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부재 그리고 성실한 사랑

기꺼운 독서에세이

by 기꺼움

앤드루 포터 「폭풍」, 「코네티컷」(『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문학동네, 2019)을 읽고 쓰다.



나는 어려서부터 예민한 기질이었다. 엄마 찾아 삼만리라는 그림책을 수십 번 꺼내 읽고, 읽을 때마다 우는 일곱 살 아이였다. 클수록 감정 변화를 드러내지 않게 되었지만, 꽤 다양한 감정에 시시각각 영향을 받는다. 간혹 말도 안 되게 기분이 헝클어지기도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감정에 오래 휘둘리지 않고 균형을 잡는데 능숙한 편이라는 것이다. 이런 균형감을 가질 수 있게 된 데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결정적으로는 엄마에게 받은 안정적인 사랑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굴삭기 운전을 하셨던 아버지의 일터는 일정하지 않았다. 전국 곳곳의 건설현장을 누비셨기에 집에 계신 날보다 집을 비우신 날이 많았다. 비가 억수로 오거나, 눈이 내리는 날에 가끔 집에 오셨지만, 엄하고 무뚝뚝한 아버지는 늘 무섭고, 어려운 존재였다. 그런 아버지의 공백을 빈틈없이 채워준 건 엄마였다. 매일 아침 갓 지은 밥을 해주셨고, 등굣길에 몇 번을 뒤돌아봐도 엄마는 문 앞에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계셨다. 수업을 마치고 오면 식탁 위에는 언제나 간식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여름에는 직사각형으로 자른 시원한 수박, 겨울에는 포슬포슬 찐 감자와 뜨끈한 어묵탕 맛은 물론 종류도 다양했다. 밖에서 에너지를 소진한 탓에 지치고, 날선 마음은 엄마의 정성 안에서 스르륵 녹아내렸다.




폭풍코네티컷」, 두 소설에도 아버지의 부재를 겪는 가족이 나온다. 폭풍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족들 마음에 생긴 결핍으로 인한 현재의 위태로움을 담고 있다면, 코네티컷은 정신적으로 무너진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게 된 이후 어머니가 겪게 되는 감정적인 변화를 화자인 아들의 시선으로 풀어내고 있다. 앤드루 포터 작가는 특유의 세밀한 필력으로 아버지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 놓인 가족의 이야기를 밀도 높게 그려낸다. 한 명 한 명의 인물들이 입체적으로 살아 숨 쉬는 듯하다.


폭풍은 약혼자와 파리로 여행을 떠난 에이미가 홀로 미국으로 돌아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화자인 동생은 누나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아버지의 상실 이후 누나의 예측하기 힘든 기질을 오롯이 이해하는 것도 그뿐이다. 화자 역시 어머니의 슬픔 곁에서 자라면서 누나에게 의지해 온 것으로 보인다. 누나, 어머니, 어머니의 새 남편 ‘톰’까지 폭풍 치는 감정(이야기 배경 또한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로 설정되어 있다.)들 틈에서 화자는 시종일관 차분하고, 다정하다. 마치 폭풍의 눈 속의 고요함을 닮았다. 강한 비바람이 지나간 자리, 그곳에 머문 마지막 문장이 아름답다.


“잠시 나는, 어린 시절 그곳에 앉아 아버지가 일터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지난날의 늦여름 오후로 돌아간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언덕 아래로 아버지의 자동차 전조등 불빛이 보일 때 누나가 미소 짓던 모습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소박한 기쁨처럼 보였다. 그 불빛, 자동차,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집으로 돌아오고 있음을 안다는 그것은.”(246쪽)



코네티컷은 아버지가 정신을 치료하기 위해 섬으로 떠난 뒤 남겨진 가족의 이야기다. 어느 날 화자인 아들은 집 뒤쪽 테라스에서 어머니와 벤틀리 부인의 포옹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위로를 넘어서 사회통념과 어긋나는 행위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린다. 가족이 흔들릴지 모른다는 위협 속에서 어머니의 표정과 행동을 관찰하는 시선이 예리하다. 남편의 부재를 겪으며 동성을 사랑하게 되고, 끝내 이별하기까지. 그의 어머니가 겪었을 혼란과 깊은 슬픔, 쓸쓸한 상실이 아련하다. 시간이 흘러 다시 집으로 돌아온 남편에게 자신의 의무를 다하며 조용한 일상을 보내는 듯하지만,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뒤 그녀의 모습을 묘사한 끝 문장이 주는 잔상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그 저녁, 벤틀리 부인이 떠난 그 저녁이 자꾸만 떠오른다. 어머니가 이윽고 자신을 추스르던 모습, 부엌으로 들어가 설거지를 하던 모습, 방에서 내려온 누나에게 미소를 짓던 모습, 그리고 그후, 개수대가에 서서, 마치 누군가가 자기에게 와주리라고 아직도 믿는 듯이, 마치 저멀리 있는 그림자가 뜰의 가장자리에서 걸어나와 자기를 되찾아갈 것이라고 아직도 믿는 듯이, 그렇게 간절하게 서 있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277쪽)





어린 내가 알지 못했던 엄마의 삶을 돌이켜 생각했다. 남편의 부재, 일정치 않은 급여(아버지의 사장은 현장의 일이 마무리되고서야 밀린 임금을 보내주곤 했다), 고정적인 생활비 마련을 위한 부업과 두 아이 육아까지. 엄마의 어깨를 짓누르는 일상의 무게가 버겁게 느껴진다. 녹록지 않은 하루를 보내면서도 자식에 대한 사랑이 어쩜 그렇게 성실하고, 따뜻할 수 있었는지 나는 지금도 짐작하기 어렵다. 폭풍코네티컷을 읽고 난 뒤, 혼자가 된 시간에 엄마가 지었을 슬픈 표정을 상상했다. 허탈하고 쓸쓸한 감정이 가슴 안쪽으로 깊숙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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