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슬픔은 모르는 슬픔보다 더 깊게 박힌다

기꺼운 독서에세이

by 기꺼움

앤드루 포터 「피부」(『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문학동네, 2019)을 읽고 쓰다.



그대로 주저앉아서 무릎에 고개를 떨구고 숨죽여 울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계단을 내려올 수가 없었다. 내 안에 숨 쉬던 아주 작은 심장이 멈췄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의 기억은 좀처럼 잊기 어렵다. 며칠 전 옆자리에서 일하는 동료의 아내가 겪은 상실이 무겁게 다가왔다. 동료의 빈자리를 보며 계단을 내려오지 못하던 그날의 기억이 문득문득 상기되었다. 아는 슬픔은 모르는 슬픔보다 더 깊게 박힌다.




앤드루 포터의 피부는 1,500자 남짓의 짧은 소설이다. 아름답고 슬픈 소설을 여러 번 읽었다. 묵독, 낭독 그리고 필사로. 이제 갓 결혼한 화자인 나는 아내 클로이와 함께 누워있다. 아내의 곁에 누워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예측하는 서술 방식을 쓰고 있지만, 어쩌면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기를 포기하는데 서명하고 홀로 적막 속에서 아내와 누워 있던 그날로 돌아가 앞으로 벌어질 일(이미 일어난 사건)을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서로에게 눈길을 삼간 채, 허리케인의 끝자락을 통과해 휴스턴 외곽의 작은 병원으로 차를 몰 것이다. 그곳에서 나는, 우리가 막 서명함으로써 포기한 아이에게 지어줄 수 있었던 이름을 떠올리며, 어두운 방안에 홀로 앉아 있을 것이다.(249쪽)


예기치 못한 상실과 스스로 선택한 상실. 슬픔의 정도를 쉽게 재단할 수 없다. 다만, 선택한 상실에는 죄책감이 더해져 한층 복잡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짐작할 뿐이다. 소설에서 화자가 아내 클로이의 피부를 표현하는 문장, 두 사람이 잠들기 직전을 묘사하는 문장 등은 화자가 겪은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시각과 촉각, 청각을 오가며 감각을 깨운다.


“나는 다만 클로이의 피부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그녀의 이름처럼 서늘하고 부드러운, 내 젊은 아내의 창백한 피부.”(249쪽)

“창문 밖 종려나무들을 흔들고 지나는 바람 소리를 들으면서, 우리는 잔인한 짓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라는 안개 속의 꿈을 믿으면서.”(249쪽)




주말이 지나 다음 주 월요일, 회사로 돌아올 동료에게 어떻게 위로가 될 수 있을지 생각한다. 애써 담담한 얼굴 뒤로 지워지지 않는 슬픔이 보이는 듯하다. 시간이 아닌 어떤 위로도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 그분이 평소 자주 마시던 따뜻한 라떼를 책상 위에 조용히 올려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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