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 둘, 네가 죽은 순간만을 나는 느꼈어

기꺼운 독서에세이

by 기꺼움


한강 「2장 검은 숨(소년이 온다, 창비, 2014)을 읽고 쓰다.




2장 검은 숨



“우리들의 몸은 열십자로 겹겹이 포개져 있었어.”(p47) 피를 너무 쏟아내 심장이 멈춰버린 자신을 바라보는 혼의 목소리로 서술된다. 몸들이 트럭에 실려가고 열십자로 차곡차곡 쌓아 올려져 짓눌리는 장면들을 높은 밀도로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어 읽는 내내 숨죽이게 된다. 슬픔과 두려움에 압도된다. 그것은 짙은 어둠 속 몸들 사이에서 양손으로 입을 막고 지켜보고 있는 듯한 감각이다. 참혹한 문장들 사이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흐르지 않는 내 창백한 얼굴을 나는 들여다봤어. 더러운 내 손들은 움직이지 않았어. 핏물이 산화돼 진한 벽돌색이 된 손톱들 위로 불개미들이 기어다니고 있었어. (50~51쪽)



혼의 주인이 동호가 그토록 찾던 정대임을 밝혀지는 순간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진실을 마주한 것처럼 황망하다. ‘아, 정대였구나.’ 탄식이 새어 나온다. 정대의 혼이 정미 누나의 죽음을 알아차렸을 때 “눈물 대신 피와 진물이 새어 나오는 통증이 느껴졌다”(50쪽)라는 표현에 한없이 서러워서 책장을 넘길 수 없다. 정대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왜?”냐고 거듭 묻는다. 그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수십 년 후 여전히 “왜?”라고 묻게 되는 현실을 살고 있음에 부끄럽다.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잠든 그들의 눈꺼풀 위로 어른거리고 싶다, 꿈속으로 불쑥 들어가고 싶다, 그 이마, 그 눈꺼풀들을 밤새 건너다니며 어른거리고 싶다. 그들이 악몽 속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까지. 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57~58쪽)



몸들의 탑 위에 기름이 부어지고, 몸은 불꽃을 품으며 타들어간다. 사라지는 몸을 바라보며 정대는 분명해지고, 단순해졌다. 몸에 묶여 어디도 갈 수 없었던 혼이 자유롭게 되었으니까. 정대는 동호에게 가기로 한다. 동호에게 가면 정미 누나의 몸을, 곁에서 어른 거리는 누나의 혼을 만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들린 폭약과 비명 소리에 정대는 어디로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때 너는 죽었어. 그게 어디인지 모르면서,
네가 죽은 순간만을 나는 느꼈어. (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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