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않은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독자이기를
나는 유이치의 말대로 한번 해보기로 했다. 그가 제안한 방법은 다음과 같았다. 일단 매일 시간을 정한다. 한 시간 정도라면 가장 좋겠고, 삼십 분이라도 상관없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쓰기 시작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기억해. 뭔가 쓰는 순간, 넌 작가가 되는 거야."). <중략> 문법 같은 건 맞지 않아도 상관없으며 진부한 표현도 가리지 않는다("질보다는 양이야. 모든 재능이 그렇듯이.") 하루에 최소한 세 페이지는 반드시 채워야만 하며, 더 쓰고 싶다면 얼마든지 더 쓸 수 있다. 다음날 그 시간이 될 때까지 계속 써도 된다. 만약 정해진 시간에 세 페이지를 채우지 못했다면 그날 중에 시간을 내어 다시 책상 앞에 앉는다.
- 김연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문학동네, 2015) 28쪽 중에서
그중에도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건 그믐 가까울 무렵 물 밖으로 나올 때입니다. 하늘에도 빛이 없으니까 그저 위를 향해서 올라가기만 하는데, 그러다 갑자기 별들이 확 쏟아질 듯 제 시선으로 들어올 때가 있는데, 그러면 물 밖으로 다 나온 것입니다. 별빛이 제 쪽으로 떨어지는 그 순간은 정말 아름다워요. 이런 세상에 살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 김연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문학동네, 2015) 141쪽 중에서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건 나의 일이었다. 너와 헤어진 뒤로 나는 단 하루도 너를 잊은 적이 없었다. 2005년을 기점으로 너는 나보다 더 나이가 많아졌지. 그럼에도 네가 영원히 내 딸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내 안에서 나보다 나이가 많은 네가 나왔다니. 그게 얼마나 대단한 경험인지 네게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있는 입술이 내게는 없네. 네 눈을 빤히 쳐다보고 싶지만, 너를 바라볼 눈동자가 내게는 없네. 너를 안고 싶으나, 두 팔이 없네. 두 팔이 없으니 포옹도 없고, 입술이 없으니 키스도 없고, 눈동자가 없으니 빛도 없네. 포옹도, 키스도, 빛도 없으니. 슬퍼라, 여긴 사랑이 없는 곳이네.
- 김연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문학동네, 2015) 201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