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운 독서에세이
더 갈아줘야 할 초들이 없는지 찬찬히 살피며 너는 출입구를 향해 걷는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들여다볼 때, 혼도 곁에서 함께 제 얼굴을 들여다보진 않을까. 강당을 나서기 직전에 너는 뒤돌아본다. 혼들은 어디에도 없다. 침묵하며 누워 있는 사람들과 지독한 사취뿐이다.(12~13쪽)
조심스럽게 네가 물었을 때, 은숙 누나는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뜨며 대답했다.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17쪽)
정대의 책상 앞에 앉아 보았다가, 차가운 방바닥에 얼굴을 대고 엎드렸다. 고통이 느껴지는 가슴뼈 가운데 오목한 곳을 주먹으로 눌렀다. 지금 정미 누나가 갑자기 대문을 열고 들어온다면 달려나가 무릎을 꿇을 텐데. 같이 도청 앞으로 가서 정대를 찾자고 할 텐데. 그러고도 네가 친구냐. 그러고도 네가 사람이야. 정미 누나가 너를 때리는 대로 얻어맞을 텐데. 얻어맞으면서 용서를 빌 텐데.(36쪽)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