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이 계산적으로 느껴질 때면,

기꺼운 독서일기 하나

by 기꺼움


# 1


내 사랑이 계산적으로 느껴질 때면 영경과 수환의 사랑을 생각한다. 두 사람은 권여선 소설가의 봄밤이라는 단편소설의 주인공이다. 누군가 어떤 사랑을 하고 싶은지 묻는다면 이들처럼 사랑하고 싶다고 말할 것이다. 두 사람은 40대에 처음 만나 12년째 연애 중이다. 영경은 알코올중독자이고, 수환은 류머티즘 관절염을 오래 앓고 있다. 둘은 요양원에서 지낸다. 영경의 정신은 꺼질 듯 파르르하고, 수환의 몸은 언제 바스러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서로를 향한 애틋하고, 절실한 마음이 단단하다.


# 2


나의 사랑의 이면에는 기대가 있다. 내가 이만큼 했으니,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당신도 이만큼은 해줘야지,라고 생각한다. 조금 구체적으로 풀어보자. 나는 오늘 저녁 당신을 위해 정성껏 시금치 된장국을 끓이고 감자조림을 했어. 그럼 당신은 맛있게 먹어줘야 해. 내가 기분 좋아질 만한 리액션도 해줘야 하고, 무엇보다 "설거지는 내가 할게"라고 말해줬으면 좋겠어. 이쯤 되면 사랑하는 사람의 식사를 준비하는 마음은 기대감에 눌려버린다. 기대에 어긋나면 감정은 상하고, 어쩌면 다툼으로 번질지도 모른다.

# 3


수환은 영경에게 기대하지 않는다. 심지어 영경의 마음을 먼저 알아채고 말을 꺼낸다. "당신 참 장해. 오래 버텼어. 다녀와라." 영경이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고는 버티기 어려운 것을 아니까, 영경이 원하는 일이니까, 그렇게 하라고 말한다. 나는 수환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 저녁 한 끼를 차리는 일에서도 상대에게 바라는 게 그토록 많은데, 알코올중독자가 되어 버린 이에게 당신 참 장하다고, 오래 버텼으니 다녀오라고 할 수 있을까?


# 4


혹자는 수환의 방식이 사랑이 아니라고 할지도 모른다. 영경이 건강을 되찾을 수 있게 어떻게든 말려야 하는 게 아니냐고. 그러나 수환의 사랑이 아름다운 이유는 거기에 있다. 온전히 영경의 마음이 되어 주는 것. 계산하지 않는 사랑은 안도감을 준다. 불안하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 견고함이 삶을 버티게 하는지도 모른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무엇도 바라지 않고 내어 줄 수 있는 마음이 권여선 작가의 봄밤이란 소설 곳곳에 있다.



취한 그녀를 업었을 때 혹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을까 염려될 정도로 앙상하고 가벼운 뼈만을 가진 부피감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 봄밤이 시작이었고, 이 봄밤이 마지막일지 몰랐다.(32쪽)
- 권여선 「봄밤」 (『안녕 주정뱅이』 창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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