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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기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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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활발한골방지기 Apr 01. 2023

아이들은 닮지 않았으면 하는 부분부터 닮죠.

 나는 글을 읽는 것이 잠깐동안 정말 싫었던 기억이 있다.


중학생 때 부터

늦잠을 자고 싶어도 항상 아침 7시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뉴스를 시청하거나 신문을 읽었다.

전부 읽는 것이 아니라 맨 뒷장에 있는 사설을 읽고 스크립을 해야 했다.

엄마의 명령으로 해야 하는 일이었고, 나는 그것을 거부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정말 싫었지만 하다 보니 뭔가 뿌듯하고 폼나보였다.


그때부터였을까.


학교를 다닐 때는 다른 이가 정해준 책상에, 강제로 정해진 시간 동안, 무언가를

억지로 해야 한다는 사실이 싫었다.

(분명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결국엔 사춘기의 질풍노도 시기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그래서 내신도 수능도 망했다. 또르르...)


그런 학생이 학교 내에서 유일하게 좋아했던 공간이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은 조용했고, 책냄새가 가득한 게 좋았다.


아프다며 거짓말을 하고 양호실이 아닌 도서관으로 몰래 들어가

보이지 않는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책을 읽었다.


동내 도서관에서도 끝날 시간까지

자리를 지키다가 사서 선생님이 나오라고 해서 나간 적도 있다.


도서관은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나에게 안정감을 주는 곳이었기에

책이 있는 공간이 좋았고

덩달아 책이 좋았다.


그런 내가 아이를 키우는 동안 책을 한 권도 못 읽었음을

알아챘을 때, 머리에 번개가 내리쳤다.


처음에는 내 인생이 이렇게 흘러가도 되나 싶을 정도로 조바심이 났는데,


인정하고 받아들이니 새로운 시선과 새로운 다짐과 남다른 각오가 생겼다.



어리디 어린아이들을 앞에 앉혀 놓고 말했다.


"엄마는 조금 더 엄마 다운 삶을 살고 싶어."


"??" 


뭔 소리야.라는 표정으로 두 아이가 쳐다본다.


"나. 공부할 거야! 그러니까 엄마가 책 보고 공부하는 시간에는 너희들끼리 놀아야 해. 알았지?"

"쫩쫩"


첫째는 도망가버렸고 둘째는 장난감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래. 내가 저 어린애들한테 뭔 소릴 한 거야. 이해도 안 될 텐데.


그렇게 허탈한 마음으로 그저 꿋꿋이 틈만 나면 책을 보고 공부를 했다.



엄마가 뭘 하든 자기들 마음대로 했던 아이들이


이제는 옆에 슬그머니 앉아 책을 펴거나 그림을 그리고 각자 또는 함께 논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 할 일을 하고 있을 때 방해하지 않기로 암묵적인 룰을 형성했다.


하지만 어찌 계속 평화로울까. 가끔은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한다.



"엄마는!! 공부만 하고! 나랑 놀아주지도 않고!"


"웃겨! 나 여태까지 너랑 놀았거든!"


"아니야! 나랑 안 놀아주고!"


"그럼 여태까지 너 누구랑 있었냐? 내가 책도 읽어주고!

그림 그리는 동안 옆에 있으라 해서 계속 있었잖아!"


"아니야! 아니라고!!"


첫째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도끼눈으로 날 본다.


자신이 원하는 만큼 엄마가 함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만하고 싶었다. 너무 피곤했고 어서 내 시간을 갖고 싶었다.


"내가 어떻게 네가 원하는 만큼 다 해주냐! 나도 내 시간이 있거든?"


첫째가 울먹인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얘기했다.


"너도 내가 원하는 만큼 안 해주잖아. 그럼 우리는 쌍방 아니야?"


쌍방이라는 단어를 알 턱이 있나.

그래도 첫째는 눈치껏 차분하게, 그리고 울먹이면서 얘기한다.


"그치만 엄마랑 더 놀고 싶은데..."


첫째의 모습이 안쓰러워

당장에라도 원하는 대로 해 주고 싶었지만

한 번 허용은 계속된 허용이라 생각이 들었고

솔직히 말하자면 지고 싶지 않았다.


"이해하는데, 당장은 엄마가 봐야 할 게 있어. 그거 보고 나서 너랑 놀 시간을 만들게."


"그럼 그동안 나는 뭐 하라고?"


"그건 네가 찾아야지. 네 시간인데 엄마가 정해줘야 해?"


"... 그럼 이따가 엄마 일 끝나면 나랑 놀아주는 거야?"


"응. 약속. 오래 걸리지 않아."


"시간 정해!"


나는 입을 꾹 다물고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 얼마나."


"얼마나 해야 하지?"


"30분까지 할게."


"응! 알았어! 근데 30분이 되려면 시계가 어디로 가야 해?"


"긴 바늘이 6."


"알았어!!!"


첫째는 갑자기 신이 난 얼굴을 하며 놀이방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정말로 30분에 맞춰서 나는 내 할 일을 마치고 아이에게 갔다.


나는 정말 꾸준히 아이들에게 보여주었고, 실행에 옮겼다.

물론 좋은 효과도 있고 나쁜 효과도 있다.


두 녀석 모두 한 번 집중하면 끝까지 해 내려고 하는가 반면에

남이 시키거나 억지로 하게 하는 건 죽어도 안 한다는 것이다.


좋은 것만 닮았으면 해서 열심히 노력했는데 살짝 허무했다.

뭘 그런 걸 닮는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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