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이유 찾기

playlist, 감사_김동률

by 기꺼움

2015년 9월 28일은 지금 쓰고 있는 스마트폰을 구입한 날이다. “오늘은 핸드폰 새로 한 날! 마음에 쏙 듦” 이라는 메모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수십여 개의 메모가 쌓여있다. 필요한 물품, 예방접종일, 기억하고 싶은 문장, 읽고 싶은 책, 회식 건배사 등 유통기한이 적힌 우유처럼 길고, 짧은 메모들이 날짜순으로 정렬되어 있다. 16GB밖에 되지 않는 스마트폰 저장용량 탓에 앱을 하나 설치하려면, 하나를 지워야 할 정도로 과부하된 상태지만, 메모장만큼은 꿋꿋하게 4년의 시간을 간직하고 있다.




이유 없이 기분이 가라앉는 날에는 메모장을 연다. 2015년 10월부터 2016년 1월까지 3개월 동안 “행유”라는 제목으로 틈틈이 써 내려간 메모를 읽는다. 행유는 ‘행복한 이유’의 줄임말이다(작명 센스가 전혀 없는). 하루 중에서 감사할 일을 찾아 끄적인 문장이다. 당시 내가 찾은 행복한 이유를 몇 개 옮겨보자면 이렇다.


<2015년 10월 5일 행유> 1. 하늘 높은 완연한 가을 신랑과 함께 둘이 먹은 초밥 세트와 라테 한잔 2. 엄마가 좋으면 자기도 행복하다는 내 예쁜 딸내미가 전해준 예쁜 말 3. 사랑하는 우리 엄마, 아빠의 데이트 소식, 매일 행복하셨으면 하는 내 바람 4. 기침이 잦아들었다는 우리 어머님의 전화
<2015년 11월 26일 행유> 한 번도 본 적 없는 커다란 태양이 산 아래에서 솟아 올라와서 온 집안을 비추는 꿈을 꾼 날, 길몽일 테지
<2015년 12월 2일 행유> 1. 아무런 수고 없이도 맛있는 밥과 반찬을 먹을 수 있음에 행복 2. 갓 내린 커피와 로이스 초콜릿이 주는 달콤함 3. 조금 덜 추운 아침 10분간 허락된 걷는 시간 4. 자꾸만 떠오르는 귀요미 아들의 눈웃음
<2015년 12월 15일 행유> 1. 예멘 모카 마타리 커피향, 오 좋다 2. 새벽 출근길 내가 선곡한 노래 듣기 3. 얼굴을 모르는 아이의 산타가 되는 일,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을까 봐 조마조마하지만 뿌듯하다.
<2015년 12월 24일 행유> 서준이 입원 내내 밤 동안 병실을 지켜주는 신랑에게 감사, 자정이 넘어 병실을 나서는 나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줘서 설렘


2015년 가을에서 겨울은 육아와 승진 공부를 병행하며 힘들었고, 2살이던 둘째는 폐렴을 오래 앓다가 입원했다. 특별할 게 없는 날들이었다(아니, 꽤 버거운 날들이었다). 그러나 스마트폰 메모 속에는 아주 작은 기쁨들이 올망졸망 모여있었다. 사랑스러운 하루들이 나를 지탱하고 있었다. 2019년의 울적한 마음을 2015년 메모를 읽으며 달래고 있다니 바보 같다. 다시 행복한 이유를 찾아야지. 광산에서 금을 캐듯, 일상에 빛나는 일들을 찾아서 잘 적어둬야겠다.

<2019년 11월 28일 행유> 늦은 밤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쓰며 밀크티를 마신다. 2015년의 행복한 이유를 짧은 산문으로 썼다. 이 글은 책이 될 테니까. 이른 살의 할머니가 돼서도 읽을 수 있겠지. 그때도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있었으면 좋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F9XtgD5vpfE&list=PLa8akc3Kuq31veFamgQdTTUKcQZviPh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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