그 좁디 좁은 분만실 안에서 와이프가 침대에 내려오는 것을 볼 여유조차 없었다는게 실망스러워 잊지 못하고,


남편은 그날의 내 눈빛은 자신이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살기로 온몸에 털이 쭈삣 서는 것 같은 오한이 들어 소름이 끼쳤었다는 이유로 그날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말없이 고개만 돌려 남편을 쳐다보고 있으니 남편은 스프링처럼 벌떡 일어나 내 허리를 문질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편은 내 눈치를 봤다.

심호흡하는 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상황에서 공기조차 얼어 붙은 듯이 찬바람이 불었다.


남편은 나에게 미안했는지

"계속해? 어디가 제일 아파? 강도 괜찮아?" 라며 계속해서 내 몸과 신경에게 안부를 물었다.


나는 끝까지 입을 열지 않고 묵묵히 짐볼 운동을 한 뒤 진통이 가라앉았을 때 침대로 올라가 누웠다.



솔직히 둘째의 진통은 너무나도 괴로웠고 고통스러워 눈물을 많이 흘렸다.


첫째 때와는 또 다른 고통이기도 했지만

타의적이든 자의적이든 무통주사를 끝까지 미룬 탓에 온전히 진통의 고통은 내 몫이었다.


진통 주기가

아이가 나오기 직전임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양수는 터지지 않았다.


결국 간호사가 파수를 결정했다.

내가 진통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던 틈에

간호사는 길고 날카로운 의료용 도구로 파수를 했다.


 "톡" 하는 소리와 함께 양수가 쏟아졌고

거짓말처럼 아주 쉽게 아이가 태어났다.



진통을 느낀 지 11시간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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