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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꺼움 Mar 23. 2020

[오늘, 책] 먹이는 간소하게_노석미

비 오는 날 먹는 부추전 같은 책

정갈하다고까지 표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단순하고 예쁜 그리고 담백한 음식을 만들어서 먹고 살고 싶다.
- 노석미 『먹이는 간소하게』(2018, 사이행성)  



  만들어 먹는 음식보다 사 먹는 음식을 좋아한다. 야채보다는 고기를 선호하고, 맵고, 짜고, 단 음식들에 쉽게 매료된다. 메니에르 증후군을 겪게 되면서 식습관을 바꾸려고 노력했지만 그때뿐이고, 증상이 완화되면 원래 습관으로 금세 되돌아왔다. 특히 자극적인 음식을 먹으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패턴을 바꾸는 게 가장 어려웠다.(매운 음식을 정신없이 먹다 보면 힘든 일도 잊어버린다.) 그러던 중 몇 권의 책을 읽으며 음식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내가 먹는 음식이 곧 나라고 생각하면 조금씩 주춤거리는 순간이 생겼다. 최근에는 이렇게 음식과 나 사이에 생기는 공간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다.(고기를 먹는 일도 마찬가지다.)




  노석미 화가는 『매우 초록』(난다, 2019)이라는 책을 추천받으면서 알게 되었는데, 작가가 펴낸 책 중에서 특히『먹이는 간소하게』가 읽고 싶었다. 법정 스님의 토방 부엌에 있었다던 '먹이는 간소하게'라는 문구를 자신의 부엌에 종이 팻말로 걸어두었다는 작가의 이야기가 마음에 닿았다. 심플하고, 색감이 부드러운 그림도 눈에 쏙 들어왔다. 책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음식에 대한 간단한 레시피와 경기도와 강원도 접경에 위치한 작업실과 텃밭, 그곳에서의 삶과 자급자족의 에세이가 함께 담겨있다. 정갈한 음식 그림과 담백한 글솜씨가 버무려져 소박하지만 귀한 밥상을 받는 기분이다.


  봄의 음식 달래 달걀밥부터 겨울에 먹는 카스텔라까지 전부 만들어보고 싶고, 맛보고 싶은 음식들이었다. 레시피가 복잡하지 않으니 없던 용기가 생기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시래기로 밥을 짓고, 양념간장에 비벼 먹는다면 어떤 음식보다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시래기를 말리는 귀찮음과 그 보기 흉함을 지나서 시래기가 시래기밥이나 나물, 된장국 등의 음식으로 바뀔 때 '아, 어찌 이런 음식이?' 하는 감동이 몰려온다"(220쪽) 작가가 써낸 문장이 주는 맛도 상당하다. "음식점에서 사 먹는 더덕 요리에서는 더덕 특유의 진한 향기를 만나보기 힘들어서 어쩔 수 없이 자연산 운운하게 된다. 밭에서 떼로 길러지는 작물에서는 홀로 산에서 고독하게 살아남은 '녀석'의 향기가 나지 않는 모양이다."(38쪽) 시골에 계신 어머님께서 산 더덕을 캐서 굽고 계시면, 그 향에 이끌려 옆에 앉아 밥 한 그릇 뚝딱하곤 했는데 '녀석'의 향과 맛이 떠올라 입안 가득 침이 고였다. 괜스레 울적해지는 날 읽으며 마음을 다독여줄 수 있는 책이다. 흡사 비 오는 날 먹는 부추전을 닮았다.



                                                                                                                                                                   

  오늘 저녁은 카레를 만들었다. 감자와 양파, 버섯을 먹기 좋은 크기로 썬 뒤 올리브 오일을 두른 냄비에 넣고 살짝 투명해질 때까지 달달 볶는다. (아이들을 위해 고기도 조금 넣었다.)  물을 붓고 재료가 푹 읽을 때까지 끓인 후 카레 가루를 뿌리면서 뭉치지 않게 잘 저어주면 완성된다. 따뜻한 밥에 쓱쓱 비벼 적당히 익은 김장 김치(혹은 쫄깃 단무지)와 같이 먹으면 더욱 맛있다. 물론 평소 같았으면 3분 카레를 사다 먹었을 것이다. 『먹이는 간소하게』를 읽고 나니, 먹는 일에 정성을 들이게 된다. 이런 바람직한 태도가 오래가야 할 텐데.  책을 부엌에서 가까운 책장에 꽂아두고 자주 꺼내 읽어야겠다.

            

그림속 정갈한 음식을 보면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글머리 사진> © lyticcory,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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