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모양과 크기를 살펴보는 일

기꺼운 독서일기 둘

by 기꺼움


# 1



엠마뉘엘 카레르의 『나 아닌 다른 삶』(열린책들, 2011)을 읽다가 이런 글귀를 발견했다.


분명히 낙오자로 보이는 사람의 인생이 겉보기와는 딴판일 수도 있고. 막판에 극적인 반전이 있었을 수도 있고. 우리 눈에 포착되지 않은 어떤 면이 숨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외형적으로는 성공한 인생으로 보여도 지옥과 같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지옥인 그런 인생도 있다.
-엠마뉘엘 카레르 『나 아닌 다른 삶』(열린책들, 2011)


다이어리에 문장을 필사하며 생각했다. 한 사람이 생을 통과하면서 타인에게 포착될 수 있는 부분의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우리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쉽게 판단한다. 때때로 부러워하고, 때때로 험담한다. 심지어 차별과 혐오를 드러내기도 한다. 평소에는 이 모든 것들이 얼마나 섣부른지 인식하지 못하며 지내다가 책에서 답을 발견하면, 부끄러움을 숨길 곳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 2



분명 알고 있었다.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은 지극히 상투적인 표현이 아닌가. 그러나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별개다. 그런 '앎'은 언제나 의식 깊숙한 곳에 숨어 있어서 일상에서 놓치기 쉽다. 책은 '앎'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내가 살아가는 모습과 태도를 돌아보는 동시에 타인과 비교하며 우월감을 느끼거나 혹은 자괴감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 살피게 한다.



# 3



맞다. 책의 문장을 만나고 깊이 사유했다고 해서 현실의 내가 특별히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낙숫물이 바위에 구멍을 내는 것처럼, 오랫동안 굳어진 가치관에 미세한 균열을 만든 것만으로 충분하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의 기준이 자기 안에 있음을 이해한다면, 타인을 평가하는 말은 줄어들고,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다. 누군가에게 평가받고 싶지 않다면, 나 또한 평가하지 않는 것으로 시작하면 된다.



# 4


이렇게 책에 의지해 생각의 모양과 크기를 살펴보는 일은 독서의 기쁨 중 하나다. 하루만큼씩 자라는 아이들의 성장일기를 써 내려가는 것처럼, 매일 고군분투하는 생각의 성장일기를 쓴다. 당장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으니 잘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그저 조금씩 나은 사람이 되는 과정이라고 믿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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