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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활발한골방지기 May 03. 2023

누울 자리 보고 발 펴라.



열정만 있으면 안 된다지만 

나는 아직도 열정만 가득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 학생이 나오기도 한다.


어제 배운 것도 잊어버리고

자기 학년도 쫓아가는데 버거워하는 

학생을 보고 있자면 

안쓰러움도 들고 

또 한편으로는 어제 배운 건데 왜 잊은 건지

이해가 안가기도 한다.


자존심은 강한데 공부는 못하는 학생이 있었다.

자격지심도 있고, 

자신이 못하는 걸 알고 열심히 해야 하는 것도 알지만

당장의 성과를 보지 못하다 보니 

스스로가 답답하리라 으레 짐작했다.


때문에 그 학생에게만큼은 최대한 감정 컨트롤을 하며 

똑같은걸 매일같이 물어봐도

안다고 큰 소리 뻥뻥 쳤지만 다 틀려와도

숙제를 안 해와도 

내 앞에서 주먹을 쥐며 부들부들 거려도

예의 없이 말을 해도 

그래. 얼마나 답답하면 그러겠나 싶어

큰 소리 낸 적은 없었다.

(크게 혼낸 적은 같은 반에서 공부하는 동생들에게 위협적으로 굴때였다.)



사춘기 시기이기도 하고 자존심 상해할 것도 모두 이해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스스로에게 짜증을 내다가 점차 나에게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이제는 더 이상 봐주지 못하겠다 싶었다.


가르치다 보니 화가 올라와 큰 소리로 나무란 적도 있다.


그래도 그 아이를 남겨 한 개라도 

더 풀리고 보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앉혀놨었다.


잘 풀릴 때는 잘하는가 싶었고 서로 웃으며 농담도 주고받았다.


그런데 갑자기 그만둔단다.


선생님이 너무 짜증을 많이 부린다는 이유였다.


솔직히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고.


짜증이 날 때도 있었다. 

몇 달 동안 똑같은 내용을 해도 앞으로 나아가질 못해

억지로 끌어 올려놨는데 

전혀 진전이 없었고


곱셈을 덧셈으로.

덧셈을 곱셈으로.

2를 3으로 바꿔 쓰니,

답답한 심정을 어찌 표현할까.


그래도 나는 얘를 가르치는 입장이니까 

감정을 꾹꾹 눌렀었다.

(맹세코 내가 가르치는 모든 아이들을 통틀어서 

그 학생이 제일 공부를 못했지만 

가장 적게 혼낸 학생이었다.)


아무리 화가 난다고 해도  

허구한 날 짜증을 부리진 않았기에,


그 학생이 내 탓을 하며 그만두고 싶어 한다는 걸 깨달았다.


집에 갈 거야? 하는 물음에

그 학생은 웃으면서 짐을 쌌다.


모든 걸 떠나서 내가 퇴근 시간을 미뤄가면서 

그 학생을 1:1로 가르쳐주던 

내 시간과 열정이 와르르 무너졌다.



공부가 어렵다는 핑계,

7년 동안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몇 달 만에 성과를 보지 못했다는 핑계,

선생님이 짜증을 낸다는 핑계.


온갖 핑계를 다 대고서 

그 학생은 결국 그만뒀다.


남은 건 아까운 내 시간과 열정이었다.

그 시간과 열정을 다른 아이에게 주었다면 

어땠을까.


그 학생이 그만두고 나서 깨달았다.


누울 자리 보고 발을 뻗어야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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