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 하나,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기꺼운 독서에세이

by 기꺼움


한강 「1장 어린새(소년이 온다, 창비, 2014)를 읽고 쓰다.



1980년 5월 18일 광주 민주화 운동, 하나의 역사에 수많은 사람이 있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는 사람을 말한다. 알지 못하는 이들의 생을 통과해서 보여주는 진실은 참혹해서 슬프다. 목 안쪽까지 올라오는 울음을 누르고, 아름다운 문장을 읽어낸다. 자꾸 곱씹고, 기억해야 한다. 기억 속에서 살려내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니까.


6장으로 이뤄진 장편 소설이지만, 각 장마다 한 사람의 오롯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1980년 광주에서 시작해 소설에서도 세월이 흐른다. 그 시간을 타고 소년이 온다. 수십 년이 흘렀지만, 깊게 파인 상흔은 지워지지 않기에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제부터 여섯 장의 이야기에 여섯 편의 서평을 남겨보려고 한다. 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소설이 품은 묵직한 울림에 섣부른 감상을 보태서 누를 끼치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럽다. 그저 천천히 진심을 담아 써보는 수밖에.




1장 어린 새


동호라는 열여섯 소년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동호의 내면세계와 외부 세계를 담담하고 섬세하게 그려낸다. 그로 인해 독자는 사건의 잔혹함과 화자의 참담함을 보다 세밀하게 볼 수 있게 된다. 비가 내릴 것 같은 날, 동호는 상무관 출입 계단에 앉아 있다. 병원에 안치되어 있던 관들이 상무관으로 들어온다. 추도식을 마친 관들과 가족이 확인되지 않아 입관을 하지 못한 얼굴들 곁에서 양초들이 타들어간다.


더 갈아줘야 할 초들이 없는지 찬찬히 살피며 너는 출입구를 향해 걷는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들여다볼 때, 혼도 곁에서 함께 제 얼굴을 들여다보진 않을까. 강당을 나서기 직전에 너는 뒤돌아본다. 혼들은 어디에도 없다. 침묵하며 누워 있는 사람들과 지독한 사취뿐이다.(12~13쪽)



동호는 친구 정대를 찾으러 이곳, 상무관에 처음 왔다. 쉼 없이 들어오는 죽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의 피 묻은 얼굴들을 닦아내던 이들을 보았다. 연두색 셔츠를 입은 선주 누나가 “오늘만 우리 도와줄래?”라고 말하지 않았더라도 동호는 분명 남았을 것이다. 소년은 죽은 이들의 성별과 나이를 어림잡아 기록하고 번호를 매기는 일을 했다. 힘들지 않았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나라가 죽인 사람들의 관을 감싸는 태극기와 그들의 추도식에서 울리는 애국가를.


조심스럽게 네가 물었을 때, 은숙 누나는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뜨며 대답했다.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17쪽)



동호와 정대는 광장에 있었다. 시위대는 총을 맞은 두 남자의 시신을 앞세우며 행진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따르고 있었다. 귀를 찢는 총소리가 울리고, 사람들이 흩어지는 사이 동호는 정대의 손을 놓치고 만다. 다시 광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는 사실에 괴로운 밤, 동호는 정대의 누나 정미를 떠올리며 자책한다. 고통 속에서 어쩔 줄 모르는 소년의 마음이 오롯이 드러난 문장에 숨이 막힌다.


정대의 책상 앞에 앉아 보았다가, 차가운 방바닥에 얼굴을 대고 엎드렸다. 고통이 느껴지는 가슴뼈 가운데 오목한 곳을 주먹으로 눌렀다. 지금 정미 누나가 갑자기 대문을 열고 들어온다면 달려나가 무릎을 꿇을 텐데. 같이 도청 앞으로 가서 정대를 찾자고 할 텐데. 그러고도 네가 친구냐. 그러고도 네가 사람이야. 정미 누나가 너를 때리는 대로 얻어맞을 텐데. 얻어맞으면서 용서를 빌 텐데.(36쪽)



끝까지 떠나지 않았다. 해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와 다 같이 저녁밥을 먹자고, 엄마가 그렇게 신신당부를 했는데 동호는 도청을 떠나지 않았다. 광장에서 정대의 손을 놓쳤을 때, 다시 정대를 찾으러 가지 못했으니까. 달아났으니까. 그 순간이 끝내 마음에 밟혀서 떠나지 않았다. 아니, 떠날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45쪽)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버지의 부재 그리고 성실한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