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이 미끄럼을 탄 듯 나아갈 때는 뿌듯하지
서율아.
요즘 일기를 매일 써야 해서 힘들지? 쓰는 일보다 마음먹고 일기를 펼치는 게 더 어려운 것 같아. 오늘은 일기를 쓰라는 잔소리를 대신할 말을 궁리하다가 지나가듯 이야기를 건네봤어.
아, 우리 서율이 일기 너무 궁금하다. 오늘 주제는 뭐야? 요즘 읽는 책 중에 서율이 일기가 제일 재미있더라. 기다려진다.
서서히 서율이 표정에 활기가 도는 걸 보면서 오호라 통했구나, 했어.
진짜? 책 보다?
하며 엄마의 앉은뱅이책상에 일기를 펼치더니, '황톳길'이란 제목의 일기 두 페이지를 거뜬히 쓰더라.
두 시간 뒤 너희는 침대에서 잠들어 있고, 엄마는 방 한쪽에 있는 앉은뱅이책상에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단다. 엄마도 서율이처럼 노트북을 켤 때까지 힘들었어(그냥 자고 싶은 마음을 이기느라). 책 읽기는 무한 즐거움이지만, 글쓰기는 고통을 동반하는 즐거움인 게 분명해. 문장이 벽에 부딪히는 순간을 만나면 막막하고, 문장이 미끄럼틀 탄 듯 나아갈 때는 뿌듯하지. 오늘은 유독 벽이 참 많다. 그럼에도 엄마의 문장이 가만가만 나아가는 이유는 편지를 끝까지 읽으면 알 수 있을 거야.
서율아, 아까 엄마가 해준 말 있지. 서율이 일기가 기다려진다고 했잖아. 곰곰 생각해보니 엄마도 요즘 비슷한 이유로 열심히 쓰게 되는 것 같아. 엄마가 글을 쓰는 일로 인연이 닿은 분들과 매일 함께 쓰고 있잖아. 그동안은 혼자 쓰는 글이 좋았고,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 엄마가 쓴 글을 읽어주는 분들이 있다는 건, 어쩌면 기적 같은 일이 아닐까, 싶어. 서로의 글을 기다려주고, 읽어주고, 소중히 여겨주는 마음들이 있다는 게 이렇게 든든하고, 편안한 일인지 미처 몰랐어. 오늘은 서율이에게 쓰는 편지에 의지해서 함께 쓰는 분들께 감사 인사를 건네보려고 해.
많이 고맙습니다. 작가님들 덕분에 서툰 제 문장이 힘을 내요. 이제 작가님들이 쓰신 글을 읽으러 갈게요. 우리 끝까지 잘할 수 있겠죠?
2019년 뜨거운 여름을 통과하며 아이들에게 매일 쓴 편지를 책으로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